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두기와 언택트가 일상이 된 지 3년 차인 2022년 봄, 영화관은 특별히 극장에서 봐야 하는 스펙터클과 사운드가 갖춰진 영화가 아니면 웬만해서는 꺼려지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 영화관은 때가 되면 나타나는 할리우드 발 블록버스터나 성수기용 한국 영화가 아니면 익히 알려진 재개봉작이나 마니아층을 겨냥한 예술 영화로 관을 채우고 있다. 영화 관람은 그간 익숙한 것과의 작별을 고하며 예기치 않게 변신하고 있는 중이다.

역병 시대에 영화 감상은 가성비라는 측면에서 OTT를 주류 감상 플랫폼으로 올려놓았고, 영화관은 기존과 달리 콘셉트 공간으로 다양하게 변신하고 있다. 영화관은 대중 일반이 아니라 마니아에 호소하는 특별한 행사장으로 변화하는 중이다. 이때 공연 뮤지컬은 창작자와 뮤지컬 마니아 등 두 집단에게 모두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창작자는 더 널리 공연 작품을 확장할 수 있고, 팬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1열에서 작품 감상이 가능하다.

‘뮤지컬 킹키부츠 라이브’ 스틸이미지.&nbsp;(포스터 출처 =&nbsp;CJ ENM)<br>
‘뮤지컬 킹키부츠 라이브’ 스틸이미지. (포스터 출처 = CJ ENM)

지난해 ‘베르테르’, 그리고 올해 ‘몬테크리스토: 더 뮤지컬 라이브’과 ‘팬텀: 더 뮤지컬 라이브’ 등의 뮤지컬 공연 실황 영화가 의미 있는 숫자의 관객을 동원하였다. 이렇듯 뮤지컬 공연 실황 상영은 영화관의 새로운 트렌드로 등장하고 있다. 공연 실황을 카메라가 정지된 상태에서 멀리서 한눈에 보이도록 담는 것이 아니다. 영화적 이야기 전개 방식을 따라 영화적 기술을 접목시켜서 카메라가 움직이고, 이미지를 담는 샷은 다양한 크기로 배치되며 여러 가지 앵글들이 활용된다. 이러하니 1열에서 감상이라는 특별한 체험을 더 구체화하는 것이다.

공연이지만 영화처럼 감상하게 되는 공연 실황 상영은 공연의 웅장함과 생생함은 살리고, 여기에 다채로운 영화적 뷰를 통해 공연과 영화의 장점을 모아 독특한 시네마적 순간을 제공한다. 오히려 배우들의 감정이 담긴 얼굴 표정이 자세히 보이고, 디테일이 살아 있는 무대 미장센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번 주에 개봉하는 ‘뮤지컬 킹키부츠 라이브’는 1980년대 영국 노샘프턴의 한 신발 공장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킨키 부츠’(줄리언 재롤드, 2005)를 각색하여 만들어진 무대 뮤지컬 공연 실황을 카메라에 담은 작품이다. 영화에서 공연으로, 그리고 그 공연 실황을 다시 영화관에서 관람하는 것은 장르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는 현재의 시대정신같이 느껴진다.

‘뮤지컬 킹키부츠 라이브’, 브렛 설리반, 2022. (포스터 출처 =&nbsp;CJ ENM)<br>
‘뮤지컬 킹키부츠 라이브’, 브렛 설리반, 2022. (포스터 출처 = CJ ENM)

‘뮤지컬 킹키부츠 라이브’는 2013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하여 흥행에 대성공하고, 토니어워즈 6개 부문을 수상하며 작품성과 흥행성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 뮤지컬 ‘킹키부츠’의 영국 웨스트엔드 공연 실황을 담은 영화다. 이 작품은 배우이자 작가인 하비 파이어스틴과 연출가 제리 미첼이 공동 작업하였고, 1980년대 후반에 마돈나와 함께 팝 여성 보컬 왕좌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던 신디 로퍼가 음악을 맡았다.

파이어스틴과 미첼이 가진 브로드웨이 대표성도 대단하지만, 이 작품은 잊혀진 왕년의 팝 가수인 줄로만 알았던 신디 로퍼가 가진 놀라운 음악적 재능을 발견하는 기쁨을 준다. 작품은 묘하게도 1980년대 요란스러운 팝적인 흥겨움과 캠피적 예민함을 발휘하면서 진정한 자아 찾기 과정에 스며든 묘한 슬픔과 뻔뻔함, 그리고 뮤지컬다운 낙관적인 폭발력이 어우러진다. 따뜻한 스토리와 밝은 에너지로 무장한 가운데, 이 작품은 차별 없는 개성으로 충만한 세상이라는 주제 의식을 전 세계 뮤지컬 팬들에게 당당하게 전한다.

