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장기풍)

“주님은 우리에게 영생의 생수를 약속하십니다”

교종, 3월12일 사순 제3주일 삼종기도 가르침에서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3월12일 사순 제3주일 정오 성 베드로 광장 발코니에서 진행한 삼종기도 가르침에서 이날 복음(요한 4,5-42)에 기록한 목마른 예수님과 그분께 물을 주는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과의 만남은 ‘가장 아름답고 황홀한 만남 중 하나’라고 표현하면서, 주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영원한 생명이 넘치게 하는 생수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언제나 우리의 사랑에 목말라하신다고 강조했다. 가르침 내용.

오늘 복음에 나타난 예수님께서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난 사건은 성서에 기록된 ‘가장 아름답고 황홀한 만남 중 하나’입니다. 뜨거운 한낮 태양이 내리쬐는 가운데 목이 마르고 지치신 예수님은 여인에게 마실 물을 부탁하십니다. 물을 달라는 예수님의 요구는 하느님께서 그분 자신이신 예수님을 우리와 같이 목마른 사람 중 하나로 만드셨고 우리와 인간 조건, 필요, 고통을 공유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사실 예수님의 목마름은 육체적인 것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삶의 가장 깊은 갈증, 무엇보다도 사랑에 대한 갈증을 표현합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시기 전 “목마르다”고 말씀하신 수난의 절정 순간에 드러날 것입니다. 물을 달라고 하신 주님은 또한 자신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주실 수 있는 음료, 즉 ‘영생이 우리 안에 넘치게 하는’ 성령의 생수를 말씀하십니다.

사랑에 목마른 예수님께서는 사랑으로 우리의 목마름을 풀어주십니다. 우리 일상에서 우리를 만나 갈증을 나누며 영생의 생수를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도움이 필요한 형제자매들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때로는 침묵 속에서 우리에게 부르짖는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야 합니다. 가족, 친구, 동료들은 종종 우리에게 ‘음료’를 요구할 수 있지만 그들은 사실 친밀함, 관심 또는 경청하는 귀를 갈구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은 하느님 말씀에 목마르고 ‘마실 수 있는 교회의 오아시스’를 찾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갈증들은 종종 무관심과 내면의 공허함으로 특징 짓는 우리 사회의 ‘사막’에 의해 증가합니다.

또한 이러한 갈증은 말 그대로 생존에 필수적인 물에 대한 갈증이 될 수 있습니다. 현재 전 세계 많은 사람이 가뭄이나 오염으로 마실 물조차 부족합니다. 우리 '공동의 집' 환경조차 물 부족과 오염으로 갈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생수’의 약속을 제공하고 우리 형제자매들을 위한 ‘상쾌한 샘’이 되라고 각자를 부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스스로 자문해 볼 수 있습니다. “나는 하느님을 목말라합니까?” “내가 살기 위해서는 물과 같은 그분의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까?” “나는 다른 사람들의 목마름에 대해 걱정하고 있습니까?” 이와 같이 반성하면서 성모님께서 우리를 위해 중재하시고 우리 여정에서 우리를 붙들어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고통받는 우크라이나와 연대를 잊지 마십시오"

교종, 3월17-18일 ‘주님을 위한 24시간 철야 기도’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삼종기도 가르침 말미에 지난해 3월25일 ‘티 없으신 마리아 성심’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봉헌한 것을 상기하면서 모든 사람에게 3월17일과 18일 전 세계 교구에서 실시하는 ‘기도와 화해’ 이니셔티브인 ‘주님을 위한 24시간’ 기도에 초대했다. 교종은 그날 로마 시내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알 트리온팔레 본당에서 ‘주님을 위한 24시간 철야 기도’를 거행할 예정이다. 말씀 내용.

증오를 소멸하고 모든 폭력을 진정하기 위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마리아의 티 없으신 성심께 봉헌한 지 1년이 되어 갑니다. 저는 다시 한번 세상 모든 신자에게 하느님의 평화를 청하는 기도 무기를 사용할 것을 촉구합니다. 전쟁으로 고통받는 형제들을 위해 믿음과 연대로 일치를 유지합시다. 무엇보다도 순교한 우크라이나 국민을 잊지 마십시오. 저는 3월17일 금요일과 3월18일 토요일에 여는 ‘주님을 위한 24시간’ 기도에 여러분 모두를 초대합니다. 이 행사는 사순절 네 번째 일요일 전야 전 세계 교구에서 거행합니다. 모든 교회는 종일 문을 열어 신자와 순례자들에게 조배와 고해성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이 행사는 ‘조배의 기도와 화해의 성사를 바치는 시간’입니다.

