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 컨스피러시", 옥성호, 파람북, 2023

유다와 관련한 몇 가지 의문점들

유아세례를 받고 한참 지나 초등학교 4학년 때 첫영성체 교리를 듣는데, 첫 시간에 인간의 원죄와 대속을 위한 예수의 십자가 이야기가 나온다. 인과론적으로 보면 유다의 배신이 있었기에 예수가 십자가를 질 수밖에 없다. 교리상으로 유다를 배신자이며 나쁜 놈으로 배워 그런가 싶었지만, 세월이 지나 머리가 굵어지면서 유다를 정말 매도할 수 있는지 의심스러워졌다. 언젠가 유튜브 〈뉴스공장〉을 진행하는 김어준도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교회를 열심히 다녔던 그가 유다는 예정설에 따르면 자기 역할을 다한 것일 수 있는데, 지옥에 갔다고 하면 좀 말이 안 되지 않냐는 문제제기를 했다는 것이다. 사실 언젠가부터 이와 비슷한 생각을 했는데, 초등학교 때인가 중학교 때인가 어느 일요일 낮 교육방송에서 방영한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를 보면서, 내가 유다에 대해 가졌던 생각이 그대로 펼쳐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자살한 뒤 하늘로 올라가 자기에게 왜 이처럼 벅찬 일을 맡겼는지 따진다. 십자가의 길이 피할 수 없는 예정된 길이라면 유다는 정말 일정한 역할을 한 것은 아닐까? 언젠가 유다가 제자 무리 중에서 재정을 담당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돈을 맡길 사람이라면 나름 믿을 만했던 충직한 제자는 아니었을까?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만든 영화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는 파격적인 내용이 논란이 되어 1988년에 만들어졌음에도 국내에는 2002년에 상영되었다. 이 영화 속 유다 이미지는 영화만큼 파격적이었다. 로마 당국에 십자가를 납품하는 목수 예수, 어느 날 한 사나이가 들이닥쳐 예수를 구타하고 민족 반역질을 타박한다. 그가 유다다. 예수를 졸졸 따라다니며 감시하다가 그의 가장 충직한 제자가 된다. 유다는 십자가에서 내려와 인간적으로 살다가 인간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예수에게 찾아와 쓴소리를 한다. 영지주의 복음서 중 하나인 유다 복음의 내용은 이런 발상과 맥을 같이한다. 이 복음서에는 유다가 예수를 배반한 것이 실제로는 예수의 명령이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성경에서는 확실히 부정적으로 묘사하지만, 전후 맥락을 살펴보면 뭔가 수수께끼 같은 느낌을 주는 인물임이 틀림없다.

옥성호, "유다 컨스피러시", 파람북, 2023. (표지 출처 = 파람북)<br>
옥성호, "유다 컨스피러시", 파람북, 2023. (표지 출처 = 파람북)

성경의 복잡한 맥락을 추적하며 그려내는 유다

저자 옥성호는 사랑의 교회를 개척하고 교회 갱신을 위한 초석을 만들었던 한국 개신교의 거목인 옥한흠 목사의 장남으로, 그리스도교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견지해 왔다. “유다 컨스피러시”는 “신의 변명”과 “부활, 역사인가 믿음인가”에 이은 ‘옥성호의 빅퀘스천’의 세 번째 저작으로, 4복음서 속 행적을 중심으로 그리스도교의 문제 인물 유다를 파헤쳐 간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유다와 관련된 여러 사람의 막연한 의심과 다른 생각에서 한참 앞서나간다.

가축을 도살장으로 인도하는 훈련된 염소를 ‘유다 염소’라고 부른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팀에 있던 피구는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뒤 ‘가룟 유다’라는 조롱을 받았다. 이처럼 유다 하면 비열하고 배신을 일삼는 이들을 떠올리며, ‘유다’라는 호명은 일종의 주홍 글씨와 같다.

유다가 가장 먼저 등장하는 곳은 마르코 복음이다. 저자는 마르코 복음에서 유다가 배신한 동기를 향유 사건이라고 한다. 유다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고, 마음이 완전히 돌아섰다고 한다. 그럼에도 마르코에서 배신의 동기는 다소 애매한 구석이 있다. 그런데 마태오 복음에서는 애매한 나쁜 놈이었던 유다를 진짜 나쁜 놈으로 만들어 갔다는 것이다. 마르코에서는 그나마 희미하게 그려졌던 좌절한 이상주의자 느낌은 완전히 삭제되고, 완전한 돈벌레로 전락한다. 그럼에도 마태오는 유다를 사탄으로까지 묘사하지 않는다. 유다는 루카 복음과 요한 복음에 와서 사탄 같은 존재로 부상한다. 루카 복음에서 사탄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유다는 요한 복음에 들어와서 더욱더 입체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예수의 제자 중에서 회계 담당이며 돈 욕심이 많아서 공금을 수시로 훔치던 도둑으로 묘사된다. 그러니까 요한 복음은 유다와 사탄을 연결한 루카 복음의 구도, 선과 악의 싸움을 더욱더 심화해 간다. 거기에 예수가 유다의 배신까지도 사실상 다 기획했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선과 악의 대결구도를 더 구체화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유다에서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저자가 보기에 지난 2000년간 유다가 죽어야만 했던 것이 그리스도교의 교리였다. 문제는 이런 주홍 글씨가 유다에게만 붙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종교 개혁가 루터는 아벨의 피에서 시작해 수많은 의인의 피로 영양분을 얻었던 거룩한 땅에 유다의 더러운 피가 흘러 들어가는 것을 참을 수 없어 하며, 유다의 피는 땅이 먹은 게 아니라, 유대 민족이 달려와서 마셨다고 썼다. 차마 땅에 피를 흘릴 자격조차 없는 배신자 유다는 죽어서도 끊임없이 부관참시당했다는 것이다. 루터는 이처럼 유다를 악마화했을 뿐만 아니라, 대표적인 반유대주의자로도 잘 알려졌다. 저자는 이런 반유대주의의 흐름은 훗날 유대인 홀로코스트와도 무관하지는 않다고 말한다.

저자는 복음서에서 유다가 어떻게 묘사되는지 추적하면서 유다야말로 진짜 희생자라고 보며, 이렇게 유다를 희생시키고 성립한 그리스도교 구원 교리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역설한다. 보통 그리스도교 신자라면, 저자의 유다에 관한 전복적 해석을 받아들이기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의 복음서 분석은 나름 설득력 있으며, 성경조차 열린 텍스트일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저자의 해석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 열린 마음으로 읽어 볼 만한 책이다. 그리스도교에 꽤 비판적인 내용으로 귀결되는 책이지만, 신학을 공부하거나 성경을 더욱더 풍성하게 읽고자 하는 사람에겐 몇 가지 영감과 식견을 전해 주리라 믿는다.

김지환(파블로)
마포에서 나서 한강과 와우산 자락의 기운을 받으며 살아왔다. 역사를 공부했고 그중에서도 라틴 아메리카 역사를 한참 재미있게 공부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이 지역 이야기는 가슴을 뜨겁게 한다. 여전히, 좋은 책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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