[기획-No touch! 휴가 24시간을 준다면]

현대인들은 중세 사람들에 비해 곱절이나 수명이 늘어났다. 중세인들은 40대 중반이 되면 치아가 죄다 빠져버렸고, 영양부족이나 체온저하와 질병으로 죽었다.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60세가 되어도 사춘기 같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은 "시간이 없어!"라는 푸념이다. KTX고속열차와 비행기로 이동하고, 노트북과 스마트폰으로 약속을 정하고, 간편한 냉동식품을 먹으며 시간을 절약해도, 시간을 잡아먹는 또 다른 계획과 일감 때문에 빈둥거릴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은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인터넷 환경으로 직장과 가정이 따로 없는 것은 좋지만, 결국 이 때문에 24시간 마음만 먹으면 어디서나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 느긋한 카페에 앉아서도 우리는 노트북을 펴놓고 일을 한다. 주부들은 가사노동에 자녀들 교육 매니저 역할마저 떠안고 심신이 피곤하다. 결국 유대인들이 말하는 '안식일'도, 그리스도교 신앙이 정한 '주일'도 사실상 사라졌다. 아이들은 주일에 굳이 성당에 나갈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교대근무로 휴일이 따로 없거나, 대형매장 직원들처럼 주일에 일하고 평일에 쉰다. 그래서 '주일' 개념이 바뀌었다. 어떤 이에게는 5일 근무제로 주일은 없고 휴일만 있다. 휴일은 쉬는 날이고, 휴일에 미사를 드리러 성당에 가는 것은 휴식을 방해하는 번거로운 일이 되었다. 휴일은 그저 쇼핑하기 좋은 날이다.

321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주일을 '일하지 않는 날'로 정했다. 노예와 하인들도 미사에 참석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독일기본법에는 주일이 "노동을 멈추고 영혼을 회복하는 날"이라고 명시되어 있다고 한다. 이날은 우리의 삶이 경제적 목적에서 놓여나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날이라는 의미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의 의미를 갖는다. 안식일은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쉬신 날이며,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종살이에서 해방하신 것을 되새기는 날이다. 그리스도교의 주일은 예수의 부활을 기억하는 날이며, 신자들이 모여 성찬례를 올리는 날이다. 공동체와 더불어 고요히 자신과 하느님을 묵상하는 '거룩함'의 흔적이 주일이다. 그러니, 무자비한 경제독재에서 그분이 허락하신 24시간을 되찾아 와야 한다.

"나는 너의 주 하느님이다. 나는 너에게 일상을 멈추고 거룩한 날을 지키라 명한다. 네 생애가 얼마나 소중한 지 깨닫고, 네 삶의 리듬을 찾기 위함이다. 나는 너에게 거룩한 날을 지키라 명한다. 너의 삶이 일과 돈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고, 눈앞의 이득과 무관한 시간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보내도록 하기 위함이다. 또한 나는 너에게 거룩한 날을 지키라 명한다. 그리하여 하느님을 위한 시간과 믿음의 공동체를 위한 시간을 보내도록 하기 위함이며, 미사 중에, 하느님과의 만남 중에 너 자신에게 다가가도록 하기 위함이다."
                           - <그러니, 십계명은 자유의 계명이다>, 노트커 볼프 등, 분도출판사, 2012.


뜻밖의 소식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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