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3년차에 접어든 현재 OTT로 영화를 관람하는 것이 익숙해지면서 극장은 이전의 활황은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킹메이커’나 ‘해적: 도깨비 깃발’ 같은 고예산 영화가 극장에서 지금 상영하고 있는데 각각 50만, 92만 관객 동원 숫자를 기록 중이다. 천만 관객 영화가 매년 나왔던 팬데믹 이전 상황을 생각해 보면 지금 흥행 기록은 미미해 보일지라도 현재 상황을 고려하면 꽤 선전하고 있는 중이다.

거리두기의 일상화, 비대면 접촉의 일상화가 지속되면서 영화 관람하기는 온라인 스트리밍을 통하는 것이 보편적 생활양식이 되어 버렸다. 극장이냐 안방 스트리밍이냐의 문제만큼 달라진 인식은 영화와 시리즈 드라마의 구분이 무의미해진다는 것이다. 종래에는 TV 드라마와 영화는 제작 방식, 공급, 수용 등 시스템에서 뿐만 아니라, 서사 전개, 표현 양식, 캐릭터 재현, 표현 수위 등 내용 부문에서도 달랐다. 그러나 OTT 시대에는 영화와 드라마의 차이가 무엇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넷플릭스는 시리즈 드라마를 한꺼번에 공개하는 전략을 오래전부터 취했고, 드라마를 감상하는 방법은 매주 한 편을 기다렸다 보는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몰아보는 것이 당연해졌다. 영화는 2시간 정도의 길이라면 드라마는 12시간 정도의 긴 영화라고 봐도 딱히 문제가 없을 것이다. 세계적으로도 성공한 ‘킹덤2’, ‘오징어게임’, ‘지옥’, ‘D.P.’ 같은 시리즈가 흥행 영화감독으로서 검증된 김성훈, 황동혁, 연상호, 한준희 감독의 연출작이라는 점은 OTT가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를 한층 무너뜨리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 준다.

'지금 우리 학교는' 포스터. (이미지 출처 = 넷플릭스)

청소년 좀비와 교육 현실, 오락과 메시지의 만남

좀비물과 10대 학원물을 결합한 크리처 장르 콘텐츠 ‘지금 우리 학교는’이 지난 1월 28일에 넷플릭스에 공개되어 넷플릭스 가입국 총 91개국 중 59개국에서 1위를 달성했다. 아시아, 유럽, 남미 지역 강세가 눈에 띄는 가운데, ‘오징어게임’과 같은 신드롬을 일으킬 수 있을지 기대를 모이게 한다. 그러나 대중문화 소비의 중심지 미국에서는 아직 1위를 달성하지 못하여 이 드라마가 ‘오징어게임’의 아성을 뛰어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도 세계 1위라는 위엄, 드라마 출연 배우들의 글로벌 인지도 상승, 미국을 제외하고 장르물을 가장 잘 만드는 곳이 한국이라는 명성을 재확인하는 가운데, 그럼 왜 K-좀비는 연일 성공하는지 질문을 해 보게 된다.

‘지금 우리 학교는’의 오리지널은 주동근 작가의 웹툰이다. 시나리오는 ‘추노’의 천성일 작가, 감독은 ‘다모’와 영화 ‘완벽한 타인’의 이재규 감독과 김남수 감독이며, 고등학생으로 등장하는 배우들은 ‘벌새’의 박지후와 ‘오징어게임’의 이유미 등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 신인 연기자를 캐스팅하였다.

지역의 한 고등학교에 좀비 바이러스가 발생하고, 학교에 고립된 학생들과 이들을 구하려는 학교 밖의 어른들의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극한 상황이 펼쳐진다. 서사는 전형적인 재난물의 구조를 취하고 있다. 미국에서 발흥된 좀비물이 한국에 오면 사극(‘킹덤’), 액션(‘부산행’), 가족 코미디(‘기묘한 가족’) 등 여타 장르들과 섞이면서 새로운 비틀기와 변주가 이루어진다. 이번에는 10대 청소년 드라마와 만났다.

'지금 우리 학교는' 예고편 영상 일부. (이미지 출처 = 넷플릭스 갈무리)<br>
'지금 우리 학교는' 예고편 영상 일부. (이미지 출처 = 넷플릭스 갈무리)

한국형 좀비는 외국 좀비물과 다른 몇 가지 특징점이 있다.

