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발견] 장보련 젤뚜르다 인터뷰

광화문에 가면 늘 그녀가 있다. 이순신 장군 동산이 주는 위엄도 없이, 파닥거리는 세월호 천막 속에서 손가락을 꼬물거리며 노란 리본을 만들고, “세월호 잊지 말라” 전하는 책갈피를 만드는 손길이 있다. 장보련 젤뚜르다 님이다. 정의구현사제단이 대한문에서, 광화문에서 매일미사를 봉헌하던 그 빈자리를 채우는 사람들 속에서, 그녀에겐 이 천막이 성소이고 본당이고 일터다. 집안 일 마치고 오후 2시경, 늦어도 4시에는 광화문 천막으로 출근한다. 다 늦은 저녁에야, 때로 한밤중에야 귀가하는 그녀를 만났다.

▲ 세월호 천막 속에서 손가락을 꼬물거리며 노란 리본을 만들고, “세월호 잊지 말라” 전하는 책갈피를 만드는 손길이 있다. 장보련 젤뚜르다 . ⓒ한상봉


왜 광화문 천막에 있는 거죠?
매일미사가 사라진 뒤로 갈 곳이 없었어요. 처음엔 리본공작소에서 봉사하다가, 사람들이 리본을 받아도 달고 다니지 않는 걸 보고 다른 걸 해 보고 싶었어요. 지금도 천막에서 매주 수요일 7시에 천막 앞에서 미사가 봉헌되고, 주일에는 오후 6시에 천막미사가 봉헌되는데, 어느날 의정부 교구 현우석 신부님이 평화의 인사를 나누고 껴안아 주면서 “고맙습니다.” 하고 말씀하시는데 눈물이 나더군요. 이 미사가 너무 감동적이고 생동감이 느껴져서, 직접 리본을 사람들에게 달아주고 싶었어요,

리본을 나눠주는 게 아니라 달아주는 거군요.
리본을 가지고 가는 것과 다르잖아요, 처음에는 좀 목소리가 작아서 “노란 리본 달아드립니다.” 해도, 아무도 안 오는 거예요.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내가 아줌마인데, 하면서 큰소리로 말하기 시작했어요, 거기서는 제가 ‘젤뚜르다 할머니’로 통해요. 한 번 큰소리 내고나니 괜찮더라고요. “노란 리본 달아드립니다.” 하면 사람들이 쳐다봐요. 호객행위죠. 오시라고, 달아드린다고. 오는 분들은 정말 감사했죠. “고맙습니다. 노란 리본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달아주고서 “사랑합니다.” 하고 안아드렸어요, 미사 때처럼. 그러면 그 분들이 너무 감격하는 거예요. 그 분도 울고 나도 울고. “잊지 말아주세요. 또 오세요.” “친구 데리고 오세요.” 뭐, 이렇게 된 거죠.

슬로건을 만든 셈이군요.
시간이 지나면서 슬로건도 바뀌었어요. “미안하다.”라고요. 어른들은 괜찮은데, 초중고 애들한테는 너무 미안하더군요. 왜 이 아이들이 이 리본을 달아야 하나, 잘못은 우리가 했는데, 그런 거죠. 그래서 “할머니가 미안해. 그렇지만 달고 다녀. 단원고 언니 오빠들 잊지 말자.” 그렇게 된 거죠. 그러니깐 엄마들이 애들 데리고 오더라고요. 이렇게 한참 하다 보니깐 재미가 없어졌어요. 날씨도 조금 춥고 바람도 불고. 그 때 교보문고에 갔는데 “하나씩 받아가세요. 찍어가세요.” 하는 거예요. 보니까 아이스크림 막대에 스탬프를 막 찍어서 부채처럼 펼쳐 보이더군요, 책갈피래요. 이 사람들은 스탬프를 팔러 온 것인데, 저는 ‘저렇게 책갈피 만들자.’ 생각했어요. 그 날 밤에 색깔별로 아이스막대를 구해서 세월호 이야기를 적었어요.

