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믿는다는 것]

“요즘 성당에서 안 보이네요?” 본당 구역장이 어떻게 알았는지 묻는다.
“예, 일이 좀 있어서요.”
“어쩜! 고백성사 보셔야겠네요!”
주일미사에 못 간지가 석 달째다. 엄밀히 따지면 못 간 것이 아니라 안 간 것이다.
석달전, 오랫만에 현정이한테서 전화가 왔다. “엄마가 뇌경색으로 쓰러졌어요...”
명랑하고 애교덩어리 녀석인데 반은 떨고 반은 울음이다.

현정이는 경북 안동 근처의 오지 산골에서 고등학교까지 졸업하고 노량진 고시촌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스무 살 아가씨다. 아버지는 초등학교 다닐 때 폐암으로 돌아가셨고 어머니가 밭농사 몇 평으로 현정이와 동생을 키웠다. 공시생이지만 학원비와 생활비를 오롯이 스스로 감당해야 했기에 약국에서 알바를 시작했다. 현정이와 나는 그렇게 만났다.

많은 알바생을 겪어봤지만 이렇게 스마트하고 부지런한 친구를 보지 못했다. 청소, 심부름, 약 정리는 물론이고 내가 본받아야할 정도로 약국의 전문지식까지 습득하는 특별한 알바생이었다. 고시촌에서 학원수업이 끝나면 부랴부랴 약국에 와서 밤 10시까지 알바를 하는 것은 무리였다. 공부는커녕 자취방에 가면 쓰러져서 잠을 자기 바쁘니... 사정이 하도 딱해서 일요일만 근무하고 넉넉한 보수를 받을수 있는 약국을 물색했다. 다행히 선배인 김 약사님의 약국으로 옮겨서 시험 준비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한상봉
어머니가 뇌경색으로 쓰러지고 혼자 남은 동생이 걱정되자 그녀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나는 필사적으로 그녀를 말렸다. 너같이 멋있는 젊은이가 꿈을 포기하면 안 된다고. 안심하지 못하는 현정이에게 제안을 했다. 고향에 사는 삼촌에게 엄마의 간병비를 보내드리자고. 대신 매주 일요일에 고향에 가서 어머니를 뵙고 오라고.

문제는 알바 자리였다. 일요일마다 고향에 내려가면 약국은 다른 알바생을 구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알바 자리를 빼앗긴다. 사실 이만한 알바 자리는 어디에도 없다. 지금까지 학원비와 생활비를 감당한 것도 순전히 이 알바 덕이었고, 학원과 가까워서 시간을 아낄 수 있는데다 인심좋은 김 약사님이 상여금까지 넉넉히 챙겨줘서 동생의 학비도 조금 보탤수 있었다. 가난한 수험생인 그녀에게는 이 자리가 생계가 걸린 생존의 터전이니 지켜야 한다.

고민 끝에 내가 현정이 대신 일요일마다 약국에서 알바 일을 해주기로 했다. 주일미사가 마음에 걸렸지만 현정이의 알바 자리를 지켜주는 것이 사람 하나 살리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어릴 때 아버지가 항상 말씀하신 기억이 났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짐을 져주어야 한다.”

내 주위에 현정이 같은 어려운 이웃을 만나면서 그 뜻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누군가의 짐을 져 준다는 것은 자유로운 사람이 할 수 있는 특권이다. 그 자유는 믿음에서 온다. 무엇을 믿는가? ‘나는 자유인’이라는 진리를 믿는 믿음이다. 그 ‘믿음’과 ‘자유’로 사랑하고 연민하고 누군가의 짐을 기꺼이 지는 ‘연대’의 힘을 얻는다.

고백성사를 봐야한다는 구역장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갑자기 죄인이 된 기분이다. 주일미사를 포기하고 현정이의 짐을 같이 짊어지기로 선택한 나, 나는 믿음의 사람일까? 아닐까?

심명희/약사, 선우경식기념자활터 봉사자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