지난해 ‘24시간 기도’가 끝날 무렵 마리아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봉헌했습니다. 우리는 1년 전, 이런 맥락에서 티 없으신 마리아 성심께 엄숙한 봉헌 행위와 함께 평화의 선물을 청했습니다. 우리의 위탁은 실패하지 않고, 희망은 흔들리지 않으며, 주님은 어머니의 전구를 통해 당신 백성이 드리는 간청을 항상 경청하십니다. 올해 저는 본당 공동체 존재를 더 잘 나타내기 위해 이곳에서 몇 킬로 떨어진 로마시내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알 트리온팔레 본당에 갈 것입니다. 철야 행사는 3월17일 16시30분에 시작하며 원하는 모든 신자는 화해 성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저를 위해 기도하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선교의 가시성과 존중, 봉사, 협력 원칙을 잊지 마시오”

교종, 스페인 ‘미션 아메리카’ 대표들에게 선교 봉사 원칙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3월11일 오전 스페인 NGO ‘미션 아메리카’ 지도부와 선교 및 협력 위원들을 접견하고 아메리카 대륙과 아프리카에 복음 메시지를 전하는 그들의 노력을 격려했다. 이 단체는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민족의 사회, 문화, 종교 영역에서 존엄과 발전을 촉진하는 30주년을 기념하고 있다. 이날 만남에는 스페인 주교회의 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이루어졌다. 연설 내용.

저는 여러분의 봉사 사명을 식별하는 네 가지 핵심 단어인 가시성(visibility), 존중(respect), 자원봉사,(volunteerism), 협력(colaboration)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첫 번째 핵심인 ‘가시성’은 예수님은 성부께서 보내신 분이며 성부께서는 외아드님 예수를 인류의 심오한 치유를 위해 고통의 현실을 가시화하면서 우리에게 보내셨습니다. 같은 방식으로 우리는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의 현실을 널리 알리기 위한 캠페인에서 우리의 지평은 ‘당신의 상처 속에 우리를 최고의 피난처로 인도하시는 그리스도의 내민 손을 보여 주는 것’ 외에는 있을 수 없습니다.

두 번째 단어 ‘존중’은 예수님이 사람을 존중하고 ‘진정한 평등, 진정한 정의’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고 획일적인 길을 부과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현실과 상황에 대한 존중입니다. 모든 사람이 하느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도록 우리는 그들의 자유와 필요를 존중하면서 다른 사람과 동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원봉사는 미션아메리카 사업의 또 다른 중요한 측면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그들의 여정에 있는 사람들과의 ‘기도 지원, 도움, 연대’에 지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원봉사는 사회의 가장 아름다운 것 중 하나입니다. 제가 강조하는 마지막 키워드는 ‘협력’입니다. 하느님께서 인류와 그리고 서로 간에 세우시는 평화는 ‘사랑과 화합을 퍼뜨리고 선을 추구함으로써’ 매일의 현실이 됩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가시성, 존중, 자원봉사, 협력이라는 단어는 교회가 선교사가 되라고 요청하시는 예수님의 이미지입니다. 이 네 가지 단어가 우리의 동기가 되기 바랍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 신비체 안에 손으로 만져 볼 수 있는 상처에 가시성을 부여할 수 있으며, 하느님 영광을 위해 선의의 모든 사람과 함께 선교로 파송한 이들을 위해 일하고 지원하기 위해 하느님이 우리에게 제시하시는 길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의 자비와 평화의 10년간 발자취

2013년3월13일은 아르헨티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 추기경이 콘클라베에서 제 266대 교종으로 선출된 날이다. 프란치스코 교종 10년은 복음화에 대한 열정과 교회를 더욱 선교적으로 만들기 위해 개혁하려는 끊임없는 여정으로 특징 짓는다. 그의 10년 동안 시간은 두 가지 다른 차원, 즉 프로세스를 시작하는 진보 차원과 다른 사람들을 만나러 나가고 생각과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순환 차원을 차지했다. “시간은 공간보다 큽니다.” 그의 첫 번째 사도적 권고 ‘복음의 기쁨’에 포함한 이 말은 그의 교종 재위 10년을 요약한다. 

최초의 예수회 출신 교종이자 라틴아메리카 최초의 토박이로 프란치스코라는 교종 이름을 최초로 선택한 프란치스코 교종은 719년 만에 처음으로 전임자 ‘사망이 아닌 사임’으로 교종에 선출된 사람이다. "공간은 과정을 단단하게 만드는 반면, 시간은 희망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도록 격려한다"는 시간에 대한 그의 이해는 두 가지 방식으로 펼치는 현 교종을 해석하는 열쇠가 된다. 하나는 점진적, 다른 하나는 원형으로 첫 번째는 ‘프로세스 시작’을 허용하는 것이며, 두 번째는 만남과 형제애 차원이다. 그의 교종으로서 진보 차원은 무엇보다 그의 사도 헌장 ‘복음을 선포하여라’에 녹아 있다. 2022년 공포한 이 문서는 바티칸에 선교 구조를 더욱 여하고 있다. 새로 도입한 것들 중에는 ‘사랑의 봉사를 위한 부서’와 교종이 직접 수장을 맡는 ‘새 복음화’ 부서(복음화부) 설립이 있다. 이 문서는 바티칸에 평신도 참여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2015년 경제사무국 설립을 포함해 10년간 경제와 금융 분야에서 시행한 수많은 개혁을 마무리하고 있다. 또한 프란치스코 교종이 시작한 과정은 교회 일치 운동, 종교간 대화와 공동합의성(시노달리타스)과도 관련이 있다.

