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칼럼-황인수 신부]

5세기 시리아에 시메온이라는 고행자가 있었다. 그는 지름이 1미터 남짓 되고 높이가 18미터나 되는 기둥 위에서 37년을 살았는데 교회 역사는 그를 첫 번째 기둥수도자(stylite)로 기록하고 있다. 시메온은 한 주일에 한 끼만 먹을 정도로 자신을 가혹하게 다루었는데, 덕분에 뱃가죽이 등에 닿아서 이마를 숙이면 발끝에 닿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본래 수도승 생활을 하려고 수도원에 들어갔던 사람이다. 하지만 다른 수도승들이 그를 견디지 못하난 바람에, 결국 자신은 수도원을 나와 광야에 움막을 짓고 혼자 살았다.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살지 않고 사람이 너무 고결하면 사람들이 불편해지는 법이라고 할까. 광야에서는 한동안 평화를 누릴 수 있었지만 사람들이 모여드는 바람에 그곳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성덕이 높다는 소문이 널리 퍼져 축복도 받고 기도도 청하려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던 것이다. 정작 제 삶은 바꾸려 하지 않고 성인의 축복을 받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넘쳐나는 법이니까. 시메온은 이 때문에 진절머리가 나서 다시 높은 산의 암벽 위로 피했으나 그곳도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바람에 결국 기둥 위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시메온이 기둥 위로 올라간 뒤 그와 같이 ‘기둥수도자’의 삶을 택하는 이들이 많이 생겨났는데, 그 가운데 한 세기 뒤에 활동한 같은 이름의 고행자가 유명하다. 역사는 이들을 노 시메온(대 시메온), 소 시메온이라는 이름으로 구별하여 부른다. 대개 이들에게는 하루 한 끼의 음식과 물이 제공되었는데 다른 수도승들이 이들을 뒷바라지 했다고 한다. 아무것도 감출 수 없는 기둥 위에서 하느님을 찾는 삶은 알려진 어떤 고행보다도 더 엄격하게 보인다.
대 시메온이 살던 시대는 5세기, 지금으로부터 천오백 년 전이지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우리는 다시 지상을 떠나 하늘로 오르는 사람들의 행렬을 지금 목격하고 있다. 조선소의 크레인 위로, 송전 철탑 위로, 광고탑 위로, 혹은 성당 종탑과 굴뚝 위로 노동자들이 올라간다. 학습지 교사들, 비정규직 노동자들, 해고 노동자들이 그들이다. 천육백 년 전의 고행 수도승들이 이 세상 사람들의 비원을 하느님께 올려드리기 위해 그들을 대표하여 기둥 위로 올라갔던 것처럼 이들 또한 천대받고 짓밟히는 이 세상의 약자들, 노동하는 사람들의 사정을 하느님께 말씀드리려 위로 위로 오르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대 시메온은 자신을 흠모하여 기둥 곁에 몰려드는 사람들을 막으려고 화살을 쏘았다는데 오늘날의 기둥 곁에는 제복을 입은 경찰들과 자본 측의 용역과 경비들이 곁에 오는 사람들을 막는다. 다만 그때처럼 간절한 그들의 마음을 아는 동료들과 선한 사람들이 끼니를 준비해 위로 올리고 아래서 함께 두 손을 포개고 마음을 맞대어 연대하고 있다.
기둥수도자를 가리키는 말 ‘스틸리테스’(stilites)는 기둥을 뜻하는 ‘스틸로스’(stilos)라는 그리스말에서 나왔다. 스틸리테스는 일종의 비석인데 아테네의 중심부에 반역자와 같은 범죄자들의 이름을 새겨놓은 기둥이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 시대의 노동자들은 고행자보다 범죄자 취급을 받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엄마가 며칠 뒤 이야기해 줬어. (아빠는) 복직하려고 굴뚝에 올라갔다고. 복직이 뭐냐고 물으니까 엄마가 그랬어. 아빠가 매일매일 집에 들어오는 거라고.”
70미터 굴뚝 위에 올라간 해고 노동자의 어린 아들이 쓴 일기의 한 대목이다. 언제일까, 우리 시대의 고행자들이 땅 위로 내려올 날은. 그들의 아내와 아이들이 매일매일 집에 들어오는 가장을 웃음으로 맞을 날은.
황인수 신부 / 성바오로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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