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말고, 이모가 해주는 이야기", 소복이, 고래가그랬어, 2021

"엄마 말고, 이모가 해주는 이야기", 소복이, 고래가 그랬어, 2021. (표지 출처 = 고래가 그랬어)
"엄마 말고, 이모가 해주는 이야기", 소복이, 고래가 그랬어, 2021. (표지 출처 = 고래가 그랬어)

여기 독특한 이모가 있다. 엄마는 해줄 수 없는 말을 과감하게 툭툭 던지는 이모. 그래서 때론 아픈 진실을 무책임하게 드러내주는 이모. 하지만 우리에게 모두가 꼭 한 방향으로만 가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따뜻하게 건네주는 이모.

이모는 그런 어른이다. 세상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걸 엄마보다는 더 무심한 듯, 하지만 엄마 못지않은 애정으로 우리를 바라봐 주고 다정한 말을 건네주는 이모.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중에 엄마만큼의 애정을 가지고 우리 삶에 따뜻하게 개입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이모가 아닐까.

소복이 이모는 그렇게 탄생했다. 작가의 필명이기도 한 소복이는 작가의 소복한 눈두덩이에서 비롯된 친구들이 붙여준 재밌는 별명이지만 그 소복한 눈두덩이만큼 아이들에 대한 애정 또한 소복하다.

소복이 작가는 말한다.

“이모란 그런 존재잖아요. 엄마가 해줄 수 없는 얘기를 조금은 무심한 듯 조금은 무책임한 듯 던질 수 있는. 하지만 그런 이모 때문에 세상을 알게 되는.”

그렇다. 엄마는 할 수 없지만 이모는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다.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이지만 사실 우리 모두를 위한 그림책이기도 하다. 우리 어른들은 자주 잊고 살아가는 진실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아니, 알고 있어도 내 자식에게는 감추고 싶거나 말해줄 용기가 없어서 하지 않는 이야기. 소복이 이모 역시 이제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지만 여전히 조카들의 이모이며 이모만이 해줄 수 있는 이야기를 계속 들려주고 싶어 한다.

소복이 이모도 서른 살까지는 세상의 질서 속에, 나름의 규칙 속에 열심히 살아갔다. 회사만이 자신의 세계의 전부인 줄 알았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실직을 통해 삶의 전환점을 맞는다. 모든 이가 이쪽을 향해 걸어야 한다고 말할 때 우연히 멈추어 선 그 길은 무리에서 이탈한 자신에게 이제 어디로 가고 싶은지, 어디로 갈수 있는지를 질문하게 했다.

소복이 이모는 자신이 오랫동안 취미처럼 해 온 그림 그리는 일을 서른두 살에 과감하게 선택한다. 그리고 남들이 가지 않는 길로 가도 자신이 크게 불행하지 않다는 것을 경험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는 게 나쁜 일이 아니며 뒤처지는 것도 아니고 실패한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자신이 가고 싶은 길 안에서 같은 길을 가는 친구들을 만났고 그 안에서 삶의 방향성을 잡으며 안정감을 느꼈다. 자신이 원했던 삶이 잘못된 게 아닌 자신에게 좋은 길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런 자신의 생각을 4년간 꾸준히 그림으로 담았고 어린이 교양잡지 <고래가 그랬어>에 연재해 왔던 그림들이 이번에 책으로 묶여져 나왔다.

<고래가 그랬어>는 사회문화 비평가이자 교육운동가인 김규항님이 2003년 10월에 창간한 어린이 교양잡지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사유)과 ‘동무와 함께하는 마음’(연대)이 잡지의 주요 핵심 정신이며 아이들에게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건 무엇인지, 동무와 어울려 살아가며 연대하는 일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일은 왜 필요한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 잡지에 소복이 이모가 꾸준히 실어 온 그림들이 책으로 완성된 것이다.

지금은 결정할 때가 아니고 방황할 때라고 말하는 그림, 다른 방향으로 혼자 걷고 있지만 친구도 만나게 될 거라고 말하는 그림, 그날을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고 말하는 노란색의 그림들, 경쟁의 틈에 끼어 무조건 한 방향으로만 걷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그림과 어린 시절의 추억, 여행, 친구, 지금의 고단한 우리의 일상과 깊은 외로움이 담긴 그림과 그림들.... 모두가 필자에겐 따뜻한 위안이자 슬픔을 위로해 주는 또 다른 언어였다.

"엄마 말고, 이모가 해주는 이야기" 중에서. ©고래가 그랬어<br>
"엄마 말고, 이모가 해주는 이야기" 중에서. ©고래가 그랬어
"엄마 말고, 이모가 해주는 이야기" 중에서. ©고래가 그랬어<br>
"엄마 말고, 이모가 해주는 이야기" 중에서. ©고래가 그랬어
"엄마 말고, 이모가 해주는 이야기" 중에서. ©고래가 그랬어<br>
"엄마 말고, 이모가 해주는 이야기" 중에서. ©고래가 그랬어

필자는 그림들 하나하나를 찬찬히 바라본다. 저자의 그림 속 선들에 유독 마음이 머무른다. 연필로 그려나간 그림의 선들은 안정되고 따뜻하다. 날카롭고 뾰족한 현실의 이야기들이 빼곡히 담긴 그림책이지만 그림의 선은 더없이 부드럽고 선하며 자상하다. 한없이 위로받는 그림이다. 아이에게 선물하고 내가 더 자주 보게 되는 그림책이었다. 그림이 가진 힘을 오래도록 가슴에 담아둔다. 저자가 그린 선들의 방향과 지향점들을 생각해 본다.

