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남자들은 기를 쓰고 불행하게 살까?", 김정대, 바오출판사, 2023

어떻게 ‘남성의 자리’를 다시 찾을 것인가?

인천에서 ‘삶이 보이는 창’이라는 주점을 운영하며 노동자와 함께하기도 했던 예수회 김정대 신부는 개인 체험에서 ‘남성성’을 성찰하기 시작했다. 주로 노동 문제와 사회정의 문제에 헌신했던 한 사제는 어떠한 연유에서 남성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왜 남자들은 기를 쓰고 불행하게 살까?"라는 제목의 책에서 남성에 관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살펴봤다.

이 책은 팬데믹이 절정이었던 2021, 2022년 2년간 <가톨릭평론>에 ‘남성의 자리 다시 찾기’로 연재한 글을 바탕으로 출간됐다. 저자가 말하는 현재 ‘남성의 자리’는 무엇이며, 어떻게 다시 찾자는 이야기인가? 아주 예전에 읽었던 엘리자베트 바텡테의 "XY, 남성의 본질에 대하여"(민맥, 1993)는 매우 흥미로운 책인데, 남성성은 시대에 따라 일정한 변천을 겪었으며, 결국 ‘조화로운 남성’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살짝 남녀를 굳이 의식적으로 구분하지 않는 ‘중성화 전략’을 떠올랐다. 가령 교과목의 경우, 초등학교 때만 해도 ‘실과’로 불렸던 과목이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남자는 ‘기술’, 여자는 ‘가정’으로 분리된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는데, 그것이 이상하다는 공감대가 커져서인지 결국 이 둘이 통합되어 ‘기술․가정’ 과목이 만들어진다. 이런 남녀의 성 역할 구분짓기는 나중에 다시 언급할 필요가 있다. 위 책이 제기하는 ‘조화로운 남성’의 한국 버전이 바로 김정대 신부의 "왜 남자들은 기를 쓰고 불행하게 살까?"겠다.

한국 남자들은 확실히 문제가 많다. 어린 시절 일종의 거세 콤플렉스에 시달리며, 자신의 남자다움을 기를 쓰고 증명해야 했다. 문제는 안 좋은 것만 열심히 배우면서 남성성을 아주 지저분하게 학습해 왔다는 점이다. 폭력과 성적 일탈 등을 통해 남성성을 과시했고, 다소 여성적인 것으로 명명되었던 섬세하고 자상한 남자는 남자답지 못하는 식으로 몰아붙이곤 했다. 그런데 상당수 한국 남자가 경험했듯이, 남성성의 절정으로 이해했던 군대 문화를 겪으면서 이 남성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찌질하고 우스운지 절감했을 것이다. 저자는 군대 문화가 한국 남성에게 끼친 심각한 악영향을 재차 거론하는데, 살짝 뒤집어서 보면 군대는 정말 남성성이 얼마나 허위로 똘똘 뭉쳤는지 제대로 확인시켜 주는 장일 수 있다. 군대라는 곳에서 한국 남자 상당수가 처음으로 직접 설거지하고 빨래하는데, 어머니의 고된 가사노동에 아무런 느낌이 없다면 정말 심각한 일이다. 또 한편 성찰해야 할 점은 군대를 통해 군대 문화가 퍼진 점도 있겠지만, 어쩌면 오랫동안 군사정권을 거치면서 한국 사회 전체가 군대 문화로 재편된 것인지도 모른다.

"왜 남자들은 기를 쓰고 불행하게 살까?", 김정대, 바오출판사, 2023. (표지 제공 = 바오출판사)<br>
"왜 남자들은 기를 쓰고 불행하게 살까?", 김정대, 바오출판사, 2023. (표지 제공 = 바오출판사)

남성도 알고 보면 가부장제의 희생양

저자는 한국의 남성성 형성의 경제적 배경으로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의 역할에서 찾는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 가정 경제를 순탄하게 이끌어 가는 것은 매우 소중한 일이 분명하다. 하지만 어느새 일이 그 사람의 존재 이유가 되고, 일이 그 사람 자체가 되어 버린다. 일자리를 잃어버린 남성은 한없이 무기력해지고, 스스로 남자 구실을 못한 식의 의식이 내면화된다.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수많은 남성이 노숙자로 전락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업이 망하거나 직장에서 쫓겨난 남성 중 일부는 스스로 감당하지 못하고 가족과 함께하지 못한 채 어디론가 도피할 수밖에 없기도 했다.

