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맹이만 팔아요, 알맹상점 - 용기를 내면 세상이 바뀌는 제로웨이스트 습관”, 고금숙, 이주은, 양래교, 위즈덤하우스, 2022

“알맹이만 팔아요, 알맹상점 - 용기를 내면 세상이 바뀌는 제로웨이스트 습관”, 고금숙, 이주은, 양래교, 위즈덤하우스, 2022. (표지 출처 = 위즈덤하우스)
“알맹이만 팔아요, 알맹상점 - 용기를 내면 세상이 바뀌는 제로웨이스트 습관”, 고금숙, 이주은, 양래교, 위즈덤하우스, 2022. (표지 출처 = 위즈덤하우스)

정말 늦었을지 모르지만, 생태적 회심의 문화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무단 투기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수산물을 많이 먹는 한국 사람들은 심란하다. 에어컨을 틀지 않으면 잠 못 이루는 한여름을 보내면서, 앞으로는 더욱더 더위가 심해질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영구동토층에서 4만 년 전에 잠들었던 선충이 꿈틀대기 시작했다는 뉴스에 섬찟하기도 했다. 이런 소식을 들으면서 지구가 망한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사실 지구가 망한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고 대단한 착각이다. 지구는 끄떡없다. 망하는 건 인간과 현존하는 상당수 생물종일 뿐이다.

코로나 팬데믹 초기에 인간의 활동이 뜸해지니 자연이 생기를 찾았다는 소식이 여기저기에서 전해졌다. 어쩌면 지구 입장에서는 인간이 바이러스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봤다. ‘지구 공동의 집’은 그동안 우리에게 대가 없는 풍요를 선물해 주었다. 하지만 이제 인간에게 대가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제라도 기후 위기를 말하고 뭐라도 해 보려고 하지만 이미 늦었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우리가 대담한 문화적 혁명을 통하여 앞으로 나아가야 할 절박한 필요성을 알려 줍니다.”('찬미받으소서' 114항) ‘문화적 혁명’이란 말이 가슴에 깊게 울린다. 참으로 방대한 개념을 지닌 ‘문화’라는 말을 이해하는 데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문화를 ‘삶의 총체적 관행’이라고 할 때, 문화는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 습관, 패턴을 아우른다. 좀 더 직접적이고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아주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모양새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기를 쓰고 억지로 무엇인가를 해나가는 것이라기보다 누구라도 그러하듯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행하는 것,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오히려 불편한 것 그것이 문화다. 가령 한국 사회에서 아무리 버르장머리 없어도 아버지 앞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물론 가정에 따라 아버지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집도 있겠지만. 하여간 많은 사람이 대체로 따르는 행태를 말한다.

문화는 오래된 관습과 학습으로 어우러지다 보니 문화를 바꾸는 일은 참 쉽지 않다. 프랑스혁명 때는 달력을 새로 재편했다. 역사적 용어, 마르크스의 저작 이름, 에밀 졸라 소설(제라르 드파르디외 주연으로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던)에 등장하는 테르미도르, 브뤼메르, 제르미날도 다 혁명력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달이다. 거기에 1주일을 10일로 다시 엮고 하지만 그것이 오래갈 리 없다. 러시아혁명 때 과학적 언어를 사용한다고 ‘해가 뜬다’ 대신 ‘지구가 태양을 향한다’는 표현을 썼지만 오래된 습관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저의가 의심스러웠던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은 구습을 타파하고 새로운 삶의 양식을 건설하자는 명분을 내세웠는데, 그것은 쉽지 않을 뿐더리 어마어마한 폭력만 동원될 뿐이다.

이처럼 문화를 바꾸기란 쉽지 않지만, 지금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생태적 회심의 문화, 즉 ‘찬미받으소서 살아가기’는 이제 선택사항도 아니다. 앞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찬미받으소서'에서 말한 ‘문화적 혁명’은 획기적으로 우리 삶을 바꿔야 한다는 점을 제기한다. 세상을 망쳤던 익숙한 것, 익숙한 삶의 양식과 결별하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하는데,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여기에는 많은 공부와 관심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이 몸에 익숙해지게 하는 학습장이 있다면 더더욱 좋은 일이다.