교종은 2015년 그리스도인들에게 '생태적 회심'을 권고하면서 매년 9월1일 정교회와 함께 ‘피조물 보호를 위한 세계 기도의 날’을 제정했다. 교종이 2015년에 발표한 ‘공동의 집’ 돌봄에 관한 두 번째 회칙 ‘찬미받으소서’는 첫 번째 회칙 '신앙의 빛'의 반복 권고로, 요지는 인류가 '공동의 집을 돌보라'는 약속에 책임을 질 수 있도록 '과정을 변경'할 것을 촉구한다. 불행의 근절,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보살핌, 지구 자원에 대한 모든 사람의 공정한 접근을 포함한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2016년2월12일 쿠바에서 러시아 정교회 모스크바 키릴 총대주교를 만나 '더 형제적 인간애와 사랑의 에큐메니즘'을 실천하기 위한 공동선언에 서명했다.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한창이던 2022년3월16일 프란치스코 교종과 키릴 총대주교가 화상회의 대화를 나누면서 '협상'에 초점을 맞춰 '불을 끄기' 위한 공동 노력을 재확인한 '비극적이고 시사적' 약속의 출발이다.

또한 잊을 수 없는 것은 교종이 지난달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 스코틀랜드 교회 이언 그린실즈 총회장과 남수단을 향한 에큐메니컬 평화순례를 한 것이다. 종교간 대화 경우, 2019년2월4일 교종과 알아즈하르 아마드 알 타예브 대이맘이 아부다비에서 서명한 '세계 평화와 함께 사는 삶을 위한 인간형제애에 관한 문서'가 이정표를 제시했다. 이 문서는 종교간 대화를 장려하고 테러리즘과 폭력을 명백히 비난한다는 점에서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의 관계의 이정표가 되고 있다.

2023년과 2024년 두 차례에 걸쳐 바티칸에서 예정한 제16차 정기 주교 시노드 총회는 '공동합의적 교회를 위하여 : 친교, 참여, 선교'를 주제로 열린다. 교구, 대륙, 보편교회 세 단계로 나누어 진행하는 시노드는 경청, 식별, 협의로 구성한 3년 여정 마지막 단계가 될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종의 진보 시간에는 2019년2월 바티칸에서 열린 미성년자 보호에 관한 정상회담에서 성추행과의 싸움도 있었다. 그 결과 교종은 성추행에 진실하고 투명하게 행동하려는 교회의 바람을 분명히 표현해 회의에서 괴롭힘과 폭력을 보고하고 주교와 수도회 장상이 책임지도록 하는 새로운 절차를 수립한 자의교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를 발표했다.

프란치스코 교종의 순환 시간에는 평화에 대한 끊임없는 약속도 포함된다. 이에 대한 훌륭한 표현은 2020년10월4일 발표한 회칙 '모든 형제들'에 표시하고 있다. 이 문서는 형제애와 사회적 우정을 요구하며 전쟁을 단호히 반대한다. 2년 후,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했을 때 이 문서에 담긴 '전 지구적 연대의 윤리'에서 시작하는 '실제적이고 지속적 평화'에 대한 권고는 단편적인 전쟁들로 점점 더 '제3세계'를 경험하고 있는 세상에서 예언적 목소리가 될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종이 추진한 '평화 외교'의 다른 예로는 2014년6월8일 바티칸에서 이스라엘 시몬 페레스 대통령과 팔레스타인 마흐무드 압바스 대통령이 함께 한 '성지평화를 위한 기도'가 있다.

같은 해 12월17일 미국과 쿠바의 외교 관계 수립은 프란치스코 교종 자신이 몇 달 동안 버락 오바마와 라울 카스트로 두 나라의 정상에게 편지를 보내 '새로운 국면을 시작하라'고 촉구한 역사적 사건이다. 같은 맥락에서 주교 임명에 관한 바티칸과 중화인민공화국 사이에 2018년 체결한 잠정합의는 2020년과 2022년 각각 2년씩 연장되었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난해 교종은 개인적으로 평화를 위해 노력했다. 2022년2월25일, 교종은 바티칸 주재 러시아 대사 알렉산드르 아브데예프를 방문했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여러 차례 통화했다. 모든 무기를 침묵시키려는 교종의 호소는 지금까지 계속 줄기차게 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종의 복음화에 대한 열정은 현재 일반접견 교리교육 주제에도 표현하고 있다. 이는 교종의 '순환적, 현세적' 차원의 일부다. 2013년12월 발표한 교종 권고 ‘복음의 기쁨’에 명시한 복음화는 ‘기쁨’, '구원하시는 하느님 사랑의 아름다움'으로 신자들에게 다가가 '부드러움의 혁명'을 준비하는 교회의 '외출'이 특징이다. 특히 교종은 2014년4월27일 성 요한 23세와 요한 바오로 2세 시성식을 통해 전임자들과 강한 유대감을 표현했다. 그들은 2018년10월14일 시성한 바오로 6세와 2022년9월4일 시복한 요한 바오로 1세와 함께했다. 교종은 그들의 미소를 ‘즐거운 얼굴을 가진 교회’의 상징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교종은 2022년12월31일 선종한 베네딕토 16세에 대해 10년간 엄청난 존경심을 숨기지 않았다. 여러 차례 걸쳐 교종은 그분의 신학적 헌신과 친절을 칭송했다. 1월5일, 교종은 719년 만에 처음으로 전임 교종 장례미사를 성 베드로광장에서 주재했다. 이제 프란치스코 교종은 재위 11년차를 맞아 희망을 동반한다. 그는 “희망하는 사람은 결코 실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희망에는 부활하신 주님이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폭력피해 여성들의 곤경에 침묵할 수 없습니다”

