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세월호 그리고 엄마]

봄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겨울 지나 봄이 왔다고 첫 소식을 알려준 부지런하고 어여쁜 목련, 진달래, 개나리, 벚꽃이 이 비를 맞고 다 떨어져 버리겠지요. 늘 처음처럼 눈부시게 아름답고 여린 것들은 순식간에 피었다가 순식간에 떠나가는 것만 같습니다.

삼 년 전 여름 두 아이를 데리고 여름휴가를 떠난 날, 봄꽃만큼이나 빛나고 사랑스러운 둘째 아들을 바다에서 잃고 말았습니다. 그 녀석이 바다에 빠져서 파도에 떠밀려 점 같아졌을 때가 되어서야 ‘119 구조대원들’이 나타났고, 가슴을 졸이며 기다리던 내 곁으로 그들이 다가왔을 때 이미 우리 눈에 아이는 없었습니다. 그 망망한 바다에서 아이의 시신을 찾는 해경 잠수부들을 멍청히 바라보며, 엄마라는 사람이 자식을 구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하는 기도뿐이었습니다. “제발 제 아이 몸이라도 찾게 해주세요.”

놀러간 길이 황천길이 되었고, 시원한 바닷물에서 신나게 물놀이를 하려던 아이는 깊은 바다 쪽으로 둥둥 떠밀려가다가 결국 가라앉아버리고 말았습니다. 갑자기 공포스럽게 변해버린 바다를 숨죽이며 무기력하게 지켜보다가 아이의 시신을 찾았다는 해경들의 신호를 확인하고서야, 저는 쪼그린 채 울던 딸을 끌어안고 '내 아이가 죽어버렸다는 믿기지 않는 현실'과 '그래도 시신을 찾았다는 애처로운 안도감'으로 통곡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를 지켜내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감당키 어려운 슬픔 속에서 잠도 밥도 잊은 채, 죽지 않아서 목숨을 이어갈 뿐인 저에게, 세월호의 비극은 차마 곁눈질을 할 수도 없을 고통과 아픔으로 다시 한 번 내 몸을 찢어발기는 듯했습니다. 우리 아이와 똑같이 놀러갔다가 당한 집단적인 참변, 시커먼 바다의 무자비한 집어삼킴, 죽어가는 자식을 직접 뛰어들어 구할 수 없는 부모들의 비참한 무력감이 저를 또 짓밟았습니다. 게다가 진실을 밝히지 않으려는 검은 구조악의 그림자와 자식 잃은 부모를 조롱하고 욕보이는 다른 부모들의 어처구니없는 행태는, 다시 봄꽃이 피고 수학여행을 떠나려고 준비하며 설레는 우리 자녀들을 또 집어삼킬 것만 같아 섬찟합니다.

▲ 세월호의 비극은 차마 곁눈질을 할 수도 없을 고통과 아픔으로... ⓒ한상봉

제 아이도, 세월호에 탔던 건강한 아이들도 아무 예고 없이 가버렸습니다. 새봄은 돌아왔건만, 제 아이와 그네들은 인생의 봄을 맞아 싱그러운 봄꽃을 피우고는 서둘러 아깝고 아깝게 떠나갔습니다. 봄꽃 같고 봄빛 같은 아이들을 바다에서 잃고 그 고통의 바다에 덩달아 빠져있으면서도 살아가고 있는 저와 그들의 부모는 무엇을 바라보고 어떻게 살면 좋을까요?

어린 자식을 잃어 몸과 마음이 늘어지고 정신과 영혼이 메말라가던 저는, 예수의 시신을 무릎에 올려놓고 바라보는 마리아를 표현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아들이 피 흘리며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을 오랫동안 숨죽이며 지켜보았을 어미의 표정이 어찌 그리도 단정할 수 있단 말인가?’ 아들을 온몸을 다해 끌어안고 대성통곡을 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그녀의 초연하고 무심한 태도는 제 속의 분노를 활활 지폈습니다. ‘나도 마리아도 똑같이 생때같은 자식을 잃었는데, 내가 이상한 건가 아니면 마리아가 이상한 건가?’

아이가 떠난 후 두해를 지내고서야, 저는 어머니 마리아를 조금씩 헤아리기 시작했습니다. ‘마리아는 아들이 죽어가는 동안 함께 죽어갔던 거였구나! 그래서 아들의 시신을 받아든 순간, 아무런 표정이나 마음의 움직임도 없이 숨만 쉬는 시신으로 굳어버렸나 보다! 그렇게 아들과 함께 산목숨으로 죽었기 때문에, 아들과 함께 부활의 세상을 열어갈 수 있었던 것일까?’ 이런 작은 깨침이 찾아온 후에야, 저는 간신히 반쯤 죽은 상태에서 조금씩 기어 나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잃고 세 번째 봄을 맞은 올봄에 저는 ‘영원한 봄’인 둘째 녀석을 소중하게 품고서, 인생의 여름을 향해 성실히 걸어가는 첫째 딸을 바라봅니다. 세월호에서 ‘영원한 봄’을 잃은 어머니 아버지들도, 다시 생명의 길을 찾으시길 성모 마리아께 기대어 기도드립니다.


유정원 / 평신도 신학자, 성 골롬반외방선교회 선교센터 실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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