먼저 로컬리즘 공간을 잘 활용한다는 점이다. 궁궐, 기차, 낡은 아파트, 주유소를 통해 한국적인 시각적 풍경 안에서 뛰어다니는 좀비라는 이국적인 그림을 만들어 내는데, ‘지금 우리 학교는’은 치열한 경쟁의 폐쇄공간인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함으로써 외국영화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공간미학을 그려낸다.

두 번째로는 빠르고 유연하게 움직이는 좀비의 운동성이다. 기존 좀비가 살아 움직이는 시체라는 개념에서 뇌가 없어 느리고 둔한 움직임이 특징인 반면, 한국 좀비는 한층 진화하여 몸이 아무렇게나 구부러지고 매우 빠르게 움직이다. K-팝 아이돌 문화가 빠르고 현란한 칼군무를 특징으로 하는 것에서 전파되어 한국 콘텐츠는 빠르고 다이내믹해야 한다는 기대감이 있다. 이를 한국 좀비영화가 잘 받아들였고, 다른 여느 나라의 좀비물에서 찾아보기 힘든 액션 디자인을 구축했다.

셋째, 사회적 메시지를 잘 결합하여 감동적인 드라마를 전개한다는 점이다. 이는 ‘기생충’과 ‘오징어게임’처럼 보편적으로 세계인에게 감동을 전한 한국 콘텐츠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징인데, 오랜 독재와 민주화 투쟁을 거치면서 한국인은 사회성, 정치성에 매우 민감하다. 이러한 자질은 대중문화에도 반영되어서 한국 콘텐츠는 오락 상업물일지언정 사회적 메시지를 중요하게 다루고, 게다가 비판정신을 엔터테인먼트화 하는 데 능력을 발한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기시감을 떠올리게 한다. 아마도 공통의 역사 기억을 가진 한국인이라면 공감할 트라우마이자 집단 무의식이라고 지칭할 수 있을 것이다. 학교폭력과 왕따에서 시작된 좀비 바이러스는 논리적 개연성을 가지고 있다. 폐쇄된 공간에 갇힌 아이들을 구하지 않는 국가는 세월호를 떠올릴 수밖에 없고, 계엄령과 국가 공권력의 과도한 억압은 광주항쟁을, 정치인이나 관료가 이 기회를 자신의 정치적 자산으로 활용하는 것은 87년 민주화 투쟁이 얼마나 많은 정치인을 배출했는지 생각해 보게 한다. 위의 것들은 공통의 문화기억으로 묶인 우리만이 읽을 수 있는 배경이지만, 이러한 어처구니 없는 상황은 인류 보편이 겪어 왔던 비극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 학교는' 예고편 영상 일부. (이미지 출처 = 넷플릭스 갈무리)
'지금 우리 학교는' 예고편 영상 일부. (이미지 출처 = 넷플릭스 갈무리)

공존과 연대의식이 주는 승리감

더하여 10대 청소년물의 장르적 요소를 가져와서 이 드라마에는 청춘 로맨스, 그리고 다양한 인간군상이 엮이는 작은 서사들이 풍부하다. 교사, 부모, 공부 잘하는 아이, 운동 잘하는 아이, 지혜로운 아이, 이기적인 아이, 잘생긴 아이, 일진, 루저들이 모인 관계의 드라마가 몰입을 유도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드라마가 주는 감동은 아직 미성숙한 존재들이 스스로 연대하여 어려움을 극복하는 성취감을 경험케 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희생하고 사라져 버리는 존재가 주는 감동은, 인간이란 위기의 순간에 더욱 선의를 발휘하고 뭉쳤다는 역사적 교훈을 잊지 않게 한다. 이 드라마에서도 홀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 자와 희생하고 배려하는 자의 운명이 어떻게 갈리는지 관찰하는 것도 흥미로운 관람 포인트다.

비슷한 장르물의 양산 속에서 한국영화의 위기론이 떠오르고 팬데믹 상황마저 고난을 가속화할 때, 한국 대중문화는 위기를 기회로 또 다른 탈출구를 향해 비상하고 있다. 외부의 시선으로 우리 자신을 바라볼 필요가 있나 싶지만, 세계가 한국 콘텐츠에 열광하는 건 사실인 것 같다. 글로벌 흥행공식을 따라야 할 필요는 없고, 딱히 그런 것도 없다. 표현의 자유를 누리며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때 세계는 우리를 주목할 것이다.

정민아(영화평론가, 성결대 연극영화학부 교수)
영화를 통해 인간과 사회를 깊이 이해하며 
여러 지구인들과 소통하고 싶어 하는 영화 애호가입니다. 
Peace be wit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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