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공동기획 4]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이정하, 조아라 활동가

<가톨릭평론>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는 공동기획으로 노동, 빈곤, 인권 현장의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코로나19의 그늘,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것들’을 짚어 본다. 네 번째로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이정하, 조아라 활동가를 만나 봤다.

 

“당신이라면 시설에서 살겠냐고 물으면 다들 아니라고 답해요. 그러면서도 가난하고 장애가 있으면 시설에 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요, 왜일까요?” 

탈시설에 대한 물음에 조아라 활동가가 던진 반문이다.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이하 발바닥행동)은 15년 전 한국에서 처음으로 장애인 탈시설 운동을 시작했다. 장애인의 시설 밖 자립생활 운동은 물론 ‘형제복지원’, ‘선감학원’ 등 과거 수용시설 사건의 진상규명, 탈시설을 위한 입법, 정책연구, 모니터링 활동도 한다.

이정하 씨는 장애인복지와 사회복지 관련 활동을 하다가 4월부터 발바닥행동에 합류했고, 조아라 씨는 7년 차 활동가다.

장애인들이 시설에 갇혀 사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다른 이들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크게 울리고 있지만, 여전히 탈시설은 멀어 보이고, 코로나19는 이들을 더욱 시설 안으로 고립시켰다.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조아라 활동가. ⓒ김수나 기자

'탈시설'이 무엇인지 묻자 조아라 씨는 탈시설을 이해하려면 '시설'이 무엇인지, 시설의 구조나 시설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조아라 : 가장 간단하게 탈시설이란 지금 시설에 있는 사람은 나오고 더는 들어가지 않는 거에요. 지원도 지금처럼 집단 시설에 하지 않고, 당사자에게 하고요. 또 개성과 자기 삶에 대한 통제권을 시설 운영자가 아닌 사회 구성원으로서 개별적으로 갖고, 이러한 자립 과정이 지역사회 안에서 이뤄져야 해요. 보통 시설의 인권침해 때문에 탈시설 해야 한다고도 하는데, 저희가 말하는 탈시설은 시설의 인권침해 여부와 관계없이 아무도 시설에서 살 이유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시설 거주 장애인, 사회와 격리되다”
시설 문제, “언젠가는 나의 상황”

코로나19는 시설에 사는 장애인에게 전면적 재난이 됐다. 바로 코호트(이하 동일집단) 격리 때문이다. 올해 초 감염을 막기 위해 시작된 동일집단 격리는 의료적 필요를 넘어 시설에 사는 이들의 사회적 교류까지 막았다. 

조아라 씨는 코로나19가 길어지면서 지역사회 공공시설은 여러 논의 속에서 방역수칙을 바꿔 가며 점차 문을 열었지만, 장애인 거주시설은 여전히 봉쇄정책을 유지한다고 지적했다.

조아라 : 코로나19로 시설 집단감염과 사망자가 생기자 우리 사회는 코호트 격리를 바로 선택했어요. 적절한 의료 조치와 방역수칙을 논의하지도 않고 너무 쉽게 조치했죠. 문제는 인권, 장애 단체 말고는 코호트 격리가 왜 문제인지 사실상 아무도 인지하지 못했다는 거에요. 시설에서 평생을 배제당한 이들이 감염병에 대한 사회의 공동 대응에서도 후 순위로 밀려났고, 시설 거주자에 대한 사회의 감수성이 얼마나 낮은지 드러났죠.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이정하 활동가. ⓒ김수나 기자

‘코로나 일상’ 시대, 장애인 시설을 언제까지 격리할 것인가, 조아라 씨는 묻지만 전망이 밝지 않다. 그는 장애인 거주시설이나 요양병원은 외부인 출입을 끝까지 통제할 것으로 내다봤다. 활동가들이 보건복지부에 질의한 결과는 “다른 데는 점차 열지라도 시설은 맨 마지막”이었다.

이정하 : 시설에 대해 우리가 외면하거나 잘 모른다고 인식할 뿐이에요. 지금 시설에서 계속 사람이 죽고 있는데, 다들 언젠가 우리 부모님 또는 내가 그 상황일 것이란 생각을 한 번쯤은 해 볼 거에요. 코로나가 몸만 해치지 않고, 사회의 약한 부분을 무너뜨리면서 경고하고 우리가 미리 경험하게 한다는 것을 나중에라도 알게 될 것 같아요.