새로운 문화의 학습장으로서 ‘알맹상점’

물건을 살 때 내용물만 살면 되는데, 포장재가 지나쳐 내용물만 파는 ‘제로웨이스트 샵’이 곳곳에 생겨났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알맹상점’은 제로웨이스트 샵의 아주 적절한 우리말 표현이겠다. 현재 망원동 월드컵시장 쪽과 서울역 두 곳에 있는데, 이곳의 여러 실험이 여러모로 많은 것을 시사한다.

알맹상점은 지난한 과정을 거치면서 만들어졌다. 동네에서 비닐봉지와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기 위해 모인 이른바 ‘쓰레기 덕후’들이 어쩌다가 의기투합해 알맹상점을 연다. 가게를 열기 전에 이미 새로운 문화를 고민하고, 일정한 활동을 펼쳤던 것이다. 게다가 화장품을 덜어서 팔려면 그에 합당한 자격증을 취득해야 하는 등, 여러모로 새로운 틀을 짜야 한다. 이 책은 그러한 과정을 담은 알맹상점의 분투기이며, 제로웨이스트 가게를 창업하고 싶은 수많은 미래 창업자에게는 가장 충실한 길 안내서가 되어 줄 것이다.

알맹상점 한 켠에 붙어 있는 글귀. ©김지환
알맹상점 한 켠에 붙어 있는 글귀. ©김지환

알맹상점에 가면 화장품, 세제, 커피, 차 등을 무게에 달아 산다. 물론 포장되어 있지 않으니 자신이 직접 살 물건을 담을 통을 가져가야 한다. 그런데 통을 가져가지 않으면 물건을 살 수 없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한쪽에 깨끗하게 씻은 플라스틱병과 유리병이 있으니 그걸 사용하면 된다. 알맹상점은 깨끗한 플라스틱병이나 유리병을 받아 소독해서 가게를 찾은 손님들이 사용할 수 있게 한다. 거기에 커피 연필, 대나무 칫솔 같은 다양한 친환경 소재 제품이 있다. 사실 직접 사지 않더라도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다.

알맹상점에서는 빈 용기에 자기가 필요한 만큼 덜어서 물건을 살 수 있게 해 놓았다. ©김지환
알맹상점에서는 빈 용기에 자기가 필요한 만큼 덜어서 물건을 살 수 있게 해 놓았다. ©김지환

이 가게는 친환경 물건을 구입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살아가면서 생겨나는 쓰레기가 하나라도 함부로 버려지지 않고 어떻게 순환시켜야 할지를 치열하게 고민한다. 자칫하면 그냥 버리거나 잘 되지도 않는데도 재활용되리라는 믿음으로 분리수거해 내놓을 뻔한 브리타 필터, 종이팩과 멸균팩(안에 은박지로 포장된), 각종 전선류, 플라스틱 병뚜껑, 오래되고 남아도는 사기그릇, 커피박(커피찌꺼기), 양파망, 작은 쇼핑백 등을 받아준다. 알맹상점에서 차곡차곡 모인 이 모든 것은 용처를 찾아 새롭게 태어난다. 이곳을 찾는 손님들은 물건을 사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그동안 모아 두었던 것을 건네기 위해서도 찾는다. 그렇게 자주 가게를 찾고 오가면서 새로운 문화를 가꿔 가는 공동체가 만들어진다.

이곳을 찾은 이들이 건넨 물건을 잘 정리해 보내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특히 대부분 버려지고 재활용률이 형편없는 종이팩과 멸균팩 재활용 분투기는 우리가 마구 쓰는 사물을 어떻게 잘 보내줘야 할지를 더욱더 깊게 고민하게 한다. 먼저 종이팩과 멸균팩은 일반 종이와 함께 배출해서는 안 된다. 재활용하기 위해서는 특수처리를 해야 하기에 따로 잘 모아 두어야 한다. 그나마 우유팩 같은 일반 팩은 주민센터에서 휴지로 교환해 주지만, 멸균팩은 주민센터에서 받아주지 않는다. 멸균팩을 재활용하는 업체는 세종시에 있다고 한다. 일정한 양이 모이면 그 업체로 택배를 보내는데, 국내 물량이 딸려 일본에서 재활용용 팩을 수입한다는 것이다. 한번은 업체 관계가자가 알맹상점을 찾기도 했는데, 어떻게 멸균팩을 그렇게 깨끗하게 처리해 보내 주는지 신기해 할 정도였다고 한다.

