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곰출판, 2021

이 책은 충격과 경이로움 그 자체다. 처음 제목만으로는 과학이나 생물학 서적일까 생각했다.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라는 부제를 보고는 철학과 인문학 서적을 연상했고, 마지막에 가서는 소설적 문체까지 아우르는, 한마디로 경계가 없는 책이라는 말이 적합할지 모르겠다.

저자 룰루 밀러는 미국 공용 라디오 방송국(NPR)에서 15년 넘게 일하고 있는 과학 전문기자다. ‘방송계의 퓰리처상’으로 불리는 피버디상(Peabody Awards)을 받은 이력이 있고 자신의 전기이자 회고록인 논픽션 데뷔작이 바로 이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이다.

이 책은 저자의 이십대 초반 기자 시절 들은 '데이비드 조던'이라는 한 과학자 - 분류학자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저자가 나이를 먹으며 자기 삶에 찾아든 혼돈 속에서 느닷없이 이 과학자를 떠올린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데이비드 조던은 혼란스러운 세상에 나름의 자기 질서를 부여하려던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의 일생을 탐구하는 것이 미련스러울 수도 있다는 불안한 예감으로 그러나 침착하게 무언가를 미련할 만큼 밀고 나간 그를 탐구해 보기로 한다.

저자는 말한다. “자기가 하는 일이 효과가 있을 거라는 확신이 전혀 없을 때도 자신을 던지며 계속 나아가는 것은 바보의 표지가 아니라 승리자의 표지가 아닐까 생각했다.” 인생에 찾아온 혼란의 시기에 자신을 믿고 자신보다 앞서간 한 과학자를 탐구해 나가는 저자의 기록은 정말이지 놀랍다. 아니 데이비드 조던이라는 사람이 그렇다. 그는 매우 놀라운 사람이다. 그야말로 여러 측면으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정지인), 곰출판, 2021. (표지 출처 = 곰출판)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정지인), 곰출판, 2021. (표지 출처 = 곰출판)

그의 전문 분야는 어류로, 새로운 종을 찾아 전 지구를 항해하며 시간을 보낸다. 조던은 수십 년에 걸쳐 지치지 않고 일했으며 어류 중 5분의 1이 모두 그와 그의 동료들이 발견한 것이었다. 그는 새로운 종을 수천 종 낚아 올렸고 종마다 이름을 지어 주었으며 그 이름을 주석 꼬리표를 달아 유리 단지에 표본과 함께 이름표를 넣었다. 그러던 중 1906년 어느 봄날 아침, 난데없이 닥친 지진으로 수백 개의 유리단지가 모두 박살이 난다. 이것은 하나의 암시였다. 혼돈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질서를 세우려는 시도는 결국 실패할 운명이라는. 그러나 조던은 이 메시지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그는 다시 파괴된 잔해 속에서 물고기들을 하나씩 건져내어 바늘로 이름표를 꿰어 붙였다.

처음에는 그저 성실하고 지독하게 한 길을 걷는 모범적인 과학자의 모습을 상상했다. 하지만 그의 광기에 가까운 체계화 작업은 사람을 독살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그는 과도한 자신감에 넘치게 되고 자신이 세운 질서 안에 모든 것을 통제하려 했다. 잠재적으로 자기 인격에 가해질 공격을 능수능란하게 막아내며 과도한 자기 기만으로 우월감을 과시했던 사람이었다. 마침내 그는 ‘우생학적 불임화’의 합법화를 돕는 핵심인물이 된다. 말 그대로 우성한 유전자를 보호하고 열등한 유전자를 제거하기 위해 1920-70년대까지 미국에서 여성들에게 강제 불임시술을 강행했던 운동이다. 이는 독일 나치 정권의 유대인 학살, 장애인, 성 소수자 학살에 이용되었다.

저자는 자신이 탐구하던 조던이라는 사람의 흉악한 모습에 진저리를 치며 책을 덮는다. 그리고 결국 1980년대 분류학자들에 의해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평생을 바쳐 광기와 집착이 쌓아 올린 조던의 수집과 연구는 이로써 소멸한다.