교종, 교종청재단 100주년 회의에서 여성 차별 비난

프란치스코 교종은 3월11일 가톨릭 대학의 전략 동맹인 교종재단 100주년(Centesimus Annus Pro Pontifice Foundation)이 주최한 회의 참가자들을 만나 폭력피해 여성들의 호소를 받아들이고 직장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을 비난했다. 또한 교종은 이에 대항하는 ‘이웃 여성’들의 영웅 행동을 치하했다. 이날 바티칸 클레멘티나 홀에서 열린 이들과의 만남에는 교종이 서문을 집필한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더 많은 여성 리더십’ 재단과 가톨릭 대학 SACRU 네트워크 약 90명 회원이 참석했다. 연설 내용.

너무 오랫동안 여성은 폭력과 학대의 첫 번째 폐기물이자 쓰다 버린 피해자였습니다. 저는 출산, 남녀간 임금 격차로 직장에서 지속적으로 당하는 차별을 생각합니다. 이에 대항하는 ‘착한 이웃’의 많은 익명 여성의 영웅적 행동인 ‘우리 시대의 조용한 힘’의 다양성은 여성과 남성 사이의 더 큰 포괄성의 중요성을 상기하며, 결코 불평등이 아니라 감사와 상호수용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경고합니다. 여성들에 대한 폭력은 비극입니다. 모든 사람의 존엄성과 기본권은 존중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시대의 이러한 재앙 앞에서 침묵을 지킬 수 없습니다. 기업에서 여성은 이용당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여성들에게 덜 지불합니다. 그리고 어떤 기업에서는 여성이 임신한 것을 보면 일자리를 주지 않고 돌려보낼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대도시에서 사용되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어머니와 함께 여성을 버리는 것입니다. 전염병과 같은 이러한 현실을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가 직장에 대해 언급했던 것과 같은 학대, 착취, 소외, 부당한 압력의 피해자인 여성 피해자들을 목소리 없이 떠나지 말게 합시다! 그들의 고통을 표명하고, 종종 방어와 구원 가능성을 박탈하는 맥락에서 그들이 당하는 불의를 강력하게 비난합시다. 저는 여성과 사회의 다른 약한 범주에 대한 어떠한 형태의 차별도 분명히 거부합니다. 따라서 제가 말하는 "함께 걸으라"는 요청은 특히 경제적, 문화적, 인종적, 성별 수준에서 가장 취약한 모든 사람을 통합하는 것입니다. 이 사회에서 그 누구도 배제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신성한 원칙입니다. 창조주 하느님의 계획은 정확히 ‘실존적 변방의 주민들’을 중심에 두는 본질적으로 포괄적인 프로젝트입니다. 그것은 어머니가 그러하듯이 그녀의 자녀들을 ‘같은 손의 다른 손가락’으로 바라보는 프로젝트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공동선에 대한 여성의 기여는 대체할 수 없고 부인할 수 없습니다.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성녀 요세피나, 성녀 바키타, 성녀 에디트슈타인, 콜카타의 성녀 데레사와 같은 교회 인물의 역사에서도 ‘결단력, 용기, 충실도, 고통에서 기쁨을 전하는 능력, 정직, 겸손, 끈기가 인상적입니다. 우리 시대의 조용한 은신처에서 살았던 일상 영웅의 많은 예도 있습니다. 저의 아버지 마리오 호세 베르골리오가 부에노스아이레스 감옥으로 가는 버스에서 만난 많은 여성입니다. 감옥을 방문한 사람들 90퍼센트는 여성이었습니다. 또 다른 여성의 이야기도 감동적입니다. 그 어머니는 우리 시대의 조용한 힘입니다. 그녀는 비천한 환경에 남편도 없이 아주 작은 집에 살았으며 매일 아침 청소하러 나갔습니다. 문을 닫기 전 그녀는 전날 밤 술에 취해 식당 침대에서 자고 있는 아들에게 눈을 돌렸습니다. 어머니의 일상적이고 끊임없는 시선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소년의 마음을 변화시켰습니다.