코로나19 집단감염의 근본 원인은 시설 그 자체

코로나19 감염 상황이 길어지면서 시설 가운데는 방역수칙을 지키면서 최소한의 외출을 허용하는 곳이 더러 있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지난 10월 중증장애인 요양시설인 경기도 라파엘의 집 등에서 집단감염이 생기면서 멈췄다. 세상은 감염자 수만 언급할 뿐, 집단감염이 일어나는 근본 구조와 동일집단 격리로 인해 탈시설의 기회가 막혔다는 점은 지나친다.

조아라 : 우리는 올해 초 청도 대남병원에서 집단감염이 일어나는 구조를 이미 확인했어요. 시설 건물에 개인 공간 없어 감염을 막을 최소한의 구조가 없는 것이죠. 이 점은 언론에서도 다뤄서 이제 잘 알려졌어요. 그런데 장애계는 건물의 물리적 조건뿐 아니라 평균 입소 기간, 시설의 일상생활이 시설 밖과 매우 다른 점, 시설 내 건강 불평등 문제도 주목해요. 시설에서 계속 살 수밖에 없는 상황 그 자체가 건강, 사회관계, 의료체계 등 모든 것에서 시설 거주자가 배제당하는 결과를 낳았어요. 이것이 집단감염의 근본 구조입니다.

이에 더해 조아라 씨는 코로나19로 그간 이뤄져 왔던 탈시설 논의와 시도가 중단됐다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전 세계적 감염병 상황에서 외국은 ‘긴급 탈시설’이 논의되고 있지만 한국은 오히려 시설문을 계속 닫으며 시설을 외부와 차단하고 있다.

이정하 씨는 그간 한국에서 진행된 긴급 탈시설은 주로 시설의 심각한 인권 학대 때문이었는데, 그마저도 막혔다고 진단했다. 감염병 상황에서는 시설 밖 자가격리가 어렵고 탈시설은 더 어렵다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생각 자체를 깨야 한다”고 본다.

이정하 : 지금 시설에서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어요. 장애인 시설의 확진자, 사망자, 의료적 지원 현황과 그에 대한 논의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깜깜해요. 이제 언론에도 확진자 수만 나오지 시설 이름은 잘 안 나와요. 시설에 사는 이들을 집단으로 묶어 사물화해 버리지 않고, 시설 안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해요. 목소리를 듣는 과정 자체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에요.

지난 10월 말, 탈시설 당사자가 장애인 거주시설 완전 폐지, 시설 장애인 전원 탈시설 지원을 골자로 하는 장애인탈시설지원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 제공 =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외부 활동, 인권 모니터 등 전면 중단.... “시설 내부 상황 알 수 없다”
코로나 장기화, “장애인 외부 활동 지원해야”

코로나19로 시설에 대한 인권상황 모니터도 중단됐다. 방역지침으로 인권 모니터를 시설의 자율로 맡기면서 시설 안과 밖을 연결했던 최소한의 접점이 사라졌다. 당사자의 생각을 듣고 외출을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멈췄다. 이는 시설 생활자들이 자립을 준비하는 과정이자 세상을 공유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두 활동가는 “그 안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알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외부 활동 전면 중단으로 장애 당사자는 물론 부모나 시설 종사자들도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는다. 발바닥 활동가들은 요양병원 등에서 향정신성 약물 사용이 늘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시설은 어떤지 의혹이 짙어진다.

조아라 : 코로나 뒤로 노인 요양병원에서 향정신성 약물 복용 강도가 높아졌다는 보도가 있었어요. 시설 생활자들을 약물로 통제하는 방식이죠. 저희는 드러나지 않을 뿐 장애인 시설도 같은 상황이라고 봐요. 외부 차단으로 구성원에 대한 시설의 통제는 더 촘촘해졌어요. 잠깐의 산책이나 외출도 다 막혔는데, 시설 안 사람들의 스트레스는 누가 어떻게 감당하고 있을까요?

이들은 외부 차단이 더 지속되면 안 된다고 본다. 우리가 언제든 감염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방역수칙을 지키며 일상생활을 하는 것처럼 시설 안 장애인도 가둬 두지만 말고, 그에 맞는 방역지침을 마련해 바깥 활동을 하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아라 : 코로나가 예측할 수 없이 길어지는 만큼 장애인을 위한 방역수칙을 만들고 외출을 시도해야 해요. 우리는 이제 당연하게 마스크를 쓰는데, 과연 시설 안 장애인들은 마스크 쓰는 게 익숙할까요? 실제로 마스크도 써 보고 외출도 경험해야 해요.

