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 자전거 여행과 그 이후의 삶

이 글은 <가톨릭평론> 42호(2023년 겨울)에 실린 글입니다. - 편집자

아침의 옥상에서 운 좋으면 일출을 보면서, 시원한 공기를 맞으며 이따금 새소리를 들으며 멀리 산과 하늘과 건물들을 보며 오늘도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는 것, 제로웨이스트 실천을 이야기하자면 나는 그 감사 인사를 떠올린다. 지금도 실천을 지속할 수 있는 근원은 그 모든 것에 대한 감사이고, 그 감사한 모든 것과 내가 연결되었다는 감각이기 때문이다.

쓰레기는 더 오래 더 멀리 여행한다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넣고 나면 끝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쓰레기에 범상치 않은 관심을 두게 된 것은 15년쯤도 더 전에 '물건 이야기The Story of Stuff'라는 한 영상을 보면서였다. 쓰레기는 나보다 더 멀리 여행을 갈 수도 있고, 나보다 더 오래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쓰레기, 그중에서도 특히 플라스틱에 주목하게 된 것은 현대 사회에서 제일 많이 쓰이면서 잘 썩지도 않고 재활용도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플라스틱은 좋은 재료지만, 너무 많이 쓰고 너무 많이 버리는 우리의 사용 방식이 문제겠다 싶었다. 적어도 일회용 플라스틱(비닐 포함)은 줄여 보고 싶다는 문제의식이 스멀스멀 생겼다.

하지만 그 문제의식이 실천까지 이어지지 못했던 것은, 출근과 퇴근과 이따금의 야근으로 도배되는 숨 가쁜 일상에서 텀블러를 챙길 정신이 순간순간 점멸했던 탓이다. 꼭 커피는 텀블러가 없는 날 땡겼고, 이 긴요한 충동을 한 번은 애써 참아도 두 번을 참을 인내심까지는 없었다. 한 번이라도 플라스틱 컵을 쓰고 나면, 또는 동료가 가져온 포장과자를 한 번이라도 먹고 나면, 세상은 다 망한 것 같았고 도전은 스러졌다.

실제로 가게 된 유라시아 여행의 경로. 1년 반 만에 이스탄불에 닿은 후 자전거는 먼저 한국에 보내고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귀국했다. (이미지 제공 = 신혜정)<br>
실제로 가게 된 유라시아 여행의 경로. 1년 반 만에 이스탄불에 닿은 후 자전거는 먼저 한국에 보내고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귀국했다. (이미지 제공 = 신혜정)

레스(Less)웨이스트 여행을 꿈꾸다

어느덧 마음속 불편함으로만 남게 된 그 도전을 여행하며 다시 살려 보기로 했다. 2018년 5월, 30대 허리를 넘어서는 나이, 하던 일을 그만두고 자전거를 타고 유라시아 여행을 떠났다. 넓은 세상을 보며 어떻게 살 것인지를 다시 돌아 보자며 떠난 여정이었다. 세계는 너무 넓으니 유라시아 여행으로, 왕년 실크로드의 종착지였던 튀르키예 이스탄불까지 내 속도로 내 힘으로 천천히 가 보자며 자전거를 선택했다. 인천에서 배를 타고 중국으로 건너가 자전거를 타기 시작해,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를 거쳐 인도와 파키스탄을 지나 중앙아시아를 거쳐 튀르키예로 가는, 저질 체력의 나로서는 적어도 1년 반은 예상되는 여정이었다.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아주 장쾌하고 역동적인 모험의 시작 같지만, 이런 모험의 특징은 가까이서 보면 대부분은 별것 없다는 것이다. 어떤 일이 펼쳐질지 전혀 예상이 안 되어 불안하고 설레던 마음은 여행 몇 개월도 되지 않아 차차 식어 갔다. 여행은 일상이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자전거를 타고 점심을 먹고 자전거를 타고 해지기 전에 숙소를 찾고 저녁을 먹고 숙소에 가서 유튜브를 보다 잠이 들었다. 혼자 여행은 심심했다.