우리의 역사는 문자 그대로 이와 같은 유명하거나 알려지지 않은 여성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가정과 사회와 교회의 여정을 이어 가는 여성들, 문제 많고 사악한 남편들과 말썽 많은 자녀들, 우리는 여기 바티칸에서도 그것을 알아차립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막중한 책임이 있는 역할에서도 '열심히 일하는' 여성들이 많습니다. 바티칸의 분위기도 부지사가 여성인 순간부터 상황이 더 좋아졌습니다. 그리고 여성 비서, 경제평의회가 있는 다른 장소에는 추기경 6명과 평신도 6명이 있습니다. 모두 남자입니다. 그것도 2년 전에 개선했습니다. 남성 평신도 1명과 여성 평신도 5명이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마찬가지로 현재 심오한 변화의 순간, 즉 인공지능의 진보적이고 급속한 발전과 같은 획기적 변화에 직면한 여성은 인류가 쇠퇴하지 않도록 도울 수 있으며 그들의 능력을 통해 할 일이 많습니다.

정신, 마음, 손의 세 가지 언어 합성은 인간에게만 가능한 고유한 합성이며, 어떤 기계도 달성할 수 없는 놀라운 방식으로 여성이 구현하는 것입니다. 행복한 여성은 아이들 침대 옆에서 사랑하는 사람들 고통과 기쁨에 동참하면서 울지 않습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저에게 주신 책, "주목할 만한 다양한 공헌의 결실"과 전 세계에 흩어 있는 대학들과 전체 바티칸 재단간의 협력, 지금까지 감추인 협력을 높이 평가합니다. 여러분이 강조하는 새로운 방식은 콘텐츠의 풍부함이 상호보완적인 경험, 기술 및 감정 방식의 기여에서 파생하는 것입니다. 다학문성, 다문화주의, 서로 다른 감성의 공유는 단지 이론적인 것이 아닌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중요한 가치에 따른 것입니다.

 

“노동자를 보호하지 않으면 사회는 ‘낭비의 노예’가 됩니다”

교종, 이탈리아 국립 산업재해보험연구소 관리자들에게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3월11일 이탈리아 국립산업재해보상보험연구소(INAIL) 관리자와 직원들을 접견하고 노동 현장과 직장 내 고용원들에 대한 보호의 가치를 강력한 발언으로 강조했다. 교종은 이들에게 일하는 사람들에게 보증을 제공하지 않는 기업의 ‘쓰레기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특히 여성의 부상과 재해의 증가, 특히 임신한 경우 그들을 밀어내는 사고방식을 강하게 비판했다. 연설 내용.

산업 현장과 직장에서 노동자의 존엄성이 항상 보호되는 것은 아니며 종종 사고 발생 시 그 부담은 노동자 가족의 어깨에 지우고 보호가 없는 사회는 항상 ‘폐기물 문화의 노예’가 됩니다. 특히 이탈리아에서는 건강 및 운송 부문에서 불만 건수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팬데믹 후유증과 함께 여성들의 부상도 늘어났습니다. ‘안전한 직장’은 아직 구현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끔찍한 현상의 논리는 "당신이 생산한다면 당신은 가치가 있다"라는 문구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여성이 임신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여성에 대한 사전 거부 현상으로 이어집니다. 이는 여성은 임신할 수 있기 때문에 덜 안전하다고 스스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성이 임신으로 살이 찌기 시작할 때 내보낼 수 있으면 더 좋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이 많은 기업의 사고방식이고 우리는 그것에 맞서 싸워야 합니다.

일회용 문화의 노예 사회에서 여러분 INAIL의 업무는 소중한 것입니다. 즉, 계속해서 부상을 예방하고 부상자를 동반하고, 가족에 대한 지원을 보장하여 아무도 ‘스스로 버림받았다고 생각하지 않게 하는 것’ 이것이 핵심입니다. 노동자들에 대한 보호 장치가 없으면 사회는 점점 더 일회용 문화의 노예가 됩니다. 결국 사람의 존엄성을 인정하기보다 사람을 향한 실용주의적 시선에 굴복하게 됩니다. 이러한 ‘쓰레기’를 퍼뜨리는 엄청난 논리는 ‘생산하면 가치가 있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는 매우 끔찍한 일입니다. 즉, 생산하면 가치가 있고, 생산하지 않으면 가치가 없습니다. 따라서 활동의 톱니바퀴에 남아 있는 사람만 계산되고 피해자는 옆으로 치워 부담으로 간주하고 가족의 선한 마음에 맡깁니다.