사실 이러한 현실은 가부장제와도 깊게 밀착되어 있는데, 가부장적 한국 사회는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억압적이다. 한국의 사회, 경제, 문화적 환경이 어우러진 가부장제 문화는 남성이 스스로 자기다움을 갖고 살아가는 데 방해물이었으며, 그 과정에서 삶이 극도도 왜곡되곤 했다. 한때 페미니즘이 남성에게도 설득력을 얻었던 부분이 있다면, 그것이 남성에게 ‘당신 또한 가부장제의 희생양이요, 이제 박차고 나가야 않겠소’ 하며 말을 걸어오고 손을 잡아 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남녀 공히 억압적인 가부장 문화를 넘어서는 것은 당연한 시대 흐름이다. 페미니즘의 스펙트럼이 워낙 넓기는 하지만, 최근 많은 이에게 인식되는 페미니즘에서 결락된 부분은 남성과 연대의 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매우 아쉬운 점이기도 하다.

비록 가부장제에 쩔어서 살아왔지만 적지 않은 남성이 조금씩 페미니즘이 지향하는 문화에 동조하며, 몸에 밴 가부장적 습관과 언어를 좀 더디지만 버려 가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20여 년 전 첫 직장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퇴근 무렵 몇몇 여직원이 컵을 걷어가 씻는 것이다. 왜 자기가 마신 컵을 남이 씻어 주지, 그것도 그 일을 여직원만 하지. 좀 이상하다 싶어 이젠 각자 컵은 각자가 씻자고 제안했는데, 티끌만한 저항도 없이 오히려 다들 그게 맞다며 그렇게 하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별것 아닌 일이지만, 이런 작은 일 하나하나 바뀌는 것도 나름 의미는 있다고 생각한다. 또 여성을 대상화하며 아무 생각 없이 상스럽게 남발했던 말도 의식하며 절제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젠더 감수성’은 이미 오래전에도 고민되었던 부분이다.

남성이여, 이제 제발 불행하게는 살지 말자!

여러모로 문제가 많지만 또한 불쌍하기도 한 한국 남성의 현실을 빗댄 이야기가 많다. 특히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빈둥대며 ‘삼식이’로 조롱당하는 한국 남성의 자화상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한국 남성은 이제 그간 ‘익숙한 것과 결별’하고 좀 제대로 살 준비를 해야 한다. 남성이 다소 답답해 보이는데는 여러 문화적 환경 탓도 있지만, 자기 내면을 관리하는 태도 때문이기도 하다. 이젠 고리짝 이야기이지만 남자는 평생 세 번 울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태어날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나라가 망했을 때. 그만큼 남성은 감정을 억압당하면서 살아온 면이 있다. 어떤 친밀감보다는 책임감과 효용성을 중심에 두고 살아온 것이다.

김정대 신부는 이제 그처럼 남성에게 부과한 억압 요소를 거둬야 한다고 말한다. 남성도 울 수 있어야 하고, 자기 약함을 솔직하게 드러내야 한다. 그래야 친밀감을 형성하고 제대로 정서 교감하며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 저자는 이 책 후반부에서 ‘인생을 즐겨라!’라며 이제 남성도 무거운 짐을 던지고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이를 위해 저자가 제시하는 여러 가지 구체적 방식이 있다. 그중에서 요리 교실은 여러모로 유용한 면이 있다. 음식 만들기는 앞서 이야기한 성별 구별짓기 문화를 탈피하는 측면도 있지만, 감성을 계발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특히 자신이 한 음식을 누군가와 나눈다는 측면에서 친밀감 향상에도 많은 도움을 준다. 백종원 열풍으로 아빠들이 아이들에게 음식을 해 주기 시작하고, 아이들이 그것을 맛있게 먹을 때 뿌듯함을 느꼈다는 이야기가 많다.

버트런드 러셀의 "행복의 정복"을 보면, 사람들이 쓸데없는 데 쓰는 힘이 제국을 세우고 무너뜨릴 정도라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만큼 행복 찾기가 반드시 어려운 일만은 아닐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국 남성은 이제 스스로 자기를 억압해 왔던 그간 ‘익숙한 것과 결별’하고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 어떻게 더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 알아가고 실행해야 한다. 저자는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과정에서 좀 더 구체적인 방법을 일러주기도 한다. 스스로 괴로워하는 데 익숙하고, 돌아보면 무지 쓸쓸하기 일쑤인 한국의 대다수 남성에게 이토록 해방적인 메시지가 또 있을까?

김지환(파블로)
마포에서 나서 한강과 와우산 자락의 기운을 받으며 살아왔다. 역사를 공부했고 그중에서도 라틴 아메리카 역사를 한참 재미있게 공부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이 지역 이야기는 가슴을 뜨겁게 한다. 여전히, 좋은 책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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