이 책은 어디에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궁금증을 계속 증폭시킨다. 결국, 저자가 자신의 삶과 조던의 삶, 그리고 아버지에게 어린 시절 들은 혼돈에 관한 이야기 등등은 수십 개의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보이는 한 편의 영화 같다.

저자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으로 일곱 살 때의 자신을 떠올린다. 아버지에게 했던 질문 “인생의 의미가 뭐예요?”라는 질문에 아버지는 대답한다. “의미는 없어!” 아버지의 이 말은 여러 가지 측면으로 저자를 공격한다. “의미는 없어. 신도 없어, 어떤 식으로든 너를 지켜보거나 보살펴 주는 신적인 존재는 없어. (중략) 진실은 이 모든 것도, 너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란다.” ‘혼돈’만이 우리의 유일한 지배자라고 아버지는 어린 저자에게 말했다.

자칫 회의주의자나 허무주의자처럼 들리는 아버지의 이 말은 어린 시절의 저자에게는 조금도 와닿을 수 없는 이야기인 동시에 오히려 자기 품에서 포근한 이불을 빼앗아가는 그것만큼이나 끔찍한 일이었다고 말한다. 동시에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부정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넌 중요하지 않아.”

아버지의 이 말은 사실상 우주 속에 점 같은 우리 존재에 대한 원론적인 말이었다. 조던이라는 학자의 삶과 대비해 볼 때 자신의 과도한 신념과 병적 자만심으로 혼란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던 그의 삶이 어떻게 망가졌고 얼마나 많은 이를 희생시켰으며 인류에게 끔찍한 짓을 가능하게 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아버지의 저 말은 일종의 경고이자 삶에 대해 우리가 갖는 자기 기만의 위험성을 예고한 말이었다. 인간의 삶은 어떤 것으로 체계화 할수 없다. 모든 살아 있는 생명이 마찬가지다. 우리가 질서 안에 가두려고 하면 할수록 그것은 더욱 혼란을 부추길 뿐이다.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내 존재가 작고 작아져 개미와도 같은 미생의 하나일 뿐이라는 본질을 깨닫고 살아갈 때 이 혼돈의 세계는 오히려 질서를 잡아갈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성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며 사회적 편견, 사회적 고정관념,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하는 ‘질서’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굉장한 폭력과 억압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우리가 굳게 믿었던 진실들. 물고기. 어류. 우생학. 그러나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우리가 의도적으로 잡아놓은 세계의 질서라는 것들이 얼마나 허술하고 사실상 미명에 가까운 것인지를 통찰하게 하는 책이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우리가 규정한 언어에 관해서도 이야기한다.       

필자는 이 책을 읽으며 가슴이 뛰었다. 중간중간 숨을 고르며 천천히 여러 번 읽어야 했던 대목들이 많았다. 이 책은 놀랄 만큼 많은 것을 아우른다. 그리고 아는 만큼 보일 수 있는 신비롭고 비밀에 가까운 책이다. 질서 너머의 질서를 이야기하며 그 너머의 직관에 의한 삶을 말하고 있다. 그간 우리가 굳게 믿었던 진실이라고 하는 그 너머를 엿보고 싶은가. 그럴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다면 이 책을 읽어 보시길 바란다. 충격과 혼란의 세계로 오신 것을 환영한다.

구영주(세레나)
11살, 세례 받고 예수님에게 반함. 뼛속까지 예술인의 피를 무시하고 공대 입학. 돌고 돌아 예술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며 피는 절대 속여서는 안 됨을 스스로 증명. 아이들과 울고 웃으며 화가로, 아동미술치료사로 성장.
칼럼과 서평 쓰기가 특기며, <가톨릭 다이제스트> 외 여러 잡지에서 자유기고가로 활동. 현재 남편과 12살 아들, 두 남자와 달콤 살벌한 동거 중.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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