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발견] 해피브릿지 송인창 이사장 인터뷰

대학로에서 뜨끈한 국수가 먹고 싶을 때 찾아가던 ‘국수나무’가 조금 특별한 회사라는 걸 알게 된 건 최근의 일이었다. ‘국수나무’와 ‘화평동왕냉면’ 등 외식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450여 개의 점포를 낸 한 중소기업은 2013년 돌연 협동조합으로 전환을 선언하며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 중심에는 이십 대부터 신앙생활을 함께 하며 맺어진 끈끈한 우정이 있었다. 자신의 몫을 내려놓고 함께 살아남는 길을 택한 창립 멤버들을 대표하여, 해피브릿지 협동조합송인창 프란치스코 가브리노 이사장을 만났다.

▲ 송인창 이사장은 늘 웃는 얼굴이다. 이윤보다 가치 있는 행복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한상봉


주식회사에서 협동조합으로 전환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2011년 이태리 볼로나 지역을 방문하면서 처음 협동조합을 만났어요. 전에는 협동조합이라고 하면 사회주의 느낌의 협동농장이란 선입견이 있었어요. 막상 가보니 볼로나 지역의 경제생활에서 협동조합이 차지하는 비율이 40%나 되더군요. 슈퍼에 가도 생활협동조합이라고 쓰여 있어요. 직원이 천 명 이상인 중견기업이 협동조합인 경우도 있었고요. 협동조합에 눈을 뜨고 공부를 하다 보니, 해피브릿지의 철학과 이념이 이미 협동조합과 유사하다는 걸 알았죠. 우리 회사에 잘 맞는 옷을 찾았다고 할까요. 마침 2012년 12월 31일에 협동조합 기본법이 발효되면서 2013년도 2월 21일 협동조합으로 전환할 수 있었어요. 130여명의 직원들 가운데 78명이 협동조합원이에요. 회사의 등기부등본을 떼어보면 소유권을 나눠가진 조합원 78명의 명단이 모두 나와 있어요. 입사해서 3년이 넘은 직원들은 교육받고 출자하면 누구든 이 회사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거죠.

회사의 어떤 철학이 협동조합과 유사했나요?
사실 해피브릿지는 몇 사람이 창업했다고 말하기 어려운 회사예요. 일반적으로 사업을 하려면 먼저 돈을 모으고 사업 아이템을 결정한 다음 구인광고를 내서 사람을 채용하죠. 하지만 해피브릿지는 성당에서 이십 대를 함께 보낸 친구들이 모여서 먹고 살기 위해 시작한 회사거든요. 다른 사람을 고용해 월급을 줄 돈이 없으니까 성당 친구들을 불러내서 함께 하자고 설득했어요. 주일학교 선후배부터, 청년 연합회 선후배까지 모여들었죠. 저도 서울대교구 6지구 청년연합회 초대 회장 출신이에요. 열일곱 해가 넘는 시간동안 이런 친구들이 모였다가 흩어지고, 다시 모이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사업적 관계보다는 인간적인 관계로 시작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돈보다 사람을 챙기는 분위기가 생겨났어요. 이 회사가 어느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모두의 것이라는 의식이 생겼죠. 핵심그룹이 성당에서 모인 친구들이다보니 이런 생각을 편안하게 받아들였어요. 자본주의가 사람다운 삶이나 공동체를 파괴하는 부분이 있는데, 교회는 인간적인 가치와 공동체를 지키려는 정신이 있잖아요. 협동조합에도 그런 정신이 있거든요.

그래도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 협동조합의 가치를 선택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물론 정신적, 문화적 부분만 고려해서 전환한 건 아니에요. 저희도 그렇게 순진하진 않지요. 협동조합은 운동과 사업이 양 바퀴로 돌아가는 조직이에요. 운동이 해피브릿지 창업 이념과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었고, 동시에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이기도 하죠. 당시엔 수익성보다 어떻게 우리 같은 중소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느냐가 중요했어요. 중소기업이 삼 사 년 넘기기도 쉽지 않거든요. 외부 위기에 어떻게 대응하는지가 가장 중요한데, 환율 변동이나 광우병 사태 같은 문제는 소비경제가 회복될 때까지 버틸 수 있는 내부역량이 있어야 해요. 대기업은 자본으로 버티는데 중소기업은 그럴 수가 없어요.
저희도 사업 규모가 작을 때는 의리로 버텼어요. 서로 집안 사정 다 아는 친구들이니까, 소주 한 잔 하면서 “혼자 먹고 살겠다고 치사하게 도망갈 수 있냐?” 그러면 “그럴 수 없죠, 형님.” 하면서 의리로 똘똘 뭉쳐 있었어요. 그런데 사업 규모가 커지면서 의리만으로 안 되더라고요. 신입사원이 제 딸보다 나이가 어린데, 너랑 나랑 친구니까 의리를 지키자고 해봐야 설득력이 없는 거죠. 그럴 때 협동조합이란 시스템을 통해 제도적으로 의리를 만들어주는 거예요. 어려울 때도 뭉칠 수 있도록 법적으로 회사를 함께 나눠 갖는 거죠. 사람이 정말 중요한데, 회사의 공동소유주가 된다는 부분이 좋은 인적 자원에게 특별한 이점으로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서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현실적인 어려움은 없었어요. 전환 당시 주주가 열다섯 명이었는데, 주주총회를 열어서 전환결의를 할 때 단 한 명도 반대하지 않았거든요. 그때 저희 회사가 800억의 가치는 있었어요. 그 지분의 10%만 해도 80억이잖아요. 그런데 주주들이 아무도 그 계산을 안 했어요. 다들 속으로는 복잡한 마음이었겠지만, 누구 하나 겉으로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죠. 자신의 생각보다는 긴 시간동안 우리가 합의해 온 원칙을 믿었던 거죠. 이건 우리 모두의 회사니까 개인의 이해득실을 따지기보다 함께 잘 먹고 잘 사는 게 중요하다는 원칙 말이에요.