지금은 좀 더 다양해진 것 같은데.
천막에 노란색만 있다가 다른 색깔이 등장하니까 신기한 모양이더군요. 오라고, 준다고, 공짜라고. 얼마냐 해서, 돈 안 받는다고 하면서 계속 준 거예요. 그래서 두 가지가 되었어요. 리본을 만들어 달아주고, 책갈피도 주면서 “책에 꽂고 세월호 잊지 마세요. 우리 잊으면 큰일 나요.” 이렇게 되었어요. 우리 가톨릭 천막에서 어느 수녀님과 후배가 털실로 팔찌를 만드는 걸 보고, 리본 실로 팔찌를 만들고 거기에 리본공작소에서 만든 리본을 끼우기로 했어요. 그랬더니 그것은 젊은 사람들이 너무 좋아하더군요. 리나 씨가 올해는 많이 감는 게 유행이라 해서, 실을 길게 해 다섯 번쯤 팔목에 감아줘요. 커플끼리 천막에 찾아오는 경우가 있어서 “이거 풀지 못하는 건데 하겠냐?”고 묻죠. 그러면 남자애랑 이렇게 보고 있다가 ‘풀지 마’ 하고 서로 약속하는 팔찌가 되었어요.

▲ 리본을 만들어 달아주고, 책갈피도 주면서 “책에 꽂고 세월호 잊지 마세요.” 가톨릭 천막에서 어느 수녀님과 후배가 털실로 팔찌를 만드는 걸 보고, 리본 실로 팔찌를 만들고 거기에 리본공작소에서 만든 리본을 끼우기로 했다.ⓒ한상봉

이 팔찌는 안 빠지나요?
네, 제가 꽉 매거든요. 그래서 둘이서 팔찌 매고 가면 “AS 받으러 또 오세요.” “광화문 한 번 더 오세요.” 하죠. 이러다 보니, 광화문에 붙어살게 되고, 제 남편이 저더러 “장여사 완전 불량주부야” 하죠. 큰 애가 작년에 대학진학 재수했는데, 엄마가 미안하다고 했더니 ‘엄마가 집에 있어봐야 밥 챙겨주는 것 밖에 하는 것이 없지 않냐.’고 괜찮다고 하더군요. 저희 애는 학원 안 다니고 집에서 재수했으니깐 주스 갈아놓고 밥 챙겨놓고, 작은 애는 학교에서 먹을 것 다 주고 밤 11시에 집에 오니까 문제 없어요. 큰 애는 이번에 대학 합격 했는데, 다 엄마 덕분이라고 하더군요, 엄마가 밖에 나와 있어서 그랬다고, 잔소리 안 해서 합격했다고요.

책갈피는 주문도 받는다면서요.
캐나다에서도 주문이 와요. 300개 해달라면 만들어 보내고 그러죠. 재료비 별로 안 들어요. 아이스막대 100개에 1,500원밖에 안 해요. 리본재료도 한 뭉치에 4,500원 밖에 안 해요. 이거 하나면 리본이 350개 나와요. 가끔 후원금 이야기가 들어와요. 그러면 제가 절대 안 받는다고 해요. 아는 수녀님들이 그런 소리 하시면 “제 삶의 오점을 수녀님들이 찍어주시면 안 되잖아요.” 제 남편하고 처음 약속한 것도 절대 후원금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어요. 그건 끝까지 갈 것 같아요. 없으면 안 하면 되죠. 딴 거 해도 되고요. 요즘은 글씨도 써줘요. 제 별명이 ‘추사 장’이었어요. 글씨에 관심이 많아요. 물론 이철수 선생님하고는 비교가 안 되지만. 상황실에서 매직 받아와서 피켓에 글씨 써주는 거죠. 어제도 “바다 속에 있는 현철이를 엄마 아빠 품으로.” “인양이 진실이다.” 그런 거 써줬어요.

 어디에서 힘을 받나요?
세월호 희생자 부모님들이죠. 그분들 생각하면 안타까와요. 제가 그 엄마라면 저는 아마 더 했을 것 같은데, 이분들은 온화하신 것 같아요. 전 안 그렇거든요. 세월호 참사 발생하고서, 제가 세면대에 물을 받아놓고 코로 들이마셔 봤어요. 눈물 나잖아요, 수영할 때 물 먹은 것처럼. 그 생각하면 막 신경질 나고 그래요. 이게 도대체 뭔가, 그래서 이 엄마들이랑 함께 있고 싶어요. 저를 모르는 엄마도 있고 팽목항에도 다녀왔지만 너무 안 됐어요. 부모가 자식한테 아무 것도 해준 것이 없잖아요. 그런 엄마들 심정이 어떻겠어요. 이분들은 지금도 집에 들어가지 못하세요. 집에 가면 아무도 없고, 아이들 흔적은 그대로 있고. 그래서 이분들이 광화문에 계시는 거죠. 저도 엄마라서 여기 왔지 딴 이유는 하나도 없어요. 여기 있으면 할아버지들이 지나가다가 이런 빨갱이 같은 ** 하잖아요. 처음에는 싸우려고 나갔죠. 하지만 아 저 사람들은 싸워도 소용이 없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래 난 빨갱이다.’ 라고 오시는 분들한테 말하죠.

