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 한겨레신문 2009.1.20.)


용산재개발 현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인한 죽음을 두고 검찰이 방화범을 찾는 중이라고 한다. 1월말까지는 방화범을 찾아내 발표한다고 했으나 발화원인을 두고 시너가 뿌려지고 시너통이 뒹구는 시위현장에 화염병이 떨어져 발화됐다는 경찰의 주장과 경찰특공대를 실은 컨테이너가 시위자들이 있는 망루와 충돌하고 특공대원들이 연장으로 망루지붕을 내리치는 과정에서 불이 났다는 주장으로 나뉘어 공방전을 벌일 뿐 검찰도 시원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를 지켜보는 이들의 가슴에는 저마다 불이 일고 있다. 땅과 건물의 값이 치솟는 만큼 사람의 가치는 한없이 추락하는 현실을 보면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용산재개발 지역은 2003년 미군기지 반환계획에 따라 강남 부동산값을 넘는 금싸라기 부지로 알려졌다. 그 이후로 부지 곳곳의 허름한 저층 건물들은 부숴지고 그 자리에 새로 고층건물들이 들어서는데 여기서 나오는 개발이득은 개발주체들인 조합(지주와 건물주들)과 건설사와 투기세력 그리고 서울시와 재개발을 정책으로 내건 사람들의 몫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에 반해 세들어 살던 주거 세입자들은 주거이전비로 가구당 평균 1680만원을 지급받고, 상가 세입자들은 휴업보상금 등으로 가구당 평균 2500만원의 보상금만을 받는다고 하는데, 이는 가게에 들어간 권리금과 인테리어 비용 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보상금액이라고 한다.

주인으로부터 전세금을 돌려받고 주거 이전비를 받는다 해도 이 돈으로는 철거 이전에 그들이 세들어 살던 집만한 걸 얻을 수 없고, 장사하던 사람들도 권리금과 가게 수리비용 일체를 받지 못하니 재개발로 인해 그들의 생계터전이 더 열악해지는 셈이다. 재개발이 생길 때마다 구역민의 80%가 세입자들이라고 하니 이들의 형편은 개발 이전보다 더욱 영세해지는 것이다. 언제쯤 발화원인과 방화범이 밝혀져 불속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의 아픔이 위로받을 수 있을런지 알 수 없다.

역사상 유명한 화재사건으로 로마대화재(AD 64년 7월 18일 밤 발생)를 들 수 있다. 이 화재사건은 이천 년이 지나는 동안에도 방화범을 두고 설왕설래할 뿐 진실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대개의 그리스도인들은 친그리스도교 성향의 작가들이 창작한 소설이나 영화를 보며 네로황제가 수하들을 시켜 불을 질렀다고 알고 있다. 소설 <쿼바디스>는 폴란드의 작가 헨리크 셴케비치(1846-1916)가 1896년 에 쓴 소설로, 그는 이 소설로 1905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후에 헐리우드에서 영화로 제작되어 로버트 테일러와 데보라 카가 로마의 장군과 이방인 기독교 처녀로 분하여 많은 이들에게 사랑의 고귀함과 부패한 로마의 정신과 그리스도교를 비교하며 그리스도교의 건실함이 구원의 요체임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이 작품에서도 로마대화재를 일으킨 장본인은 바로 네로였다. 그는 처음 불이 발생한 장소인 경기장 근처에 새 궁전을 짓고 싶은 야망을 품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다 그리스 문화를 동경하던 그가 호메로스의 「일리어드」를 읽고 고대도시 트로이의 멸망에 붙여진 시에 감동한 나머지 로마의 멸망을 직접 본다면 자신도 그러한 시를 쓸 수 있으리라는 생각했다는 것이다. 네로는 로마시에 불을 지르고 무대의상을 입고 타오르는 불꽃을 보며 그 멸망을 시로 읊었다고 한다. 그러나 곧 대화재로 민심이 흉흉해지며 방화범으로 자신을 지목하며 압박해오자, 그의 정치적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네로는 반로마적인 무리로 비난받고 있던 그리스도교인들에게 방화의 죄를 덮어씌웠다. 그리고 곧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를 시작하여 수많은 순교자들이 사자우리에서 사지가 찢기는 고통을 겪으며 숨져갔다.

그럼 소설 속의 이러한 분석은 어느 정도나 사실에 충실한 것일까.