폐업 위기의 구두 공장을 물려받은 찰리는 우연히 자신과는 전혀 다른 롤라를 만나 공장을 일으켜 세울 아이디어를 얻는다. 무대에서 드랙퀸으로 활약하는 롤라는 무게가 많이 나가는 거구인 남자가 신어도 끄떡하지 않을 80센티미터 남성용 부츠를 아이템으로 내놓는다. 많이 찍어서 싸게 파는 보통 구두 대신, 적게 만들어 비싸게 파는 틈새시장을 공략하라는 것이다. 킹키부츠를 완성해 패션쇼에 서기로 하지만 두 남자를 가로막는 일은 하나둘이 아니다.

‘뮤지컬 킹키부츠 라이브’ 스틸이미지. (포스터 출처 = CJ ENM)

결혼 비용을 마련해야 하는 찰리와 반짝이는 옷과 화려한 치장으로 자신을 뽐내고 싶은 롤라. 두 사람의 니즈가 만나서 일이 잘 풀릴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킹키부츠 제작이란 소수자의 니즈를 수용하면서 세상의 편견을 이겨내는 사회적 활동이다. 그깟 부츠가 뭐라고 이 난리인가 싶다. 근육질 남자라도 하이힐을 신고 싶어 하는 이들이 있다는 이 단순한 소망이 상품으로 만들어져서 소비자에 가닿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 니즈가 있는 곳에 상품이 있지만, 그 작은 소망을 공개적으로 꺼내는 것 자체가 커다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없던 요란스러운 부츠를 만들고, 화려하고 높은 부츠를 신고서 춤추고 노래하는 장신의 남자들이란 세상에 듣도 보도 못하던 기이한 장면이건만 이들의 뻔뻔한 퍼포먼스가 흥겨우면서도 동시에 짠하다. 여기에 약혼자가 있는 찰리를 남몰래 짝사랑하는 공장 직원 로렌의 사랑 고백은 코믹한 가운데 애절한 활력을 불어넣는다. 여자는 사랑을 숨길 수 없어 돌직구로 들이대고, 수줍은 남자는 난생처음 높은 힐의 부츠를 신고서 세상에 맞서며, 여자 옷 입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남자가 자신의 개성을 뽐내며 세상을 향해 소리치는 모습은 우리들 각자의 마음속 부끄러움을 바깥으로 꺼낼 용기를 북돋운다.

‘뮤지컬 킹키부츠 라이브’ 스틸이미지. (포스터 출처 = CJ ENM)

뮤지컬은 여자나 게이나 좋아하는 장르라는 편견을 대놓고 건드리면서 과하게 페미닌한 의상과 메이크업으로 치장하는 것은 일종의 대안적이고도 영리한 정치적 풍자다. 남자가 하이힐을 신을 수 있고, 여자가 일과 결혼의 야망을 뽐내도 괜찮다. 금기가 허용되는 해방의 무대를 보며 신나게 웃고 박수 치면 어느덧 일상에서 이겨낼 용기가 생겨난다. 짧은 순간이지만 웃고 난 후 가지게 되는 배설의 카타르시스는 생활의 활력이 되기 때문이다.

로렌스올리비에 어워즈 남우주연상에 빛나는 웨스트엔드 오리지널 캐스트 맷 헨리가 연기하는 롤라의 폭발력 있는 퍼포먼스를 가까이에서 클로즈업으로 감상하는 귀한 기회다. 찰리와 로렌을 연기하는 킬리언 도넬리와 나탈리 맥퀸의 단단한 보컬과 익살스러운 연기도 뮤지컬을 감상하는 맛을 배가시킨다. 공연 실황 영화라서 부가적으로 더해진 웨스트엔드 극장 관객들의 현장 호응을 느끼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다.

영화관이 특별한 취향의 공동체를 위한 컨셉트 관으로 변모하는 현장을 만끽하면서 감염과 전환의 시대, 옛것과 새로운 것, 뉴노멀, 다양성의 무기 등 많은 사회적 이슈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정민아(영화평론가, 성결대 연극영화학부 교수)
영화를 통해 인간과 사회를 깊이 이해하며 
여러 지구인들과 소통하고 싶어 하는 영화 애호가입니다. 
Peace be wit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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