직장을 다니다가 서른 즈음 그만두고 서른두 살에 시작한 그림그리기. 작가는 아이들에게 남들보다 조금 늦게 가도 조금 다른 방향으로 가도 괜찮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고 한다.

“전 올초까지도 2G폰을 썼어요. 그리고 지금은 4G폰이긴 하지만 효도폰을 써요. 그런대로 괜찮더라고요. 모두가 스마트폰을 쓴다고 저까지 스마트폰을 써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고성능의 스마트폰을 쓰지 않아도 크게 제 생활에 문제가 되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이제 무엇보다 엄마가 된 자신이 그런 마음의 중심을 잡고 살아가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작가가 그림 속에서 우리에게 건네는 말들은 세상의 시류에 휩쓸려 살지 않아도 된다고, 모두가 한 방향으로만 가려 할 때 굳이 그렇게 가지 않아도 크게 문제되지 않다는 이야기를 그림을 통해 하고 있다.

필자는 작가와의 짧은 인터뷰를 통해 아직도 세상에는 이런 자신만의 잔잔하고 따뜻한 빛으로 세상을 비추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데 알 수 없는 위안을 느꼈다. 화려한 조명과 현란한 불빛 속에서 아주 가끔 깜빡이는 작고 초라한 빛이어도 자신만의 온도와 자신만의 밝기로 삶을 비추어 나가는 작은 별빛들이 있다. 필자는 그런 작가와의 대화 속에 누구도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만의 속도와 자신만의 밝기로 삶을 비추며 살아가는 가장 작고 아름다운 이의 모습을 본 것 같아 가슴이 일렁였다.

“엄마는 해줄 수 없지만 이모는 해줄 수 있는 이야기 중에 가끔 일탈에 관한 것들이 있죠. 예를 들면 제가 여러 그림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그거였어요. 친구 중에 진짜 목욕탕을 가겠다고 뛰쳐나와서 목욕 가방을 들고 저와 친구 몇 명과 합류해 가평 여행을 떠난 적이 있어요. 정말 잊을 수 없는 추억이었죠. 인생에는 이런 충동에 의해 생긴 일들이 있고 그게 인생을 살아나가는 데 잊을 수 없는 추억이나 사건들을 종종 만들어 주기도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소복이 이모의 그림 속의 인물들은 한결같이 엉뚱하지만 귀엽고 동시에 여유로운 면모가 있다. ‘해 봐야지, 하지만 안 된다고 해서 나쁠 건 없어.’ ‘설사 실패하게 되어도 크게 잘못되는 건 없어.’ 같은 메시지를 줄곧 우리에게 전해준다.

인생을 우리 아이들보다 더 먼저 살아본 이모의 이야기 속에는 웃음과 넉넉함과 여유가 있다. 무엇보다 획일화 된 삶의 방향과는 다른 방향을 선택해도 괜찮다고 말해준다. 꿈은 조금 천천히 찾아도 되는 거라고, 나는 서른이 넘어서야 겨우 내 길을 찾았다고. 그러니 무수히 실패하고 실패할 경험들을 계속해 보라고 격려한다. 엄마라서, 아빠라서 할 수 없는 이야기, 어쩌면 이모여서 해줄 수 있는 이야기가 이 책 한 권에 모두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이 더 성장했을 때는 비단 이것이 이모의 이야기뿐 아니라 우리 모든 인간에 대한 이야기임을 깨닫는 날이 올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모든 행위가 자신에게는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라는 것을 이모가 깨달았듯이 우리 모두가 깨닫게 될 것이다.

소복이 이모는 그 사이 결혼을 했고 이제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지금 이모는 7살 난 아들과 함께 일상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림일기로 그려 개인 홈페이지에 연재 중이다. 그리고 이것들이 다시 묶여 나중에 책으로도 나올 예정이다. 우리의 소복이 이모는 어린 아들과 함께 어떤 일상을 살고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소복이 이모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며 아이가 있는 모든 가정에 이 한 권의 책을 선물하고 싶은 밤이다.

구영주(세레나)
11살, 세례 받고 예수님에게 반함. 뼛속까지 예술인의 피를 무시하고 공대 입학. 돌고 돌아 예술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며 피는 절대 속여서는 안 됨을 스스로 증명. 아이들과 울고 웃으며 화가로, 아동미술치료사로 성장.
칼럼과 서평 쓰기가 특기며, <가톨릭 다이제스트> 외 여러 잡지에서 자유기고가로 활동. 현재 남편과 12살 아들, 두 남자와 달콤 살벌한 동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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