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테벨룸', 제라드 부시, 크리스토퍼 렌즈, 2022. (포스터 제공 = (주)올스타엔터테인먼트)
'안테벨룸', 제라드 부시, 크리스토퍼 렌즈, 2022. (포스터 제공 = (주)올스타엔터테인먼트)

제목이 어렵고 익숙하지 않은 단어라 입에 붙지 않는데, ‘antebellum’은 ‘전쟁 전’을 뜻한다. 흑인 인종차별 문제를 다루는 이 영화는 아마도 ‘남북 전쟁 전’ 시기를 배경으로 삼는 것 같다. 그러나 여기서 ‘같다’라는 불확실한 단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그 공간적 배경이 딱히 그렇지도 않다는 점 때문이다.

이 영화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필자는 난감한 상황에 빠졌는데, 독자들이 아무런 정보 없이 극장으로 가야 영화가 줄 수 있는 폭발력을 최대한 만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전 배경도 모르고 영화를 선택할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기본 지식을 전달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스포일러로 가득한 상징과 은유를 언급해야 하는 입장이라 큰 딜레마다.

이런 위험성을 각오하고, ‘안테벨룸’을 이달의 영화로 소개하는 데는 의도가 있다. 영화의 정치적 메시지가 스릴러 구조에 놀라울 정도로 맞아떨어지고, 그것도 현재 진행형의 큰 사회적 문제가 상업적 오락의 장르 문법에 잘 스며 있기 때문이다. 플롯 정점에서는 해방감과 안도감의 카타르시스로 인해 도대체 개선점이 보이지 않는 현재 사회 문제를 어떻게건 극복해 보리라는 힘을 준다.

'안테벨룸'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주)올스타엔터테인먼트)
'안테벨룸'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주)올스타엔터테인먼트)

윌리엄 포크너의 잠언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과거는 절대 죽지 않는다. 심지어 지나간 것도 아니다.” 이는 영화 전체를 압축적으로 나타내는 메시지다. 지난 몇 년간 미국 내에서는 ‘블랙 라이브즈 매터’ 운동이 펼쳐졌고, 인종 문제는 여전히 미국 사회뿐만 아니라 전 지구적으로 핵심적인 문제다.

목화밭에서 흑인 노예들은 서로 대화를 나눠서는 안 된다. 백인 농장 관리인은 채찍을 들고 걸핏하면 이들을 두들겨 팬다. 이 풍경은 ‘뿌리’에서부터 익숙하게 봐 왔던 그림이다. 그러던 와중에 농장에서 탈출하려던 커플이 결국은 잡혀 와서 잔인하게 고문을 당한다. 그런데 이상한 장면이 펼쳐진다. 일군의 흑인 여성 노예들이 쇠사슬에 묶여 농장으로 들어오는데, 이들은 자신이 왜 노예가 되었는지, 이 상황을 도대체 알 수 없어 한다.

주인공 ‘이든’(지넬 모네 분)은 고분고분하게 농장일을 하면서 언젠가는 탈출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그런 그녀를 주변 노예들은 리더로 생각하며 따르는 듯이 보인다. 여기까지가 1부에 해당한다. 그리고 영화는 아침 모닝콜 벨소리와 함께 갑작스럽게 장면 전환한다.

'안테벨룸'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nbsp;(주)올스타엔터테인먼트)<br>
'안테벨룸'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주)올스타엔터테인먼트)

이제 전혀 다른 배경이 펼쳐지는데, 영화의 2부에 해당한다. 성공한 변호사이자 흑인 여성을 대변하는 페미니스트 작가 ‘베로니카’는 행복한 상류층 가정을 꾸리고 있다. 요가로 몸을 단련하고, 방송에 패널로 등장하여 인종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사랑이 넘치는 부부생활을 하고 있으며, 가끔 여자친구들과 왁자지껄한 파티도 즐긴다. 그런데 문제는 이든과 베로니카가 동일 인물이라는 것이다. 1부와 2부는 겹쳐지고 시제는 불분명해진다.

미국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에는 남북전쟁 중 남군의 영웅이었던 에드워드 리 장군의 대형 기마상이 있었는데, 이 기마상 철거운동이 수십 년간 있어 왔다. 그러다 마침내 2021년 9월에 동상이 철거되었다. 그러자 백인우월주의자들이 이에 저항하는 폭력집회를 주도했고, 이 사건은 극심한 흑백 갈등의 한 원인이 되었다. 이 동상이 영화의 중요한 순간에 나오고, 현재까지 이어지는 흑백 갈등의 한 상징으로 활용된다. 과거는 절대 죽지 않기 때문이다.

'안테벨룸'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주)올스타엔터테인먼트)<br>
'안테벨룸'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주)올스타엔터테인먼트)

영화는 과거와 현재의 시간적 크로스오버를 플롯 구조의 근간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공간적 크로스오버를 활용하여 전환을 꾀하는 독특한 아이디어로 이루어져 있다. 주인공이 꿈을 꾸고, 잠에서 깨어나면서 미스터리는 증폭되며 긴장감을 끌어 올린다. 그녀는 이든일까, 아님 베로니카일까. 호텔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백인 소녀가 인형 목에 줄을 매달아 줄줄 끌고 가는 기이한 장면은 꿈이 아니라 현실인데, 이 또한 매우 상징적으로 활용된다.

과거 역사를 현재에 소환하여 대중적 스토리텔링으로 전파하는 것은 매우 강력한 역사 교육 방법이다. 매끄럽지 못한 연출과 개연성을 꼼꼼히 따질 때 다소 어색한 부분, 강력하고 직설적인 정치적 메시지로 인한 부담 등의 문제가 있지만, 그런 단점에도 이 영화는 충분히 가치 있는 훌륭한 상업적 정치 텍스트다. 

정민아(영화평론가, 성결대 연극영화학부 교수)
영화를 통해 인간과 사회를 깊이 이해하며 
여러 지구인들과 소통하고 싶어 하는 영화 애호가입니다. 
Peace be wit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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