일회용 플라스틱 없이 살기 도전은 그런 심심한 여행에 재미이자 양념이 되어 주었다. 이번 도전에서 중요했던 건, ‘제로Zero’웨이스트가 아니라 ‘레스Less’웨이스트로 가자는 기조였다. 완벽히 안 쓸 수는 없었다. 게다가 완벽히 안 쓴다는 목표를 세우면, 어쩌다 하나를 쓰면 다 망했다는 심정이 된다. 하나 쓴 데 죄책감을 느끼기보다는 하나씩 아낀 데에서 보람을 찾으면서, 내가 즐길 수 있는 선, 지속해 갈 수 있는 선에서 하자고 했다. 최대한 안 쓰되, 다음과 같은 예외를 허용하기로 했다. 남이 호의로 주는 것에 딸려 오는 비닐 등 일회용 플라스틱은 받자. 그 나라 문화체험을 하는 데 딸려 오는 것은 쓰자. 혹시라도 받게 된 일회용 플라스틱은 최대한 여러 번 써 보자.

레스웨이스트를 위한 여행 준비물. 반찬통과 지퍼백, 물통 3종과 장바구니 3종. ©신혜정
레스웨이스트를 위한 여행 준비물. 반찬통과 지퍼백, 물통 3종과 장바구니 3종. ©신혜정

일회용 플라스틱을 안 쓰기는 주로 식음료 부문에서 도전이었다. 기본적으로 내가 챙겨 간 준비물은 물통들과 반찬통들, 면주머니들과 장바구니와 수저다. 여행 초에는 그날 마실 물은 그 전날 준비했다. 숙소의 전기포트에 수돗물을 끓여 찻잎으로 우려내어 식힌 물을 1.5리터 물통에 담고, 마실 때는 텀블러에 옮겨 담아 마셨다. 자전거를 타며 먹을 간식도 그 전날 준비했다. 숙소 근처 빵집이나 노점에서 포장 없이 살 수 있는 빵이나 과일, 길거리 음식을 반찬통에 담아 왔다. 여행 3개월이 지나면서는 좀 짬이 생겼다. 물은 숙소와 식당에서 얻었다. 간식은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견과류나 쿠키류를 반찬통과 면주머니에 담아 두고 먹었다. 지나는 길에 발견하는 노점에서 사 먹기도 했다. 비닐봉지를 꺼내려는 상인들에게 “괜찮아요!”를 외치는 타이밍을 잡는 센스는 갈수록 늘었다. 이따금 누추한 여행자에게 호의를 베푸는 사람들이 건네는 과일, 음식들에 딸려 오는 비닐봉지는 잘 받아 씻어 접어서 지니고 다니며 썼다.

식음료 부문에 더해 추가로 챙겼던 것은 면 생리대와 빨랫비누였다. 생리 초기의 하루이틀은 숙소를 잡아 쉬고, 이후로는 천천히 자전거를 타니 생리대를 빨 시간은 충분했다. 깨끗이 빤 생리대를 자전거 뒷 가방에 널어 놓고 한나절 달리면 햇빛과 바람에 뽀송뽀송하게 말랐다. 생리 때는 생리대, 평소에는 2, 3일에 한 번씩 땀내 나는 옷가지를 빠는 중요한 역할을 하던 빨랫비누는 금방금방 닳았다. 여행에서 갔던 대부분 나라에서마다 빨랫비누를 샀다. 지나는 시장마다 들러 포장되지 않은 빨랫비누가 있는지를 스캔했다. 이 모든 일이 할 만했다. 바쁘게 일할 때는 귀찮고 부담이 되었을 법한 노력이 여유로운 일상에서는 그리 번거롭지 않았다. 오히려 나의 삶을 살뜰히 가꾼다는 뿌듯함이 있었다.