생명과 건강은 무엇보다 소중합니다. 작업장에서 안전에 투자하지 않는 것은 사고 증가의 주된 원인입니다. 이는 또한 생명과 건강이 조금 더 많은 돈이나 누군가의 개인 이익을 위해 교환할 수 없는 귀중함을 상기합니다. 버리는 문화는 피해자를 비난하는 경향으로 이어지며 이것은 항상 나타나는 기업의 정당화하는 방법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맨 위에 두는 가치의 올바른 위계는 노동의 의미와 질, 장소 및 운송, 근본적인 측면에 대한 배려의 중요성에 대해 성찰하는 것입니다.

노동력이 저하되면 민주주의는 피폐해지고 사회적 유대는 느슨해지게 마련입니다. 따라서 안전규정을 준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는 불필요한 부담이 아닙니다. 늘 그렇듯이 우리는 건강이 없어졌을 때 비로소 그 소중함을 깨닫게 됩니다. 따라서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현대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편으로는 원격 작업과 같은 좋은 솔루션을 선호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들이 커뮤니티의 일부라고 느끼지 못하게 함으로써 고립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가족은 소비 장소이고 회사는 생산 장소'라는 생각을 강화하는 가족 생활의 장소와 작업 환경 사이의 명확한 분리로 일어나는 부정적 결과는 성장을 위험에 빠뜨리는 사고방식입니다. 사람들은 그들이 생산하는 것에 대해 가치가 있기 때문에 생산 세계 밖에서는 오로지 돈과 동일시하는 가치를 잃습니다. 따라서 INAIL의 헌신은 착한 사마리아인의 예를 따라 도움이 필요하고 버림받을 위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상처에 붕대를 감고 책임지는' 필수적인 것으로 입증했습니다.

거듭 강조합니다. “보고, 연민을 갖고, 가까이 다가가고, 상처를 붕대로 감고, 책임을 집니다.” 이것은 좋은 협상이 아니라 항상 손실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계속해서 일어나는 모든 형태의 장애에 직면해야 합니다. 육체적인 것뿐만 아니라 심리, 문화, 영적인 것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적 포기는 우리 각자가 자신을 보고 인식하는 방식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칩니다. 무관심은 절망적 사회의 신호입니다. '본다'는 것은 '다친 사람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숫자가 아닌 고유한 사람을 본다는 뜻이지만 모든 사람은 고유한 이름과 얼굴이 있습니다. 형용사가 아니라 명사가 있습니다. 다친 사람, 아니오, 사고를 당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형용사를 너무 많이 사용하는 데 익숙한 약간 빠진 문명에 있으며, 명사의 문화를 잃을 위험이 있습니다. 이것은 '부상자가 아니라 부상을 입은 사람'입니다.

연민은 여성이나 노인의 어리석은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매우 큰 인간의 일입니다. 연민은 무관심의 반대이지만 우리는 무관심의 문화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연민은 하느님의 스타일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스타일이 무엇인지 자문해 본다면 세 단어로 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자비’입니다. 하느님은 자비로우십니다. 또한 두 번째는 ‘긍휼’입니다. 하느님은 긍휼이 있으십니다. 그래서 자비로우십니다. 셋째는 ‘부드러움’입니다. 친밀함과 자비와 부드러움. 이것이 하느님의 방식이며 우리는 그 길을 가야 합니다. 친밀함은 연약함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친밀함으로 장벽이 무너져 우리의 인간성인 공통된 소통 계획을 찾기 때문입니다.

붕대 감는 상처는 ‘보상을 받기도 전에’ 환영하고 들어주기를 요청하는 부상자에게 시간을 바치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마지막으로, 사고로 인해 회사를 그만둬야 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찾아가는 드라마를 통합적으로 챙겨 주지만, '가짜 연민'이 아닌 창의력으로 하는 것은 ‘구제’의 문제가 아니라 정의 행위 문제입니다. 우리 이웃의 상처에 도전하고 형제애의 길을 가도록 허용합시다. 이것이 저의 요청입니다. 그것은 연대와 자선에 의해 다양한 차원에서 인류에 대한 보살핌입니다. 왜냐하면 무관심은 절박한 사회와 평범한 사회의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또한 희망이 없다는 의미에서 필사적이라고 말합니다.

 

“무관심은 절망적이고 평범한 사회의 징표”

교종, 산재보험협회 대표들에게 장애에 대한 인식 촉구

프란치스코 교종은 3월9일 오전 직장 내 사고 피해자를 위해 일하는 이탈리아 산재보험협회 대표들을 접견하고 아무도 소외되지 않는 사회를 건설하려는 이들의 헌신에 감사를 표했다. 또한 교종은 회원들에게 다양한 노동자들이 직면하는 다양한 형태의 장애와 어려움을 인식하는 법을 배우라고 촉구했다. 연설 내용.

