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구들: 여성은 왜 원하는가", 캐럴라인 냅, 정지인, 북하우스, 2021

"욕구들: 여성은 왜 원하는가", 캐럴라인 냅, 정지인, 북하우스, 2021. (표지 출처 = 북하우스)<br>
"욕구들: 여성은 왜 원하는가", 캐럴라인 냅, 정지인, 북하우스, 2021. (표지 출처 = 북하우스)

이 책은 여성의 주체적 종속에 대한 저자 캐롤라인 냅 자신의 혼란과 분노를 넘어선 성찰의 기록이다. 그녀는 자신의 내적 허기를 개인적 사건을 통한 성찰과 내적 기록으로 면밀하게 써내려갔다. 이 책은 여성들이 어린 시절부터 강요받는 여성다움에 대한 암묵적 강요와 사회적 시선에 대해 한 개인의 내면이 붕괴되는 뼈아픈 기록이자 신자유주의 시대에 나타나는 여성들의 다양한 문제를 숙고해 볼 수 있는 사회적 성찰의 텍스트로 삼아야 할 소중한 기록이다.

저자는 1959년 저명한 정신분석가 아버지와 화가이자 주부였던 어머니 사이에 쌍둥이로 태어났다. 브라운 대학을 졸업한 뒤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며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흔들었던 욕구, 의존, 강박 등을 정직하게 드러내는 글쓰기로 평단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2002년 4월 마흔둘이라는 나이에 폐암을 진단받은 뒤 오랜 연인이었던 사진작가 마크 모렐리와 결혼했으며 그해 6월에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20년 가까이 시달린 자신의 알코올 의존을 고백한 "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과 반려견에 대한 깊은 애착에 대해 성찰한 "남자보다 개가 더 좋아", 생전 칼럼을 묶은 유고 에세이 "명랑한 은둔자" 등의 책을 남겼다.

이 책 "욕구들"은 저자가 거식증으로 고통받던 시절을 회고하면서 식욕, 성욕, 애착, 인정욕, 만족감등 여성의 다양한 욕구와 사회문화적 압박에 대해 유려하게 써내려간 생애 마지막 책으로 암 진단을 받기 2개월 전에 탈고했으며 그녀가 죽은 다음 해에 출판되었다.

필자는 이 책을 읽고 나서 저자가 궁금해진 나머지 그녀의 책들을 찾아 모두 읽었다. 그녀는 자신의 모든 책에서 가장 솔직한 자기 고백식의 문체를 통해 자신의 내적 문제와 그 문제의 근원인 가정과 사회적 문제를 연결짓는 놀라운 내적 통찰을 보여 준다. 욕구들에서는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전통적 관념 속에 존재하는, 즉 여성 개인의 욕구는 지워지고 날씬함을 강요당하는 여성 그로 인해 빚어지는 여성의 내적 균열의 문제들을 밀도 있게 다루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매체나 광고에서 강요되는 사회적 미의 기준, 이로 인해 여성들이 갖게 되는 육체에 대한 자기혐오와 비난, 남성들에 비해 여성들의 억압된 또는 학습된 욕구들과 전통적 개념의 여성 욕구의 희석 등에 대해 저자 자신과 그녀가 만난 다양한 여성들의 서사가 자세하게 묘사된다. 부모와의 동일시와 그 실패를 통해 부모로부터 완전한 정서적 독립을 이루어낸 여성과 그렇지 못한 여성의 차이점은 삶에서 욕구의 표출 문제로 확연하게 드러난다. 그녀는 또한 조정이라는 운동을 통해, 몸을 통해 이루어내는 자신만의 건강한 느낌과 감각에 집중하며 여자로서 그간 느껴 보지 못한 또 하나의 몸의 상태를 느꼈다고 고백한다.

"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 역시 자신의 20년간 지속된 알코올 의존증을 고백하며 완치하기까지의 숱한 고통의 시간들을 치열하게 써내려갔다. 그리고 자주 은둔하며 자신의 내면을 끊임없이 성찰하고 기록해낸 "명랑한 은둔자"까지 매력적이고 매혹적인 저자의 자기 고백에 필자는 한동안 깊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우리가 선택하거나 겪게 되는 숱한 개인의 문제가 얼마나 깊은 사회적 맥락으로까지 해석되어질 수 있는지를 바라볼 수 있었다.

그녀는 현대 여성들이 느끼는 다양한 내면적 허기의 근원을 밝혀내는 과정 중에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되어지지 못한 채 버려진 숱한 죄의식과 자기혐오, 인간에 대한 연민을 자신만의 언어로 다시 길어내어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낸다. 결국 자신이 어쩌지 못하는 무력한 상황 속에서 자기조절과 자기통제의 한 축으로 선택한 삶이 거식증이었고 이로 인해 자신이 어떤 어둠 속을 오래도록 헤매게 되는지를 고백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리고 캐럴라인 냅의 나머지 책들을 읽으며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여성들의 숨겨진 욕구들, 거세된 욕구들, 숨길 수밖에 없도록 강요받는 욕구들, 어딘가에서 영원히 환대받지 못한 채 버려진 욕구들에 대해 그래서 자신이 ‘사회적 생존’을 위해 선택한 뒤틀린 방식에 대해 이토록 치열하게 성찰하고 아프게 써내려간 그녀가 동시대에 함께 살았었다는 것에 작은 위로를 받았다. 또한 중간중간 깊은 공감으로 마음이 아팠다. 그녀가 통과해 온 시간의 표적들이 기록된 이 책은 사실상 우리 거의 모든 여성의 아픈 교집합과 같은 서사다.

감각적이고 반짝이는 것들 속에 숨겨진 실체는 무엇일까?

여성의 자아에 기입된 그 숱한 ‘허기’의 명령들, 그 실체를 정면으로 응시했던 그녀 같은 여성들의 냉엄하고 투명한 성찰과 자기 사랑의 눈길이 더욱 아쉬운 시절이다.   

구영주(세레나)
11살, 세례 받고 예수님에게 반함. 뼛속까지 예술인의 피를 무시하고 공대 입학. 돌고 돌아 예술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며 피는 절대 속여서는 안 됨을 스스로 증명. 아이들과 울고 웃으며 화가로, 아동미술치료사로 성장.
칼럼과 서평 쓰기가 특기며, <가톨릭 다이제스트> 외 여러 잡지에서 자유기고가로 활동. 현재 남편과 12살 아들, 두 남자와 달콤 살벌한 동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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