신앙이 도움이 되던가요?
제 신앙이요? 제가 신앙 때문에 여기 오기는 했죠. 엄마이고 가톨릭 신자라서. 그런데 저는 믿음이 깊지도 않아요. 원래 개신교에 있다 신랑 때문에 천주교로 왔어요. 그런데 천주교에서 좋은 분들 만났죠. 특히 나승구 신부님 같은 분. 살면서 깨달은 것은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주님이 주시지 않으면 받을 수 없다는 거죠. 지금도 전세를 살고 있지만, 살림이 훨씬 어렵던 시절에도 제가 식전기도를 열심히 해서 이렇게 먹고 사는구나, 생각했죠. 다 하느님 마음인 것 같아요. 단지 나는 손을 벌리고 있어야지 내가 움켜쥐면 주님이 줄 수 없다는 것을 그 때 알았어요.

신앙생활은 대한문 미사를 하면서 많이 배웠어요. 거리미사를 하는데, 상지종 신부님이 그러더군요. 내가 일하는 것이 미사라고, 기도는 행동이라고 말이죠, 우리가 아프다 힘들다 할 때 기도해줄 게 하는 것보다 행동으로 보여 주는 게 훨씬 좋은 기도라는 겁니다. 예전에는 부암동에서 명동성당까지 매일 새벽미사를 다니곤 했는데, 요즘은 안 그래요. 명동성당 옆에 새로 지은 빌딩을 다녀온 친구가 호텔 아케이드 같다고 하더군요. 속상해요.

▲ "명동성당에서는 미사만 드렸는데, 여기서는 행동하죠. 그런데 예수님은 행동하는 예수였어요. 지금 천막에 붙여 놓은 글이 있는데, 예언자들은 거리에 있었지 어느 공간 안에 있지 않았다는 글이죠." ⓒ한상봉

천막에서 경험한 예수님은 어떤 분인가요?
명동성당에서는 미사만 드렸는데, 여기서는 행동하죠. 그런데 예수님은 행동하는 예수였어요. 지금 천막에 붙여 놓은 글이 있는데, 예언자들은 거리에 있었지 어느 공간 안에 있지 않았다는 글이죠. 예언자들은 남들의 질시와 수고로움을 온몸으로 체험했다는 거죠. 굉장히 좋더라고요.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렇게 해야 한다는 거죠. 제가 성서백주간을 하는데, 묵상시간에 욕을 먹더라도 꼭 세월호 이야기를 해요. 반응이 없어도 꿋꿋하게. 그리고 상지종 신부님 매일 묵상글이 올라오면 마지막에 꼭 읽어줘요. 굉장히 긴데 욕을 먹든 말든 그냥 읽어요, 하나도 빠짐없이. 그러면서 무언의 이야기를 하죠. 성당 안에서 봉사하는 것보다 길거리로 나가면 더 좋다고.

다른 신자들이 옆에 있으면 꼭 하시고 싶은 말씀은.
집에 앉아서 기도만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길거리로 나오는 게 필요해요. 많은 신부님들이 천막미사를 하시는데 감사드려요. 신자들도 함께 나왔으면 좋겠어요. 레지오든 뭐든 다 좋은데 이런 자리에서도 얼굴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남들은 어떤지 모르지만, 저는 아무튼 이게 좋아요.

*<뜻밖의 소식> 오프라인 잡지 판에서 장보련  님을 방보련으로 잘못 적었습니다. 인터넷판에서 바로 잡습니다.  장보련 선생님께 죄송하다는 말씀 덧붙입니다.    

한상봉 기자/ 뜻밖의 소식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