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하 유엔 주거권 특보, 한국 주거권 실태 발표

“한국은 주거권은 곧 총체적 인권의 문제라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한국의 취약계층 주거권과 관련된 차별금지권 보장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방한한 레일라니 파르하 유엔 특보가 23일, 9일에 걸친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관련 시민사회단체와 의견을 나눴다.

‘적정주거권의 요소인 적정주거 및 이와 관련된 차별금지권에 대한 특별보고관’ 레일라니 파르하는 5월 14일 정부 초청으로 방한해 관련 정부 기관을 비롯해 서울과 부산시 재건축 지역의 강제퇴거 위기 주민, 홈리스, 이주노동자 등을 만났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파르하 유엔특보의 방문과 조사결과 발표로 주거권 보장을 위해 싸울 수 있는 언어와 근거를 얻었다”며, “내년 2월 즈음 나올 이번 방한 최종보고서 자체는 의미가 없지만, 이 보고서로 무엇을 하느냐가 관건”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이날 파르하 유엔특보는 “주거권과 관련한 헌법 등 법적 조항을 적극 적용하기 위해 각계가 다양한 측면의 활동을 해야 하며, 아래로부터의 압박이 필요하다”며, 방법의 하나로 “전략적 소송”을 제안했다.

그는 “주거권 보장을 위해 개개인의 불만 제기가 아니라 보장받지 못하는 이들이 집단 소송을 통해 법적으로 이의 제기를 할 수 있다”며, 예를 들면 공동임대주택 공급 방식이 저소득층에 불리한 조건이라면, 사회 구조적으로 저소득층이 주거권을 침해당하고 있으며 이를 보장받기 위한 집단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파르하 유엔특보는 토론회에서 “어떤 면에서는 한국이 주거권 확대에 진전된 측면이 있다고 본다. 정부가 주거권 정책에서 인권 차원의 접근을 하고 있으며, 재개발의 패러다임을 환경개선으로 바꾸는 등 진전의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긍정적 평가를 하면서도, “그러나 여전히 주거권 관련법은 현실에 적용되고 있지 않다”고 평가했다.

그는 “창문과 화장실, 부엌이 없고, 언제든 쫓겨날 수 있는 공간에 사는 이들이 많다. 정부가 주거권을 보장하려면 ‘인권’을 총체적으로 이해해야 하지만 아직도 일부는 그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2015년 개정된 ‘주거기본법’과 서울시의 ‘인권거버넌스’ 등 긍정적 요소를 들면서도, “주거정책과 많은 프로그램이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그 약속을 효과적으로 달성할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이와 관련해 인권기반 국가주거전략을 수립하라”고 권고했다.

레일라니 파르하 주거권 유엔특보(오른쪽에서 두 번째)는 23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한국 주거권 실태 조사 결과에 대해 토론했다. ⓒ정현진 기자

"한국의 주거 정책, 국제법상 기준에 맞지 않다"

먼저 노숙인과 관련, 노숙인복지법과 국제인권법상 노숙인은 거리나 시설에서 생활하는 이들뿐 아니라, 비닐하우스, 움막, 쪽방, 고시원, 컨테이너 등 안정적이지 못한 임시 거주지에 사는 이들도 포함된다며, 노숙인과 관련, 노숙인의 정의가 상당히 협소하게 적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그는 “지속가능발전 목표에 따라 2030년까지 (노숙인복지법에 따른)노숙인 발생을 예방, 해결, 종식하기 위한 전략 수립”을 요청하고, “일정한 주소가 없는 모든 사람에게 최저생계비와 주택급여를 제공할 것과 노숙인에 대한 차별, 폭력을 방지하고 사설경비원들이 노숙인을 대하는 방식이 지역사회 경찰방식에 부합하도록 하라”고 정부에 권고했다.

또 취약계층과 관련, 특히 청소년성소수자 문제를 강조했다.

그는 부모와 친척, 지역사회로부터 차별과 학대를 견디지 못한 많은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집을 떠날 수밖에 없으며, 민간임대시장도 이들을 거부하고 있고 성소수자 동거인에게 거주권을 보장하지 않는 실정이라며, “인권보호와 사회보장급여에서 성소수자를 제외하는 것은 대한민국이 국제인권법상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즉각 시정해야 한다”고 했다.

이주노동자를 비롯한 이주자 거주권과 관련해서도, “한국 정부는 ‘국제이주노동자권리협약’의 비준을 고려해야 하며,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주택급여, 공공주택, 기본생계지원에서 일반적으로 제외하는 것은 ‘경제, 사회,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 제2조 2항을 위반한 것으로 보이므로 최대한 빨리 종식되어야 한다”고 요청했다.

장애인 주거에 대해서도, 현재 한국에는 3만 명 이상의 장애인이 시설에 거주하고 7만 8000명 이상의 정신장애인이 병원에 수용되어 있지만 국가 차원의 탈시설화 계획이 없다고 지적하고, “장애인들이 가족과 함께 살거나 지역사회에서 독립적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장애인에 대한 적정주거 및 사회적 지원을 제공하라”고 촉구했다.

파르하 유엔특보는 한국의 도시 재개발 및 재건축 방식, 거주의 안정성 보장, 부동산 시장 투자자들의 인권에 대한 주의 의무 이행에 대해서, “현행 법과 정책은 ‘개발 기반 퇴거 및 이주에 관한 기본 원칙과 지침’ 등 국제 기준과 지침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고, 개정을 요청했다.

특히 “부담가능한 주택의 부족”은 청년, 고령자, 미혼가구, 장애인 등 최저소득계층의 적정주거에 상당한 장애물로, 저소득층 가구(하위 20퍼센트)는 소득의 50퍼센트를 임대료에 쓰고 있다며, “정부는 평균임대료에 상응하고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수준으로 주거급여를 인상하는 것을 고려해야 하며, 불안정한 주거 상황에 놓인 주민들과 협의해 적절한 장기주택을 제공하라”고 요청했다.

또 그는 현재 2년 단위의 임대차계약 등 불안정한 거주 조건과 관련, “세입자들에게 임대차계약 갱신권을 보장하고, 임대료 상한제를 도입할 것과 다주택 소유자들의 임대사업자등록을 의무화할 것”을 권고했다. 이와 함께 부동산 시장 투자자의 인권에 대한 주의 의무 실행을 위해, “투자 포트폴리오에 인권에 대한 주의 의무를 이행하고 이를 투자 지침에 통합할 것, 부동산 투자가 적정주거권에 미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에 대한 평가도 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파르하 유엔특보의 방한 최종보고서는 2019년 3월 제네바에서 열리는 제40차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발표된다.

5월 15일, 건물이 철거된 서울 마포구 아현동 재건축 지역을 둘러보는 레일라니 파르하 주거권 유엔특보. (사진 제공 =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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