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커', 고레에다 히로카즈, 2022. (포스터 제공 = CJ ENM)
'브로커', 고레에다 히로카즈, 2022. (포스터 제공 = CJ ENM)

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서 송강호가 대한민국 사상 처음으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바로 그 작품 ‘브로커’가 칸영화제의 영광의 흐름을 타고 개봉한다. ‘범죄도시2’가 팬데믹으로 움츠렸던 극장을 부활시키고 있는 와중에 칸에서 호평받은 예술영화 ‘브로커’가 불러올 신선한 활기가 기대된다.

‘브로커’는 일본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했는데 왜 한국 영화일까라는 궁금증이 들 것인데, 영화는 한국 자본과 한국 배우, 한국어 대사, 한국 로케이션으로 이루어져 있다. 통상 제작 자본을 중심으로 언어, 연출, 출연, 관객 등의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영화의 국적을 따지며 ‘브로커’는 칸에서도 한국 영화로 분류되었다.

일본을 대표하는 감독인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2018년에 ‘어느 가족’으로 황금종려상, 2013년에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로 심사위원상을 받았고, 2001년에 ‘디스턴스’, 2004년에 ‘아무도 모른다’, 2015년에 ‘바닷마을 다이어리’가 경쟁부문 오르는 등, 이번 ‘브로커’까지 총 여섯 번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오른 명장이다. 고레에다는 칸에서 두 차례 본상을 받았고, ‘브로커’와 ‘아무도 모른다’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게 하는 것에서 입증되듯이 세계예술영화계가 신뢰하는 감독이다.

'브로커'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CJ ENM)
'브로커'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CJ ENM)

지난해 고레에다 감독이 한국 배우들과 작업을 시작했다는 소식은 예술영화 마니아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는데, 송강호가 칸의 남자가 되었다는 점으로 인해 이 작품은 일약 전 국민이 기대하는 영화로 떠올랐다.

고레에다 감독이 엄마가 떠나간 후 아이들끼리 생활하는 가슴 아픈 상황을 그린 ‘아무도 모른다’ 직후 구상한 새로운 이야기는 오랜 세월이 지나 한국 배우들에 의해 구현되었다. ‘브로커’는 고레에다 감독이 이전 연출작에서 보여 주었던 아이와 부모 관계, 가족을 가족이게 하는 것들에 대한 깊은 고민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다. 부서진 현대 가족 관계 안에서 표현되는 그만의 휴머니즘적 메시지는 한 가족이 사회 시스템의 사각지대에 있을 경우, 어른이 책임을 다하지 못할 때 남겨진 아이들의 선택, 핏줄과 정의 문제 등 사회 속 기초 단위인 가족 문제를 날카롭게 응시한다.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넣어 두고 간 미혼모와 아기 입양을 매매하는 이들, 그리고 브로커 일당을 현장에서 체포하려는 형사들 간의 쫓고 쫓기는 추적극이자, 부산에서 시작하여 포항, 강릉, 서울로 이어지는 여정의 로드무비다. 어느 비 오는 날 밤, 아기를 교회가 운영하는 베이비박스 앞에 두고 떠난 소영(이지은)은 잠복 중이던 여성 청소년과 형사 수진(배두나)과 이 형사(이주영)에 의해 포착된다. 아기는 베이비박스에서 일하는 보육원 출신 직원 동수(강동원)와 그의 파트너인 세탁소 사장 상현(송강호)에 의해 빼돌려진다. 허술한 도둑인 브로커 일당을 형사가 내내 주시하면서 쫓는 상황, 다음 날 아기를 다시 찾으러 온 소영이 아기를 좋은 데 입양 보내면 거금도 얻을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하여 양부모를 구하러 다니는 상황 등 두 개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브로커'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nbsp;CJ ENM)<br>
'브로커'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CJ ENM)

이들의 여정 과정에서 몰래 끼어든 보육원 아이 해진(임승수)까지 더해지면서 세탁소 봉고차에 탄 총 다섯 명의 인물들은 양부모 후보들을 만나며 하나의 단단한 대안 공동체가 되어 간다. 밑바닥 인생으로서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은 이들 각자는 유사 부녀 관계, 유사 부부 관계, 유사 부자 관계 등을 형성하며 서로서로 이야기를 들어 주다가 알게 모르게 정을 쌓아간다. 거기에 가짜 양부모 후보자를 섭외하여 브로커 일당의 현장 체포를 노리던 형사들이 상현 팀의 어수룩함에 서서히 마음을 열게 되는 과정이 펼쳐지자 영화는 팍팍한 이들이 모여서 만드는 소소한 행복으로 물이 든다.

상현을 연기하는 송강호는 그가 가진 이미지인 소박한 소시민 상을 이번에도 충실히 보여 준다. 그에게는 대범하지 못하고 쩔쩔매는 모습에서 보여지는 코믹함과 결국에는 양심을 선택하는 보통 사람의 정의로움이 엮여서 만들어 내는 이 시대의 소시민 이미지가 있다. 송강호가 가진 평범하면서도 강단 있는 얼굴과 목소리가 중심을 단단하게 세우는 가운데, ‘나의 아저씨’에서 이어지는 이지은의 세상사에 지친 삐뚤어진 미혼모 연기, 미남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인생의 아픔과 동시에 세상을 버텨 내기 위해 형성된 유들유들을함을 장착한 강동원의 연기, 생활 연기의 자연스러움을 훌륭하게 소화하는 배두나의 연기는 조화스럽고 우아하다. 이들의 하모니는 영화의 빛깔을 비오는 서늘함에서 햇살이 창문을 두드리는 따스함으로 변모시킨다.

'브로커'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nbsp;CJ ENM)<br>
'브로커'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CJ ENM)

아기의 입양 지연이 상처로 차가워진 심장들을 녹이고, 꼬마 해진의 천진난만함이 어른들의 죄를 스스로 돌아보게 만드는 등, 고레에다의 전작들처럼 이 영화도 아이들이 어른을 어른이게 한다. 공무 수행 중인 형사들도 범죄혐의자들의 아이에 대한 책임을 나누어 가지며 따뜻한 가슴을 가진 더 좋은 어른이 되어 간다.

다이내믹한 서사 진행과 직설적인 사회적 메시지로 생동감 넘치는 한국 영화나 매번 더 확장된 연기 세계로 감탄을 주었던 송강호의 연기를 기대한다면, 이 영화는 갸우뚱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고레에다 특유의, 소외와 빈곤이 야기한 사회 문제를 응시하면서 영화적 재미를 만들어 갔던 섬세하고도 묵직한 연출력에도 미치지 못한다. 따뜻하고 편안하지만 예리하거나 지적인 성찰이 있는 건 아니다. ‘어느 가족’이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뛰어넘는 작품은 아니어서, 다만 한일 간 얼어붙은 정치적 환경에서도 동아시아인이 가진 감수성의 동질감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게 된다.

송강호의 최고작도 아니고, 고레에다의 대표작도 아니지만, 최고의 위치에 있는 일본 감독이 최고의 한국 배우들과 만나서 만들어 낸 이 따뜻한 로드무비는 분명 세계영화사에 중요한 시도로서 기억될 것이다. 

'브로커'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nbsp;CJ ENM)<br>
'브로커'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CJ ENM)

정민아(영화평론가, 성결대 연극영화학부 교수)
영화를 통해 인간과 사회를 깊이 이해하며 
여러 지구인들과 소통하고 싶어 하는 영화 애호가입니다. 
Peace be wit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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