큰 갈등이 없었다는 게 더 놀랍네요.
대신 회사를 처음 시작할 때는 친구들과 갈등이 많았죠. 서로 달라도 너무 다르니까요. 지금은 서로 ‘도깨비 빤스’라고 불러요. 동요 중에 “도깨비 빤스는 튼튼해요. 질기고도 튼튼해요.” 이런 노래가 있어요. 저희 관계도 멀어지고 늘어나는데 찢어지진 않거든요. 사업을 함께 하면서 서로 스타일이 다르니까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각자의 길을 가겠다고 찢어지기도 했지요. 그런데 혼자 사업하는 게 쉽겠어요? 결국 다시 모여서 함께 하게 되는 거죠. 찢어도 조금 있으면 딱 붙는 게 ‘도깨비 빤스’ 같은 저희 관계예요. 처음에는 실리를 추구하던 사람도 명분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워낙 끈끈하게 뭉쳐있으니까 결국 그 분위기에 흡수되고요. 지금은 회사에서도 저희를 개인이 아니라 그룹으로 봐주는 것 같아요.

▲ 해피브릿지 협동조합은 욕망을 절제하며 세상에 열린 회사를 꿈꾼다.
협동조합으로 전환할 때 주위 반응은 어땠나요? 직원들이나 가족들은?
다른 집은 잘 모르겠지만, 저희 아내는 서운했던 거 같아요. 남편이 사업한다고 출장 다니고 술 마시고 해도, 나중에 회사가 잘 되면 뭔가 보상이 있을 거라 기대했겠죠. 지금 전셋집에 살고 아이들을 혼자 키우느라 힘들어도 남편의 빈자리를 보상할 무언가가 있겠지 했는데, 갑자기 협동조합으로 전환을 한다니까 반대하진 않아도 무척 서운했을 겁니다. 회사 구성원들도 입장 차이는 있었죠. 전환을 주도한 1세대가 있다면, 그 일에 협력한 1.5세대가 있고, 일하다보니 어느새 협동조합으로 전환된 2세대가 있어요. 협동조합 전환 후에 상황을 알고 입사한 3세대도 있죠. 세대 간에 조직을 바라보는 관점과 생각을 통합해가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예요. 오랫동안 일했던 직원들은 더 나은 급여와 존중을 기대했을 텐데, 이제 모두가 평등한 조합원이고 급여 차이도 크지 않다고 하니 자기 일에서 의미를 찾기 어려워했어요. 새로 조합원이 된 세대에게 책임의식을 불어넣어주는 것도 과제입니다.

협동조합으로 전환하고 새롭게 진행하는 프로젝트도 있나요?
대표적인 것으로 ‘해피버드 프로젝트’가 있어요. 필리핀의 나보타스라는 빈민촌에 협동 농장을 짓는데 저희가 지원을 해요. 농장을 지어서 이 분들의 자립을 돕는 거죠. 단순히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는 것만이 아니라 직원 교육의 효과도 있어요. 매년 다섯 차례씩 5~7명을 나보타스에 보내고 있어요. 양계를 하는 곳인데 거기서 홈스테이도 하고, 농장 짓는 일도 돕고, 마지막 하루 이틀은 활동을 평가하면서 쉬다가 오는 일정이에요. 저희 급여 체계는 직원들이 직접 상의해서 결정한 부분인데, 급여의 절대 액수가 적은 것은 아니지만 사람의 욕망을 다 만족시킬 수는 없잖아요. 급여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렇지만 협동조합을 유지하려면 어느 정도 이 욕망을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직원들이 나보타스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지내면서 ‘함께 사는 행복’을 더 많이 체험하고, 개인적인 욕망을 다스리는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국내에서는 직원협동조합에 대해 알리고, 협동조합을 키워서 청년들에게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 고민하고 있어요. 우리가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람이 직장을 얻고 그 안에서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사회적 공공성을 끊임없이 고민하는 기업이네요.
이십 대부터 가톨릭청년운동을 하면서 제 안에 형성된 세계관과 가치관이 지금도 기업을 하는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중에서도 신앙이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어요. 세상을 위해 자신을 내맡기고, 특별히 가난한 이들을 위해 투신했던 분이 또한 예수님이잖아요. 이런 치열한 고민이 한때 젊은 시절에 부리는 객기가 아니라, 우리 삶을 관통하는 가치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존 사회와 교회에 대한 비판적인 의식과 사회과 교회를 쇄신하고 싶은 마음이 작용하는 거죠. 교회는 단순히 성당 건물 안에 있는 게 아닌 것처럼, 기업 역시 단순한 돈벌이 수단이 아니라 일을 통해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걸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찾아낸 게 협동조합이죠. 협동조합이 당장 자본주의 사회를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대신 시장과 자본이 빼앗지 못하도록 공동체와 인간다운 삶을 지켜내는 울타리는 될 수 있다고 보는 거죠. 우리의 생활을 물질적으로 해결해가면서도 인간적인 가치를 사회 안에 복원해 나가는 방법이라서, 한번 도전해 볼만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이희연 기자/뜻밖의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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