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왔건만 봄과 같지 않다

파릇파릇
죽은 것만 같던 생명이
다시는 녹지 않을 것 같던 동토에
피어나고 있건만,

송이송이
다시 새로운 싹을
마을 뒷산 이곳저곳에
틔우고 있건만,

간당간당
금세 떠내려 갈 듯 한 풀포기가
흐르는 계곡물 가운데
자라나 있건만,

초롱초롱
밤새 내린 봄비 머금은 꽃이
등산객 오가는 길 가에
피어 있건만,

푸석푸석
썩어가는 나무토막은
부신 봄 햇살에도
알몸 허옇게 드러내고 버티고 있고,

달랑달랑
회칠한 무덤 같은 못은
썩어 역겨운 냄새를 토하면서도
방벽으로 흐르는 물을 막고 있고,

시들시들
생기 없는 제철 잃은 꽃은
벗어날 아무런 기약 없이
온실에 다소곳 피어 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은 왔건만
봄과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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