레스웨이스트 준비물들을 유라시아 곳곳에서 유용하게 활용했다(찻잎, 과자, 파파야, 타이 노점의 밥과 반찬, 텀블러와 반찬통에 담은 쉐이크, 귤).&nbsp;©신혜정
레스웨이스트 준비물들을 유라시아 곳곳에서 유용하게 활용했다(찻잎, 과자, 파파야, 타이 노점의 밥과 반찬, 텀블러와 반찬통에 담은 쉐이크, 귤). ©신혜정

지구 마을 곳곳의 쓰레기장이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는 것

나 하나 이런다고 뭐가 달라지나 하는 회의도 여간 들지 않았던 것은, 내가 준비한 또 다른 양념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일회용 플라스틱 쓰지 않기 도전이라는 양념에 더해, 내친김에 플라스틱이 유라 시아 곳곳에서 어떻게 버려지고 재활용되는지를 보자는 양념을 추가했다.

유라시아 곳곳의 쓰레기장을 봤다. 북인도 라다크의 쓰레기장은 ‘쓰레기장’이라고 이름 붙은 그냥 땅이었다. 히말라야산맥일지 쿤룬산맥일지 멀리 설산이 보이는 땅 위에 쓰레기들이 그저 쌓였다. 쓰레기차 가 신선한 쓰레기들을 땅 위에 버리면 개 떼가 몰려들어 배를 채웠다.

쓰레기들은 묻어지지도 않고 태워졌다. 땅의 곳곳에 매캐한 연기가 올라왔다. 라다크에는 재활용 시설이 없었다. 5년 전 정부에서 시범적으로 만들어 놓은 작은 수작업장 외에는 그랬다. 라다크의 면적은 남한 크기고 인구는 30만 명 정도다. 재활용도 자본주의 논리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이득이 보장될 만한 규모와 체계가 되지 않는 지역에는 재활용 공장도 들어서지 않는다.

라다크의 쓰레기 더미를 보면서 나는 속으로 물었다. 이것이 발전인가. 이 쓰레기장이 계속 커지는 게 발전인가. 끊임없는 생산과 소비로 돌아가는 이 소비 사회에서는 물건을 만드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그 누구도 이 물건이 버려지고 난 다음에 어떻게 될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무조건 물건을 생산하고, 팔고, 사는 것이 이득이다. 쓰레기가 된 물건은 남아 한 지역의 환경이 된다.

인도 라다크의 쓰레기장. 쓰레기를 버리면 개들이 와서 먹고, 태웠다.&nbsp;©신혜정<br>
인도 라다크의 쓰레기장. 쓰레기를 버리면 개들이 와서 먹고, 태웠다. ©신혜정
설산 밑에 쌓이는 쓰레기들.&nbsp;<br>
설산 밑에 쌓이는 쓰레기들. ©신혜정

중국에서는 전자 쓰레기 재활용 공장에 들렀다. 전자 쓰레기라고 하면 노트북, 컴퓨터, 마우스, 키보드, 핸드폰 등을 말한다. 예전에는 세계 전자 쓰레기의 70퍼센트, 아시아 전자 쓰레기의 80퍼센트가 중국 광둥성 구이위로 가서 재활용되었다. 그때의 ‘재활용’이란, 물건을 망치로 부수고 안의 값나가는 금속들만 꺼내고 황산수로 전자회로판을 씻고, 나머지는 태우거나 그대로 버리는 식이다. 당시 그 지역 아이들의 80퍼센트가 납중독이었고, 그 지역 하천은 쓰레기가 조밀하게 떠다니는 썩은 물이 되었다. 당시 사진을 보면 사람들은 그 물에서 빨래했는데, 저 물에서 빨래를 어떻게 하지 하는 나의 의문은 깨달음으로 이어졌다. 내가 사는 곳에 저런 물밖에 없으면, 어쩔 수 없이 그런 물에서 빨래를 할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다. 환경 문제가, 환경이 되어 버리면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여지는 극도로 좁아지고 만다.