오래 전부터 네로시대를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 방화범은 네로가 아니라는 주장을 펼쳐왔다. 네로를 지목하는 근거들은 소문에 불과하고, 그 소문의 근원지는 반(反) 네로파들이 네로를 제거하고 권력을 잡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화재가 발생한 당시, 네로는 로마에서 56㎞ 떨어져 있는 안티움 별장에 있었고 화재 소식을 접하자, 그는 곧 로마로 돌아와 화재진압을 지휘하고 이재민에 대한 구호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특히 양곡을 값싸게 풀어 황제로서 재난에 대처하는 모범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화재로 2/3 이상이 폐허로 변한 로마시를 소방대책이 완비된 계획도시로 바꾸고자 불에 강한 돌을 이용하여 집을 짓도록 했다. 화재 당시 네로의 행동은 비난받을 게 없지만 그는 많은 만행을 저지른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가 황제의 권좌에 오르기까지에는 어머니를 비롯한 그의 가족들의 비리와 비극적인 일들이 많았었다. 그의 재위 기간 중 한 동안은 선정을 베풀었지만 곧 광기에 싸인 세월을 보내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인물이니, 불을 질렀다는 누명(?)을 덮어씌우기에 안성마춤인 캐릭터였을 것이다.

로마대화재의 원인은 아직도 수수께끼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소설과 영화로 접한 <쿼바디스>를 비롯한 작품들에 영향을 받고 당시 황제였던 네로를 범인으로 알고 있다. 작가의 의도는 권력자들이 그들의 욕망을 실현할 방법을 찾아 불을 지르고, 일이 안 좋게 돌아가자 그 화재로 피해를 본 사람들에게 누명을 뒤집어 씌우는 모순된 현실을 그리고자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문자 그대로만 읽는데 익숙해서인지 문자 그대로 읽고 저장한다.

<로마사연대기>에서 역사가 타키투스는 “흉한들이 불을 못 끄게 막았고 누군가의 지시를 받은 듯 횃불을 던져댔다. 황제는 불타는 로마를 보며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불렀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본 사람도 없었고 어디서 시작된 소문인지 알 수가 없었으며 세부적인 일은 저마다 말이 다르다”고 기록하고 있다.

근래, 새롭게 네로시대의 연구에 의하면 로마대화재를 일으킨 사람은 크라수스-제1차 삼두정치의 핵심인물-가 아닐까 하는 의견을 제시한다. 크라수스는 요즘식으로 말하면 재개발업자인데, 당시 로마시의 부동산을 이용하여 큰돈을 벌었다고 한다. 그는 화재보험도 없었을 당시, 불타고 있는 건물주를 찾아가 파산하게 된 건물주인을 설득해 불타는 건물을 사들이고는 자신의 노예들을 시켜 불을 끄고 그 자리에 새로운 건물을 지어 재개발이득을 올렸다고 한다. 크라수스의 노예들 중엔 소방전문가들은 물론 설계, 배수, 위생시설, 미장관련 등 건축전문 노예들이 있었는가 하면 건물에 불을 지르는 비밀집단도 있었다고 한다.(NERO, 에드워드 챔플린 著, 하버드대학 출판부 2004년)

AD64년 7월 18일 밤, 로마의 경기장에서 시작된 불은 누구의 지시로 일어났는지 아직도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그런데 지금 여기, 2009년 1월 서울의 용산(龍山)에서 일어난 화재의 원인과 범인은 밝혀낼 수 있을까... .
청계천변 천막촌민들이 광주대단지 지금의 성남시로 버려지다시피 이주된 일은 30년이 지난 일이다. 그때의 사람들 가슴에 일었던 불-심화(心火)를 이번 용산에서 다시 목격한다. 우파(?) 작가로 곤욕을 많이 치룬 이문열 선생의 <변경>이라누 소설을 보자. 작가의 분신인 주인공 가족들은 광주대단지로 쫓겨나 억울한 일들을 많이 겪는다. 소설 속 주인공은 농성자들의 대표로 활동하였다.
지금의 정권이 건실한 우파라면 우파작가의 조언을 들어 해결책을 도모할 수 있지 않을까.

재개발 현장은 갑작스럽게 불어난 땅과 건물의 부가가치로, 이런 이득을 얻게 된 사람들의 행태가 언뜻 두 개의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려는 이무기 설화를 떠올리게 한다. 하나를 뱉어내 가난한 이들에게 주고 하나만 물어야만 이무기는 용으로 변신하여 하늘로 오를 수 있었다. 그래야만 제집을 지니지 못하고 세입자로 살아온 사람들 가슴에서 타오르는 심화(心火)가 진화되며 고요함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규원/ 드라마와 소설 작가, 어린이 책읽기 교실 <글방집>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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