알맹상점에서 수거하는 재활용품들. 지금은 사진보다 훨씬 더 깔끔하게 잘 정리되어 있다. ©김지환
알맹상점에서 수거하는 재활용품들. 지금은 사진보다 훨씬 더 깔끔하게 잘 정리되어 있다. ©김지환
플라스틱병과 유리병을 건네주고(하루에 6개까지만 받아준다) 포인트가 쌓여 받은 리워드 플라스틱 뚜껑으로 만든 빗. ©김지환
플라스틱병과 유리병을 건네주고(하루에 6개까지만 받아준다) 포인트가 쌓여 받은 리워드 플라스틱 뚜껑으로 만든 빗. ©김지환

가성비 소비에서 가치 소비로, 알맹상점이 있어 좋다 

사실 브리타 필터, 팩 종류, 양파망, 전선은 열심히 분리수거해서 배출해도 버려질 가능성이 많다. 커피박은 음식물쓰레기로도 배출할 수 없어 종량제 봉투에 버려야 한다. 알맹상점은 그런 틈새를 찾아 고민하고 분투하며 작은 자원순환센터 역할을 해 준다. 이 가게를 찾는 손님 대부분이 20-30대 여성이라고 하는데, 분명 이들이 ‘새로운 문화’를 이끌어 가는 주역이라고 생각한다.

가성비를 생각하면서 온갖 것을 산 뒤에 쌓아 두거나 오래되어 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이제 가치 있는 소비를 하자는 것이 알맹상점의 모토이기도 하다. 생활하는 데 필요한 물품을 넘치지 않고 적절하게 필요한 양만큼 무게를 달아 사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싶다. 하지만 이것도 훈련이 필요하다. 일단 알맹상점을 직접 찾아야 하고, 또 간단하고 싸다고 생각하는 택배 주문 유혹도 잘 이겨 내야 한다. 새로운 문화는 이처럼 불편함을 감수하는 데서 시작한다. 우유를 마신 뒤에 팩을 깨끗하게 헹구고 잘 말렸다가 잘라서 가져와야 하고, 커피박도 곰팡이 피지 않게 잘 말려서 가져와야 하고 여간 손이 가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정말 불편하고, 자신의 몸과 마음이 기존 방식에 거부 반응을 보인다면, 그때 우리 안에 새로운 문화가 조금씩 자리 잡아 가는 것일 테다. 음료수를 마신 뒤 통이 예뻐서 포장재를 제거하고 깨끗하게 씻은 뒤 잘 말려 알맹상점에 가져갔다. 일정한 포인트가 쌓이면 플라스틱 뚜껑으로 만든 빗이나 치약 짜개, 우유팩 재생 휴지, 대나무 칫솔 같은 것을 리워드로 받을 수 있다. 그런 재미도 쏠쏠하다.

이 알맹상점 분투기는 전면적으로 바뀌어야 할 우리의 소비 문화를 점검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많은 사람이 환경 재앙에 관한 이야기에 많이 지쳐 있는 것을 본다. ‘그래서 어쩌라고?’가 되고 만다. 이젠 우리가 정말 위기에 처한 것은 잘 아는 것이고, 아주 작은 뭐라도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는 것이 더 현명할 것이다. 물론 아주 작은 일을 해 나가면서 계속해서 공부도 해야 하고. 이 생태 위기, 기후 위기의 시대에 어떤 일부터 하면 좋을지 고민이 많다면 이 책을 꼭 읽어 보기를 권하고 싶다. 또 이 책을 다 읽은 뒤에는(설령 읽지 않았더라도!) 알맹상점을 꼭 들러 보기를 권하고 싶다. 분명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게 될 것이다. 내일 인류가 당장 끝장난다고 해도 하는 데까지 뭐든 해 봐야 하니까.

알맹상점 입구에는 이렇게 소박한 자원순환센터가 있다. 자기가 쓰지 않는 물건의 새로운 주인 찾아 주기. 여기에서 필요했던 안경집, 충전선, 텀블벅을 득템했다!
알맹상점 입구에는 이렇게 소박한 자원순환센터가 있다. 자기가 쓰지 않는 물건의 새로운 주인 찾아 주기. 여기에서 필요했던 안경집, 충전선, 텀블벅을 득템했다!

김지환(파블로)
마포에서 나서 한강과 와우산 자락의 기운을 받으며 살아왔다. 역사를 공부했고 그중에서도 라틴 아메리카 역사를 한참 재미있게 공부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이 지역 이야기는 가슴을 뜨겁게 한다. 여전히, 좋은 책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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