노동자들이 종종 부당하게 직면하는 사고의 부담이 가족들의 어깨에 지웁니다. 이러한 현상은 코로나 팬데믹이 도래하면서 상황이 더욱 악화됐습니다. 이와 관련한 여러분의 노력에 감사드립니다. 특히 지난 몇 달 동안에는 여성 노동자들의 사고 건수도 늘어났습니다. 인생에는 대가가 없는 법입니다. 사고 건수 증가는 직장에서 안전에 투자하지 않는 결과 중 하나입니다. 한 사람의 건강은 몇 유로나 개인의 이익과 바꿀 수 없습니다. 가정과 직장 환경의 명확한 분리는 가족뿐 아니라 직장 문화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쳤습니다. 즉, 가정은 소비 장소이고 기업은 생산 장소라는 생각을 강화했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생산한 만큼 가치가 있다는 사고방식을 강화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장애는 신체적인 것뿐만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일어나는 모든 형태 장애의 얼굴을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신체 장애뿐만 아니라 심리적, 문화적, 영적 장애도 함께 살펴야 합니다. ‘다친 사람' 같은 것은 없지만 상처를 입은 사람의 이름과 얼굴이 있습니다. 부디 여러분은 모든 사람들과 가까이 있어 나약함을 공유하는 같은 차원에 자신을 두어 격차를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을 당부합니다. 나약함을 더 많이 느낄수록 더 가까이 다가갈 자격이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우리의 인간성이라는 공통된 소통의 면을 찾기 위해 노력할 때 장벽은 무너집니다. 부디 여러분은 우리 형제자매들의 상처에 도전하고 '형제애의 길'을 추적하기 바랍니다. 무관심은 절박하고 평범한 사회의 징표입니다.

 

“빈곤 퇴치를 위한 적극 행동이 필요합니다”

교종, 사회적 권리 위한 범미 판사위원회에 영상 메시지

프란치스코 교종은 파라과이에서 열리는 사회적 권리와 프란치스코 교리를 위한 범미판사위원회에 영상 메시지를 보내고 그들의 모임을 축하하면서 빈곤 퇴치를 위한 더욱 적극적인 행동을 촉구했다. 메시지 내용.

현재 위급하고 복잡한 시기에 사회적 권리와 프란치스코 교리가 이 조직의 고무적 기반이 되어 기쁩니다. 이미 아르헨티나, 칠레, 브라질, 콜롬비아, 페루, 멕시코, 미국 등의 범미판사위원회 국가 지부에서 시스템 폐기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권리를 강화하는 데 기여하는 중요한 활동을 창출하는 진전을 이루었습니다. 라틴 아메리카 지역의 빈곤 증가는 우리에게 반성하고 행동할 것을 절실히 요구합니다. 깨끗한 물, 적합한 땅, 깨끗한 공기 등 자연이 주는 풍요로움을 모두 누리는 국가들의 빈곤과 굶주림은 받아들일 수도 없고 받아들여서도 안 됩니다. 사회적 권리가 프로그램적이라는 것을 대학 강의에서 설명하는 것은 매우 쉽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삶에서 이러한 권리를 실현하는 시간은 그들 자신의 존재자격, 즉 삶의 존엄성 또는 무가치함을 보여 줍니다.

부유한 나라가 자원 부족을 핑계로 사회 권리를 지키지 않는 것을 합리화하는 것은 통치하는 사람뿐 아니라 판단하는 사람도 포함하는 심각한 잘못입니다. 부는 하느님의 선물로 만인에게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자연 환경이 부유한 나라에서 빈곤이 지배할 때 구조적 불의가 현실화됩니다. 소외된 공동체에서는 발전의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더욱 그러합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소수 강력한 사람들이 나타날 수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불평등한 공동체는 실패와 침체에 처할 운명이 됩니다. 이러한 부당한 현실을 뒤집을 수 있는 권한을 가진 판사들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을 때 사람들은 현실적이고 명백한 진단에 기반한 새로운 전체주의적 담론의 문을 열어 주지만 비인간적이고 이기적인 정치적 해결책을 조장하는 것뿐입니다, 그것은 이 슬픈 선물보다 더 나쁜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활동을 격려하면서 앞으로 더욱 평등과 발전, 빈곤퇴치를 위해 헌신할 것을 촉구합니다.

 

“예루살렘은 보편적 영적 가치 보유한 거룩한 도시”

교종, 바티칸-팔레스타인 대화위원회 참가자들에게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3월9일 바티칸과 팔레스타인 간 대화 그룹 참가자들을 접견하고 그리스도교와 유대교, 회교 세 가지 주요 일신교에 대한 예루살렘의 보편적 가치를 상기하면서 예루살렘 평화를 위한 노력을 강조했다. 바티칸은 이번 주 로마에서 종교간 대화를 위한 부서와 팔레스타인 종교간 대화위원회 간의 공동작업 실무 그룹 회의를 주최했다. 말씀 내용.

