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신연, 여주 성당 ‘함께 길벗’ 나종천 회장과 대화 마련
시각, 청각 장애인 본당은 장애인 별도 분리하는 것

19일 우리신학연구소가 정기 온라인 세미나에 초대한 나종천 씨(여주 성당 장애인사도직 단체 ‘함께 길벗’ 회장)는 교회가 장애인과 함께하기 위해 본당에서 일상적 장애인 사목이 이뤄져야 한다며, 이를 위한 방안을 이야기했다. 

4월 20일 오늘은 장애인의 날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0년 말 기준 장애인은 263만여 명으로 전체 인구의 5.1퍼센트다. 2010년부터 전체 인구 대비 5퍼센트를 유지하고 있으며, 특히 65살 이상 노년층 장애인 수는 지속해서 늘고 있다.

12살에 실명해 60년 가까이 시각장애인으로 살아온 나종천 씨는 1979년 설립한 가톨릭맹인선교회라는 장애인 당사자 단체에서 활동해 왔다. 그러다 2010년 경기도 여주 농촌 마을로 이사했을 당시 “마을에 장애인이 의외로 많아 놀랐고, 지역 성당에 장애인 신자가 생각보다 적어 또 놀랐다”고 한다.

그는 40여 년간 참여한 전국 교구 차원의 장애인 사목 활동의 성과가 지역 본당에까지 미치지 못했음을 깨닫고, 교구 중심이 아니라 지역 본당 중심으로 장애인 사목의 초점을 전환해야겠다고 느꼈다.

나종천 씨는 “천주교는 교계 제도상 속지주의에 입각한 본당 운영이 일반적 원칙인데도, 시각 장애인과 청각 장애인을 위한 별도의 본당이 생기는 것은 장애인과 구별, 분리하는 접근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역 본당에 장애인이 통합돼 지역 사회의 일원으로 지내야 한다는 철학”으로 여주 성당에 장애인사도직 단체 ‘함께 길벗’을 구성했다.

“일선 본당은 관할지역에 이미 상당수 있는 장애인과 그 가족에 대한 사목을 교구나 수도회 등이 운영하는 별도의 기관이 수행하는 특수 사목의 영역으로 치부한 채 손 놓을 것이 아니고 그 지역을 관할하는 본당이 마땅히 수행해야 하는 일반 사목의 한 영역으로 인식하고 포섭해야 하는 시대적 과제를 안고 있다.”

여주 성당 장애인사도직 단체 ‘함께 길벗’ 나종천 회장. ⓒ정현진 기자<br>
여주 성당 장애인사도직 단체 ‘함께 길벗’ 나종천 회장. ⓒ정현진 기자

그가 알아본 바에 따르면 농아선교회를 제외하고, 장애인사도직 단체가 있는 본당은 전국 교구에서 5곳에 불과하다. 그는 본당에서 장애인사목이 제대로 시도되지 못하는 이유로 다음의 5가지를 들었다.

첫째, 주임사제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본당사목 운영 시스템에서, 사목자가 대체로 장애인에 관한 이해나 경험이 부족하고, 장애인 사목에 대한 교육이나 프로그램을 접할 기회가 없다. 그러다 보니 장애인 사목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혹시나 의지가 있어도 방법을 몰라 시도하지 못한다.

둘째, 본당에 대체로 장애인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지 않으며, 셋째는 일반 신자들이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의식 부족으로 장애인을 본당의 구성원으로 초대하는 데 적극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넷째는 본당에서 사회복지 사목을 부차적 임무로 이해하고 있어 이를 위한 전문요원이나 기구를 설치할 의사가 없다.

다섯째, 장애인이 자신이 속한 지역 교회에서 그 공동체 일원이 되어 동등하게 신앙생활을 할 권리를 기본적 권리로 주장하고 이를 관철하려는 의식이 없거나 그런 의식이 있어도 교회의 권위 앞에 스스로 요구 수준을 제한했다.

그는 장애인이 정부나 공공기관에 장애인 인권을 헌법적 권리라고 요구하며 정치, 사회적 투쟁을 전개해 오늘과 같은 장애인 복지 수준을 확보했는데, 그에 비해 교회를 향해서는 이같이 투쟁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애인이 소외되는 교회의 장애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을 끌어내지 못했고, 이를 시정하도록 교회의 각성과 개선 노력을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나종천 씨는 본당에서 장애인사목을 하기 위한 방안으로 “장애인과 그 가족, 그리고 관심 있는 신자가 동등한 자격 주체로 참여하는 장애인사도직 단체 결성”을 제안했다.

