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세월호 그리고 아빠]
2014년 4월 16일 아침, 나는 광화문의 큰 서점에 들러 모처럼 빈 시간을 한가롭게 보냈다. 내 책 <나는 튀는 도시보다 참한 도시가 좋다>를 출간한 뒤로는 서점에 가면 늘 내 책부터 살핀다. 매대에 예쁘게 자리 잡고 있는 책을 확인하고 전공 분야 책과 다른 분야 책, 베스트셀러도 둘러보았다. 11시쯤 가까운 언론사에 근무하는 지인에게 점심이나 하자며 문자를 보냈다. 바로 답장이 왔다. “수학여행선 침몰로 대기상태입니다.” 사고가 났나보다 하며 걱정하고 있는데 채 10분도 안되어 다시 문자가 왔다. “정교수님, 다행히 전원구조네요. 점심 하실래요?”
광화문 일대를 꿰고 있는 지인과 오래된 맛집에서 점심을 먹고 헤어졌다. 오후에 서울시 회의에 참석하는 내내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회의 중에 옆자리에 있던 분이 스마트폰을 보여주며 큰일 났다는 얘기를 할 때까지도 전원구조로 알고 있었다.
전원구조는 오보였다. 결국 배에 갇혀있던 학생들과 승객들을 단 한 명도 구하지 못했다. 그날부터 대한민국은 팽목항 앞바다에 가라앉는 세월호와 한 몸이 되었다. 함께 애태우며 울었고 간절히 빌었지만 끝내 가라앉고 말았다. 출근길에 뉴스를 듣다가 펑펑 울고, 눈앞에서 죽어가는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을 부모 마음을 생각하며 가슴을 쳤다. “기다리라!”는 어른들 말을 철석같이 믿고 기다리다가 절망했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죄스러워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일 년이 지났다. 명백히 밝혀진 것도 없고 또 바뀐 것도 없다. 실종자 아홉 명이 아직 배 안에 있는데 인양작업은 시작도 못하고 있다. 세월호의 이 슬픈 현실을 어떻게 해야 온전히 치유하고 건너갈 수 있을까. 아이들을 키우는 아빠로서 생각해보고 또 생각해본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많겠지만 두 가지만큼은 꼭 해내고 싶다.
하나는 ‘안전한 대한민국’ 만들기다. 부활절을 앞둔 토요일부터 이틀간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 안산에서 광화문까지 걸으면서 깨달은 게 있다. 세월호 가족들이 가장 간절히 원하는 것은 안전한 대한민국 만들기라는 것을. 특별법에 따라 구성된 특별조사위원회가 명확한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엄중히 처벌해야 참사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 재난예방과 구조시스템을 혁신해야 안전한 대한민국이 가능해질 것이다. 세월호를 계기로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었다는 공감과 확신이 있어야 부모들도 아이들을 편히 보내줄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는 ‘아래로부터의 교육개혁’이다. 엄마 아빠들이 정신 차리고 눈을 떠서 이 미친 것 같은 교육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을 과도한 경쟁트랙에서 이제는 풀어주어야 한다.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아니 평생을 정글 같은 각축장에서 각자 알아서 생존하라고 더 이상 내몰지 말아야 한다. 교육개혁을 정부에 기대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소비자들이 거부하지 않는 한 사교육시장과 교육당국의 강고한 연결고리를 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부모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결단하고 행동해야 한다. 선행학습 안 시키기, 학원 안 보내기처럼 쉽고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나씩 시작하자. 이런 운동을 시작하고 동참하는 부모들의 선언과 인증운동이 들불처럼 번져가길 바란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안전한 대한민국 만들기가 희생자의 한을 풀어주는 씻김의 예식이라면, 우리 부모들의 자발적 결단을 통한 교육개혁 운동은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의례가 될 것이다. 그렇게 우리 세상이 바뀌어야 희생된 젊은 넋들도 환히 웃을 수 있을 것이다.
세월호의 깊은 수렁 속에서 간절한 꿈을 꾼다. 2020년 4월 어느 날, 어느 고등학교의 교실을 들여다보는 꿈을. 학급 이름도 <유민반>, <성호반>, <예은반>으로 바뀐 교실에서 이런 대화가 오고가는 것을 지켜보는 꿈이다.
“얘들아, 너희 언니들과 형들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학원과 학교에서 죽을 고생을 했단다. 너희처럼 맘껏 뛰놀지 못하고 말이야. 이런 변화를 누가 만들었는지 너희는 잘 알지?”
“네! 알고말고요. 세월호 언니 오빠들, 형 누나들이죠.”
정석 / 서울시립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