내가 그 지역에 찾아갔던 2018년, 상황은 예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2015년에 정부에서 재활용공장단지를 세워 집마다 하던 재활용업을 금지하고 단지로 입주해 관리감독받도록 한 것이다. 그 재활용공장단지를 자전거를 타고 휘둘러보았다. 단지에 빽빽하게 들어선 사무실들 안팎으로 높이 쌓인 전자 쓰레기 포대들을 보면서, 무언가를 땅땅 두드리는 소리를 들으며, 무언가 은근하게 타는 냄새를 맡으며, 나는 깨달았다. 이것들은 남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을. 나와 연결된 문제였다는 것을.

물론 2018년 중국은 해외 쓰레기 수입을 금지했고 그 단지에 더는 한국에서 온 쓰레기는 없었을 테다. 그러나 내가 2018년 이전에 버린 휴대폰, 키보드, 마우스 같은 전자 쓰레기들은 높은 확률로 그 지역에 서, 더 열악한 조건에서 ‘재활용’이라는 것이 된다. 그리고 지금 버리는 것은 중국이 아니면 또 어디에선가, 또 ‘재활용’되거나 아니면 그마저도 못 되고 버려져 있을 것이다.

한국 등의 ‘선진국’은 전자 쓰레기처럼 해롭고 까다로운 재활용 거리를 다른 나라로 넘겨 왔다. 나는 나도 모르는 새에, 감당할 수 있는 이상으로 쓰면서 그 초과분의 오염을 다른 나라, 다른 지역, 다른 사람들로 넘겨 온 것이 아니었던가. 그렇게 넘겼던 오염이 결국 미세먼지로, 미세플라스틱으로, 기후변화라는 이름으로 다시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이 아닌가.

먼지처럼 작은 존재, 하지만 서로 연결된 소중한 존재

유라시아 여행을 하며 깨달은 것은, 세상이 너무나 넓고 나는 너무 먼지같이 작다는 것이다. 동시에 그 먼지 같은 존재야말로 먼지 같은 존재 하나는 구할 수 있다는 것도 체감했다. 여행길에서 나와 같은 먼 지처럼 작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으면서, 먼지처럼 작은 나무 그늘 하나에 지친 몸을 쉬었고, 찰나에 스쳐가는 청량한 바람에도 살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그 먼지 같은 존재 덕분에 나는 살아 돌아올 수 있었다. 그 먼지 같은 존재는 어떤 식으로든 다 연결되어 있었다. 아주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사실은 비슷해 서로 소통하고 교감하며 연결될 수 있었다. 전혀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던 문화도 과거에나 현재나 서로서로 영향을 주고받아 만들어졌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쓰레기를 포함한 물건으로도 연결되었다.

연결되었으니 책임을 지켜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먼지 같은 존재인 나라도 이 연결망의 한 축으로서 지구상에 있는 존재들과 또 후세의 존재들과 연결되었기 때문에, 내가 한 행동은 어디 밖으로 나가 거나 싹 없어지는 게 아니라 돌고 돌아 결국 내게 올 수 있다. 그렇게 보니 나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페트병 하나가, 비닐봉지 하나가 작아 보이지 않았다. 딱 그 페트병 하나만큼, 그 비닐봉지 하나만큼 커 보였다.

일회용 플라스틱 쓰지 않기라는 실천에서 나의 생각은 깊어지고 넓어졌다. 이제는 일회용 플라스틱만이 아니라 어느 재료건 오래 쓰고 아껴 쓰려고 한다. 레스웨이스트뿐 아니라 다른 실천도 생각이 닿고 여건이 되는 한 하려고 한다. 1959년 비닐봉지를 처음 발명했던 것은 스텐 구스타프 툴린이라는 스웨덴 공학자였다. 그가 비닐봉지를 발명한 것은 종이봉투를 아끼기 위해서, 나무를 아끼기 위해서였단다. 가볍고 오래가는 봉투를 만들어서 몇 번이고 다시 쓸 수 있게 하자고 했던 게 비닐봉지의 원래 취지였다. 그런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나를 아끼듯 다른 존재를 아끼는 마음, 감사하는 마음, 소중히 여기는 마음, 존중하는 마음, 구체적인 실천들은 그 마음에 따라올 것이다.