더불어 코로나19로 집단 시설의 취약함이 분명히 드러난 만큼 탈시설 관련 정책, 법률 정비도 시급하다. 먼저 이들은 ‘탈시설 로드맵’을 구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탈시설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 42번이었지만 지금까지 어떤 기관에서 몇 명을 목표로 얼마를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 등 추진된 것이 없다.

이정하 : 탈시설 로드맵 없이 기조만 있어요. 대통령이 약속했지만 사실상 그것을 이행하기 위한 실질적 체계는 만들지 않고 기존의 시설중심 구조로만 가려고 해요. 탈시설에 대한 정확한 개념은 물론 그에 대한 가치도 없어서인 것 같아요. 탈시설은 유행이나 단지 패러다임의 전환이 아니에요. 코로나로 문명이 바뀌고 우리 삶의 방식을 새롭게 선택해야 하는 시점이기 때문에 정말 달라져야 해요. 기존 방식에 대한 철저한 반성, 사고 전환 없이는 안 됩니다.

발바닥행동에 따르면 장애인 거주시설 1100여 개에 장애인 약 3만여 명이 산다. 이 가운데 68퍼센트가 비자발적 입소이며, 입소기간이 10년 이상인 이들이 58퍼센트에 달한다. 3만여 명 가운데 30인 이상 대형 시설에 사는 인원은 1만 9000명으로 절반을 크게 웃돈다. 

조아라 씨는 집단 거주시설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집단감염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설에서 수십 년 살다 2019년 12월 2일 시설에서 나온 장애 당사자들이 다음 날 세계 장애인의 날을 맞아 국회 앞에서 UN장애인권리협약 제19조 이행을 촉구했다. (사진 제공 =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사랑, 배려, 도움 이전에 차별하지 않기부터”
“일상에서 장애인과 어떻게 함께 살지 상상하는 것이 탈시설”

지난여름 대구의 한 아파트에 집값이 떨어지니 장애인을 내쫓자는 벽보가 붙었고, 휠체어가 들어가지 못하게 공동주택 입구에 차를 대 놓는 일도 벌어졌다. ‘차별하지 말라’는 여전히 선언에 그치고 일상에서 차별은 계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탈시설 장애인이 동네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조아라 : 사랑, 배려, 도움 이전에 먼저 차별하지 않아야 해요. 이웃으로 사는 장애인이 늘고 이 시간들이 쌓인다면 결국 변화할 거에요. 이를테면 아직도 비혼 여성을 바라보는 부정적 시선이 있지만 그래도 한쪽에서는 그럴 수 있지라며 인정하는 것처럼요. 또 지역의 공동체성이 사라지고 1인 가구가 늘고 있으니 지역사회의 도움이 필요한 장애인들은 동네에서 살 수 없다는 생각을 버리고 이웃에 장애인 거주자가 계속 늘어나게 두는 것도 필요해요.

의사 표현이 어려운 발달장애인이나 중복 장애인은 시설을 나가면 살 수 없다고들 하는데, 매우 오만한 생각이에요. 이는 결국 문제를 개인의 능력으로 돌려 버리는 것이에요. 오히려 지원자들의 무능, 사회의 무능임을 인정해야 해요. 그 오만함을 버리지 않으면 어떤 시도도 할 수도 없고 시도하지 않으면 바뀌지 않아요.

이정하 : 지역사회 공동체로서 가톨릭도 성당, 그 안에 소공동체, 지역아동센터 같은 여러 시설을 많이 운영하는데 각각 단위에서 장애 당사자와 같이 살아가는 방법을 상상해야 해요. 그게 탈시설이라고 생각해요. 가깝게는 성당 다니는 분이나 시설에서 나와 동네에 사는 분도 있을 거에요. 어떻게 함께할지 상상하고, 어떻게 실현할지 고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들은 “지금이 기로”라고 했다. 코로나19 집단감염을 겪으며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이 확실해졌고 그렇다면 이제 “당사자의 목소리를 가장 앞에 두고” 시도하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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