그가 있는 여주 성당은 2011년 겨울, 회원 6명으로 ‘함께 길벗’을 만들었고, 본당 주보와 소공동체를 통해 홍보하고 프로그램을 열자 이후 20여 명이 정기적으로 회합하고 친목, 문화행사 등을 함께한다.

‘함께 길벗’의 운영 원칙은 장애인이 지역사회와 교회 공동체에 통합하는 것이다.

그는 “본당에서 장애인 통합 사목의 실현은 교회 공동체에 대한 장애인의 기본적 권리”라며, “세례를 받은 장애인은 이미 그 자신이 교회의 일원이므로 누구보다 앞서 동료 장애인에 대한 사도적 의무를 지닌다”고 말했다.

이어 “기존 본당은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나 장애인을 수용하는 구성원의 태도가 기대에 못 미칠 가능성이 크지만, 선구자적 사명감으로 불편을 수용하고 감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예를 들어 성전에 들어갈 수 없다면, 우선 들어갈 수 있는 공간에 모니터를 설치해 영상으로 미사를 참례하는 한이 있더라도 본당의 일원으로 떳떳하게 활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지속적으로 모습을 보여야 본당 구성원의 관심과 이해의 폭이 점차 넓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코로나19로 공동체 미사 참여가 제한되었을 때, 미사 중계 방송에서 수어 통역을 제공했다. (이미지 출처 = 천주교 수원교구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br>
코로나19로 공동체 미사 참여가 제한되었을 때, 미사 중계 방송에서 수어 통역을 제공했다. (이미지 출처 = 천주교 수원교구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이어서 김미송 씨가 의정부교구 백석동 성당 농아선교회 사례를 설명했다. 서울 수유리 성당까지 가서 미사를 참례해야 했던 일산의 청각 장애인 신자들은 2000년 1월부터 일산 백석동 성당에서 수어 미사를 봉헌할 수 있게 됐다. 처음에는 수유리 성당에서 수어 통역사가 백석동 성당에 와서 통역을 하다가 본당에 수어반을 만들어 통역사를 양성했다. 수어 통역사의 자리도 2층 성가대 옆에서 점차 제대 가까운 곳으로 옮겨졌다.

주임사제가 수어 통역사 때문에 미사에 집중할 수 없어 불편하다는 신자를 설득하는 일도 있었지만, 지금은 백석동 신자들에게 수어 미사가 자연스럽다. 김미송 씨는 “코로나로 인원 제한 때문에 청소년 미사에 참여하다가 최근 다시 교중미사로 돌아왔을 때, 이제야 농아선교회까지 같이 미사를 하니까 완성된 미사를 보는 것 같다는 말을 듣고 기뻤다”고 말했다.

그는 “장애인과 함께하는 것은 스며드는 것”이라며, 이렇게 스며들기까지 농아선교회는 사회사목분과에 정식으로 소속돼 지원을 받아 사순피정, 봉사, 여름캠프, 성지순례 등 매년 원활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발씻김 예식이나 전례에 참여할 기회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만약 우리가 수어를 하면 그분들은 장애인이 아니다. 멀리 있다고 생각하고, 어렵게 느껴서 두려움이 있는데, 지내다 보면 어려움이 없다”고 강조했다.

장애인과 함께하기 위해 교회가 노력할 점에 관해 그는 성당에서 참고할 매뉴얼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른 본당으로 캠프를 가면 미안해 하며 수어 통역을 해도 되냐고 부탁하는데, 제대 옆에서 통역할 때도 있지만 불편한 뒷자리에서 통역하기도 한다. 청각 장애인 입장에선 다른 신자들에게 폐가 될까 봐 필요한 자리에서 수어 통역을 요구하지 못할 때가 있다. 뿐만 아니라 지체 장애인이 오면 어떻게 안내할지, 엘리베이터가 없으면 어떻게 할지 등 본당에서 장애인을 위해 지켜야 할 매뉴얼이 있으면 도움이 될 것이다.

이날 온라인 세미나에 참석한 이구원 씨(인권연대 ‘숨’ 장애인 인권 활동가)는 장애인사목이 사제들의 선한 의지에 의존하고 있으며, 아직 교회가 제도 개선을 통해 장애인과 함께 사는 환경을 만드는 것에 소극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교구와 본당에 인권과 맞닿아 있는 사회교리 교육이 필요하고, 이런 세미나나 교회에 애정이 있으면서도 문제의식이 있는 사람들이 계속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우리신학연구소는 올해 상반기 차별과 혐오를 주제로 매달 정기 세미나를 열고 있다. 다음 세미나는 5월 31일 성소수자를 주제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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