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치킨게임] 농촌사회학자 정은정 씨를 만나다
지금 옆 사람을 붙들고 물어보자. “치킨, 좋아하세요?” 옆 친구에게 물었더니 “당연하지, 가장 좋아하는 ‘남의 살’이 치킨이야.” 하고 망설임 없는 답이 돌아온다. 더운 날씨에 영양보충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거나, 친구들과 만나 시원한 맥주 한 잔 마시고 싶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치킨이다. <대한민국 치킨전>이란 책 제목에 끌린 건, 나 또한 치킨을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좋아하면 알고 싶어지는 법. 하지만 책을 넘길수록 치킨을 좋아하면서도 얼마나 알려고 하지 않았는지 반성하게 된다.
<대한민국 치킨전>의 저자 정은정 아녜스 씨는 농촌사회학을 연구하는 학자다. 치킨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그는 단지 맛있는 치킨을 넘어 치킨을 통해 우리 시대의 모습을 살피고자 한다.
“저는 영양학자나 식품학자가 아니니까 ‘치킨은 무엇인가?’ 묻는다면 별로 할 말이 없어요. 닭의 성분이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제 관심사가 아니죠. 대신 ‘치킨은 누구인가?’라는 연구주제가 제겐 더 중요해요. 가공된 닭, 밀가루, 설탕, 식용유로 만들어내는 치킨을 키우고, 튀기고, 배달하고, 먹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죠. 누구나 쉽게 접하고 많이 먹는 음식을 통해서 이 시대를 읽어낼 수 있어요.”

초국적 기업이 입맛을 결정한다
치킨을 통해 읽어낸 우리의 먹을거리와 사회의 모습은 어떠할까? 치킨을 만드는데 필요한 설탕, 밀가루, 식용유, 고기는 모두 초국적 기업과 연관되어 있다. 닭이 귀할 때는 백숙으로 먹었지만, 닭이 흔해지고 식용유를 쉽게 구하게 된 데에는 초국적 기업들이 관련된 ‘원조 경제’라는 배경이 있었다. 특히 밀가루와 콩, 옥수수는 몇몇 초국적 기업이 독점하고 있는 식재료다. 초국적 기업이 가공해서 주는 대로 우리의 식생활은 변화하게 되어 있는 구조인 것이다. 생각보다 우리에게는 음식에 대한 선택권이 많지 않다고 정은정 씨는 말한다.
“옛날에는 닭이 워낙 귀했죠. 당시 농촌사회에서는 두 가지만 현금으로 전환할 수 있었어요. 하나는 쌀, 또 하나는 계란이죠. 계란을 모아서 장터에 내다팔아야 하는데 하물며 닭을 함부로 잡아먹을 수는 없었겠죠. 정말 특별한 날 닭을 잡았는데, 그것도 여럿이 먹어야 하니까 큰 솥에 넣고 삶아서 백숙으로 먹었어요. 주로 국물을 마르고 닳도록 먹는 거죠. 그런데 1963년도에 국내에 사료공장이 들어와요. 식품 쪽의 초국적 기업이 복합사료공장을 세운 거죠. 밀가루 제분을 하고 나면 남는 밀기울, 원당을 짜고 콩기름을 만들고 남은 찌꺼기 등을 가공해서 사료를 만드는 거예요. 그동안은 사람이 먹을 것도 없으니 가축들을 먹여서 키우는 게 쉽지 않았는데, 사료가 많아지니까 닭을 키우는 게 쉬워진 거죠. 그때부터는 닭을 쉽게 먹을 수 있는 거예요. 1960년대부터 전기구이 통닭이 유행하게 되죠. 그 이후에 ‘동방유랑’이란 기업이 대두 독점권과 유통권을 따내고 식용유를 대량생산하면서 프라이드치킨이 유행하고, 물엿이 등장하면서는 양념치킨이 유행하죠. 그런데 이 식용유와 물엿은 콩과 옥수수에서 추출되는 거잖아요. 콩과 옥수수가 주도하는 우리의 음식문화는 결국 초국적 기업이 주도하는 것이죠. 소위 말하는 원조 경제의 영향이에요. 세계대전 이후에 잉여 농산물이 국내로 들어왔고, 그때 들어온 밀가루, 설탕, 식용유로 지금의 재벌이 생겨났어요. ‘백설’이란 이름으로 설탕과 밀가루를 팔던 ‘CJ’를 비롯해서 ‘삼성’과 ‘두산’ 같은 기업도 잉여 농산물을 기반으로 큰돈을 벌었죠. ‘농심’과 형제 기업인 ‘롯데’도 밀가루와 식용유를 들여와서 라면을 만든 거예요. 그 라면을 우리가 열심히 먹으니 ‘제2 롯데월드’도 세울 수 있었겠죠. 이런 연결고리를 살펴보면, 우리가 식민지배에선 벗어났지만 초국적 기업의 손아귀에선 독립하지 못한 거죠.”