저는 과거 팔레스타인 대통령 종교 고문인 셰이크 마흐무드 알 하바쉬와 함께 예루살렘 평화를 위한 대화 실무 그룹을 시작한 고 장 루이 토랑 추기경을 회상합니다. 또한 실무 그룹 회의에서 선택한 주제를 형성한 예루살렘의 영적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저는 2019년 모로코 국왕에게 모든 사람이 예루살렘을 인류, 특히 세 가지 일신교 신자들의 공통 유산으로, 만남의 장소와 평화 공존의 상징으로 만들자고 호소한 바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복음서에서 예수님 생애의 많은 사건의 무대가 되고 있습니다.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은 주님께서 성전에 나타나셔서 가르치고 기적을 행하셨으며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 사명을 완수하신 곳입니다. 예루살렘은 또한 제자들에게 성령을 주어 구원의 메시지를 선포하도록 세상에 보내심으로써 교회가 탄생한 곳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보편적 가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수난 전에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 근처에서 그 도성을 보고 우시며 말씀하신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루카 19,41-42 참조)처럼 예루살렘은 고통받는 아이들을 위해 우는 어머니의 도시입니다. 유대인, 그리스도교인, 무슬림 등 얼마나 많은 남녀가 예루살렘을 위해 울었고 오늘날에도 계속해서 울고 있습니까! 우리도 거룩한 도시가 고통받는 자녀들을 위해 평화를 바라는 어머니와 같다는 것을 생각할 때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바티칸과 팔레스타인 합동 워킹 그룹 회원들은 예루살렘을 위한 예수님의 말씀과 그분의 눈물의 중요성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대한 하느님의 긍휼은 우리의 것이 되어야 하며, 그 어떤 이념이나 정치적 성향보다 더 강력해야 합니다. 부디 여러분 대화그룹이 ‘모두의 존경과 공경’을 받을 자격이 있는 예루살렘에 대한 사랑을 반성하면서 ‘연민의 가치’를 상기하고 실현할 수 있기를 촉구하며 이를 위해 기도드립니다.

 

“이주민 포용은 더 나은 미래를 향한 길입니다”

교종, 프란치스코 형제회 ‘환대의 의자’ 훈련 참가자들에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3월9일 바티칸 컨시스토리 홀에서 프란치스코 형제회가 10일까지 여는 ‘환대의 의자’ 훈련회의 참가자들을 접견하고 이들에게 다른 곳에서 더 나은 미래를 찾기 위해 고국을 떠나는 사람들과 그들의 편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폐쇄적 민족주의에 맞서 형제애와 사회적 우정을 형성하려면 무상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말씀 내용.

‘열린 세계’의 특성 중 하나는 ‘환대’입니다. 회칙 ‘모든 형제들’에서 시작한 ‘열린 세상을 생각하고 생성하라’는 요청도 환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얼굴, 이야기 및 구체적 문제를 염두에 두고 운영하고 환대를 창출할 수 있도록 조직한 훈련회의는 다른 사람들을 차별 없이 모든 사람에게 개방하라는 초대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모든 형제들’에 기록된 바와 같이 폐쇄적 민족주의는 다른 사람의 파멸과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닫음으로써 자신들이 더 보호받을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주민들을 아무것도 제공하지 않는 약탈자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그들은 가난한 사람은 위험하거나 쓸모없고, 권력자는 관대한 후원자라고 순진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무상 환대를 포함하는 사회, 정치 문화만이 미래를 가질 수 있습니다. 무상적인 측면은 형제애와 사회적 우정을 생성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우리는 종종 이민자들이 그들을 환영하는 사회에 제공하거나 제공할 수 있는 기여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사실이며 중요합니다. 그러나 근본 기준은 그 사람의 유용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나타내는 가치 그 자체에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그가 가진 것, 그가 가질 수 있는 것 또는 그가 줄 수 있는 것 때문에 환영받을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가진 것 때문에 환영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구약성서에서는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세 종류 사람들, 즉 과부, 고아, 이주자에 대해 반복 강조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 항상 감명을 받고 있습니다. 성경은 또한 자신에게 남긴 것을 이들에게 바치라고 권고합니다. 가지고 있지 않거나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환대하는 방식의 이러한 환대 전통을 재개하는 것은 오늘날 매우 중요합니다. 이는 사랑에 대한 개방성과 타인에 대한 무조건적 개방성입니다.

회칙 ‘모든 형제들’ 세 번째 장에서 탐구한 ‘사랑의 점진적인 개방’, ‘보편적 친교를 향한 노력’, ‘다른 사람을 환영하는 더 큰 능력, 모든 것을 하나로 모으는 끝없는 모험’은 완전한 상호소속감을 향한 것이며 이에 따른 수용은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베네딕토 16세의 첫 번째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에서도 강조했듯이 수용은 사랑의 표현이며, 다른 사람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그의 삶을 위한 최선의 것을 추구하도록 이끄는 개방성의 역동성이며, 그 순수함 속에는 하느님께서 주입하신 사랑이 있습니다. 이주민들 가운데는 심지어 다양한 이유로 ‘실존적 외국인’ 또는 ‘숨은 망명자’인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는 모든 구성원을 통합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이 부디 환대를 더 잘 경험하고 환대의 문화를 촉진하기 위해 착수한 양성의 길을 계속할 것을 격려합니다.


장기풍(스테파노)
전 <평화신문> 미주지사 주간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관련기사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