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칼럼-양운기 수사]
지난달 보름 쯤, 한 달에 한 번 정도 가는 동네 목욕탕 이발비가 만 이 천원으로 20%가 인상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발비가 이렇게 크게 올랐지요?’ ‘십 칠 년 만에 인상 되었습니다’ 할 말이 없었습니다.
17년 동안 이발 비는 만원이었던 것입니다. 그동안 올리지 못하게 막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천 원은 오른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주인양반이 ‘이천 원을 더 받으려니 미안해서 받지 못하겠어요. 그러니 금년 말까지는 만원만 받고 있습니다.’ 하루에 20명 정도 손님이 있으니 하루에 2만 원 쯤 적게 받고 있는 셈이지요. 12월 초에 이발비가 올랐는데 연말까지 만원만 받겠다고 하니 12월 한 달은 약 50만 원 정도의 수입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참 착한 분입니다. 자신도 서민이니 서민들 호주머니 2천원을 털지 않겠다는 소박한 마음입니다.
그런데 목욕탕 이발소 칸에는 TV를 항상 켜놓고 있는데 종편 방송에 채널을 고정시켜 놓았습니다. 제가 ‘다른 방송 켜 보죠?’ 라고 말을 걸었습니다. ‘아니 저 방송이 시원시원하고 쉽게 설명을 잘해요. 딱 딱 들어맞는 말을 해요’ 아! TV조선이었습니다. 어찌하여 이천 원을 더 받기 미안해하는 주인양반이 이런 종편을 즐겨 보면서 ‘딱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을까요? 뭐라고 더 말을 걸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TV를 끄자고 말 할 수도 없었습니다.

요즘은 동네 식당이나 수퍼마켓이나 어디를 가도 TV 채널이 종편방송에 고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매체가 ‘사회의 공동선과 인간발전’을 염두에 두며 주변의 약자들에게 희망을 주기 보기 보다는 현재의 불공정한 기득권을 견고히 하고 자극적, 편파적 보도 프로그램을 지나치게 많이 편성함으로써 사회 양극화를 조장하는 경우를 자주 목격합니다.
목욕탕에 종편 TV가 그렇습니다. 교회는 ‘매체가 진실한 커뮤니케이션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은 ‘매체가 온전히 자신의 역할을 하지 않을 때 여러 형태로 인간을 배척하고 가난과 소외로 몰아낸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교회는 매체가 ‘인간의 존엄함을 증가시키고 나누어 가지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목욕탕 이발소 사장님은 인상된 이발비를 받기를 미안해하는 착한 마음씨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에 반하는 종편 방송을 즐겨 시청하면서 ‘좋은 방송’이라고 할 수 있는지 참 아쉽습니다. 그가 신앙인인지 아닌지와 상관없이 말입니다.
이발을 하면서 계속 고정된 채널을 풀 궁리를 했습니다. 착한 마음씨의 사장님이라는 사실을 믿고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한 번 더 말을 걸었습니다. ‘사장님, 저거 말고 다른 걸로 볼 수 없을까요?’ 통했습니다. 사장님이 고객의 요청이라 받아들인 것인지, 아니면 하느님의 성령께서 도와주신 것인지 모르지만 사장님이 고정된 채널을 풀었습니다. 다른 방송도 별로 맘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날 목욕탕 이발소의 고정된 채널을 풀었다는 작은 기쁨이 하루를 살게 했습니다. 문득 요한 사도의 말씀이 기억났습니다.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양운기 수사/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