농가엔 380원 주고 치킨집엔 5,000원에 납품하는 치킨산업 거대자본
초국적 기업의 독과점이 더욱 문제가 되는 지점은 우리가 먹는 닭을 키우고 튀겨서 파는 양계농민이나 치킨집 사장님들에겐 너무나 적은 소득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 배경에는 역시 기업과 함께 닭의 모든 가공과정을 독점하고 있는 기업들이 있다. 가공과정이 많을수록 기업에 집적되는 돈은 늘어나지만, 양계농민과 치킨집 사장님에게 돌아가는 돈은 여전히 비슷한 수준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정은정 씨에게 “그래서 치킨을 먹어야 하나요?”하고 묻는다. 정 씨는 “먹자, 먹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어떻게 먹을 것인지 성찰해 봐야 한다.”면서 주일학교의 간식 이야기를 꺼냈다. 정 씨가 자모회 활동을 하면서 본 주일학교는 치킨과 피자 없이 굴러가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주일학교에서는 여전히 피자를 주고 닭강정과 돈까스를 주어야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성당에 온다고 여겨요. 저는 그렇게까지 해서 아이들을 잡아둘 필요가 있나 싶고, 자신감이 없는 교회의 모습이라고 생각하죠. 먹는 것을 통해 공동체를 구성하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우리가 먹는 음식이 어떻게 온 것인지 성찰하고 그에 따른 철학이 있어야 해요. 누군가의 공동체를 파괴하면서 나온 음식을 먹으면서 교회 내의 공동체를 세우겠다는 건 모순이 아닐까요.”
눈물겨운 치킨, 의미 있는 날 즐겁게 먹자
물론 정은정 씨에게도 특별한 해결책이 있는 것은 아니다. 정 씨는 사회과학자가 길을 알려주는 네비게이션은 아니지만, 현재 어느 위치에 있는지 알려주는 GPS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우리의 음식문화가 어떤 과정으로 형성되어 왔는지 살펴보고, 스스로 몇 가지의 원칙은 지켜가면서 치킨을 즐기자고 이야기한다.
“한국 사회의 식생활에서 고기를 줄여야 한다는 건 정언 명령이에요. 일인당 일 년에 40kg의 고기를 먹거든요. 닭으로 환산하면 40마리, 계란으로 치면 270개를 먹는 거예요. 지나치게 많은 양을 먹는 거죠. 하지만 치킨에는 독특한 문화적 배경이 있어요. 치킨은 화나고 슬픈 날에는 먹지 않아요. 기분 좋은 날 먹는 음식이죠. 전에는 소풍가거나 운동회하는 날 먹었잖아요. 또 혼자 먹기엔 많은 양이라 누군가와 함께 먹어야 하고, 손에 들고 양념 묻으면 손가락 빨아가면서 먹어야 하는데 어려운 사람과는 먹기 어렵죠. 4인 가족을 이만 원 정도의 가격으로 만족시키는 데 치킨만한 음식이 있을까요. 이런 좋은 음식을 나름의 원칙을 갖고 즐기면 좋겠어요. 가끔 먹되, 의미 있는 날에 함께 즐겁게 먹는 문화를 만들어 보자는 거죠.”
이희연 기자 / 뜻밖의 소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