여행을 다녀와서는 무엇을 하는가 하면, 그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텀블러와 장바구니는 항상 가방에 넣어 다닌다. 그간의 실천으로 깨달은 것은 ‘상비常備’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언제 필요한 상황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텀블러가 없으면 웬만해서는 음료를 먹지 않는다. 예전에는 그렇게 어려웠던 그 포기가 이제는 그렇게 어렵지 않게 된 것은, 여행 중 ‘양념’을 통해 변화한 나의 몸과 마음의 습관 덕분일 것이다.

2020년 봄, 귀국해 방을 정리해 보니 예전에 예쁘다고 샀던 물건이 몇 년 사이에 처분해야 할 물건이 되어 있었다. 다른 사람이 쓸 수 있는 정도면 당근마켓에 내놓고, 나머지는 어쩔 수 없이 쓰레기통에 버 렸다. 그렇게 처분하는 것도 심신이 불편한 일이다. 이제는 물건을 하나 사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쓴다. 며칠, 길게는 몇 개월 생각해도 필요한지, 혹 나중에 쓰레기가 되더라도 살 만한 가치가 있을지를 본다.

이제는 새 물건을 보면 그것의 낡은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처럼 새것의 반짝함이 사라지고 그것이 낡았을 때도 계속 간직할 물건인지를 묻게 된다.

예전에는 물건을 살 때 가격과 질과 양을 봤다면, 이제는 쓰레기가 얼마나 나올 것인가, 얼마나 쉽게 나올 것인가도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될 수 있으면 인터넷 배송보다는 직접 사고, 배송한다면 상자와 충 전재들은 챙겨 놓았다가 추후 필요할 때 쓰려고 한다.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는 다 먹을 수 있는 양인지를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먹을 만큼 시키고, 나온 것은 웬만하면 남기지 않고 다 먹는다. 식당이나 카페에서 기본으로 제공하는 휴지는 웬만하면 받지 않고, 안 쓴 것이 버려지겠다 싶으면 챙겨 온다. 여기저기에서 버려질 만한 비닐을 접어 챙겨 오니, 나의 가방 양옆 주머니는 휴지와 비닐로 빵빵하다. 집에서는 세수한 물, 세탁기의 마지막 헹굼물을 최대한 대야들에 받아놓았다가 변기를 내릴 때 쓴다.

누군가는 ‘궁상맞다’고 표현할 이런저런 아주 작고 사소한 일들을 당당하게 하려 노력한다. 몇십 년 전만 해도 ‘검약’으로 칭송받았다가 어느샌가 소비사회에서 궁상맞음으로 격하한 그 가치를 되살리고 싶다. 궁상맞음은 다른 말로는, 나와 다른 존재들과 우리의 터전에 대한 감사이자 그 모든 것을 아끼고 존중하는 우아함일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형제들' 회칙 83항에서 교황님은 “다른 이들과의 관계가 없다면, 사랑할 구체적인 얼굴들이 없다면 아무도 삶의 참다운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없”으며, “유대, 친교, 형제애가 있는 곳에 삶이 존재”한다 고 하셨다. 내게 있어 레스웨이스트의 실천은 인간을 넘어 비인간 존재들―프란치스코 성인이 부르신 “형님인 태양과 누님인 달”과, 이 땅과 물에서 나서 나의 손에 물건의 형태로 오게 된 피조물 형제자매들―을 “사랑할 구체적인 얼굴들”에 담아가는 걸음이며, 그럼으로써 그들과 연결된 나 또한 사랑하고 존중해 가는 과정이다.

신혜정

조금 심심하게 사는 게 목표다. 다른 존재들이 들어올 틈이 있도록.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평생교육 박사과정을 밟으며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JPIC에서 일을 돕고 있다. 최근에 유라시아 자전거 유람 여정을 담아낸 "이토록 우아한 제로웨이스트 여행"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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