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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이 금인 스리랑카 교회식민지 교회 관행 유지, 예식주의 지배

(레이드 셸튼 페르난도)

스리랑카는 아름답고 자원이 풍부하지만 사막이나 화산은 하나도 없다. 이 섬은 원래 숲으로 뒤덮여 있었으나 인간이 이 선물을 오용하면서 홍수와 산사태에 시달리고 있다.

유럽 식민주의자들이 자연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아무런 대책 없이 수없이 많은 차 플랜테이션 농장을 만들고 고무나무를 심으면서 생태적 균형이 크게 무너져 환경과 산림이 파괴되기 시작했다.

외국인들이 들어오기 전에는 생태적 균형이 이뤄진 가운데 생명의 전체 시스템에 조화가 있었다. 외국 정복자들은 이곳의 동물계와 식물계를 파괴하며 오직 부를 쌓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다.

스리랑카인들이 이룬 역사적 성취들을 담은 기록들을 읽어 보면, 이들이 이뤘던 진보를 외세와 비교할 수 있다. 과거 스리랑카인들은 아무런 외세 개입 없이 더 높은 기술을 성취했다.

수백 년 전에 건설된 관개 수로들은 이 점을 증명하는 기념물로 남아 있다. 그 지나간 시대의 기술자들은 어떻게 해서 낮은 지역의 물을 높은 곳으로 간단히 올릴 수 있었을까?

플랜테이션은 마구잡이로 도입되었고 농업에 바탕을 둔 지역문화를 파괴했다. 지하수와 빗물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우리의 진보했던 과거 조상들은 잘 관리했지만 외국인들은 그럴 능력이 없었다.

이러한 경제 귀족들과 더불어 그리스도교도 이 섬에 들어왔지만, 이들의 종교는 스리랑카인들의 입맛에 맞지 않았다. 예를 들어, 스리랑카의 성인인 조셉 바즈는 (그리스도교의) 현지어화를 시작했고, 17세기와 18세기에 자코메 곤살베스 신부가 토착화 운동을 했다.

이 섬이 얻은 긍정적 요소들도 있지만, 침입자들이 이 섬의 원래 문화적 유산을 더럽혔기 때문에 스리랑카의 발전과 민중에 해를 입힌 부정적 요소들이 많았다.

스리랑카는 1948년에 독립했지만, 외세 통치자들의 지배를 거치면서 그들의 가치관이 현지 주민들의 의식구조 속에 침투했다. 독립한 뒤로, 우리의 정치 경제 당국은 과거의 식민주의 체제를 최선으로 보고 그대로 따랐다.

불행히도, 정치적 자유를 얻은 지 72년이 지났음에도 이는 스리랑카의 발전과 번영에는 기여하지 못했다. 외세가 지배하던 마지막 시기에 스리랑카는 아시아에서 경제적으로 10위권 안에 있었지만, 지금은 38위로 떨어졌다.

이러한 처지가 된 데에는 여러 원인을 들 수 있다. 부패, 범죄, 국가 자금과 재산의 사취, 이기심, 배임, 산림파괴. 이 나라를 경제적으로 발전시킬 국내 기업이나 사업도 전혀 없었다.

서로 연결돼 있던 종교들과 문화의 관계는 경시되었고, 그에 따라 행복하던 스리랑카 섬의 기풍이 더욱 손상됐다. 다수 대중의 종교(역자 주- 불교)와 그 사랑(Maithree)의 가르침은 사회생활의 모든 측면에서 탐욕에 길을 내주고 길가로 비켜앉은 듯하다.

많은 종교가 각자의 예배 시설들을 지어 왔음에도 다수 대중은 아주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이 되었다. 예식주의(Ritualism)가 종교, 사회생활의 모든 측면을 지배하는 듯하다.

9월 14일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 인근에 있는 보럴스가무와 호 위에 앉아 있다. (사진 출처 = UCANEWS)

가톨릭교회의 역할

스리랑카의 첫 그리스도인들은 인도와 중동에서 온 이들이다. 이들은 사도 토마스로부터 비롯하는 (동방 전례) 그리스도인들과 네스토리우스파 교인들이었는데, 수가 적었고 스리랑카의 문화에 거의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1505년에 포르투갈인들이 스리랑카에 온 뒤부터야 사람들은 그리스도교의 실제적 영향을 느끼기 시작했다. 포르투갈인들은 싱할라족 왕들의 지원을 받으며 스리랑카인들과 자신들을 (종교, 문화적으로) 구분할 수 있었다.

이들은 하나의 조직화된 그룹으로서 자신들의 시스템 안에 스리랑카의 현지 문화 요소는 거의 수용하지 않았다. 이들의 이러한 접근법은, 스리랑카 현지인들이 쓰는 싱할라어와 타밀어를 통해서 현지인의 문화에서 배우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가톨릭교회의 거의 모든 기관은 전국회의 차원이나 교구 차원에 구성돼 있는데 이는 로마 교황청의 조직과 같은 수준이 되기 위해서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이는 그 어떠한 지역 수준의 주도적 행위도 장려하지 않는다. 스리랑카 가톨릭 신자들은 다수 공포증 때문에 고립되어 있다. 다수 콤플렉스는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관점을 말하고 자신의 신앙을 제대로 증거하는 데 장벽이 되어 왔다. (역자 주- 스리랑카는 주민족인 싱할라족 대부분이 불교 신자이며, 불교와 국가 정체성을 동일시하는 불교 민족주의가 강하다.)

그리스도교 신자들과 그 지도자들의 마음을 산란시키는 주된 문제는, (교회가 어떤 움직임을 하면) 과연 다수파 (종교인 싱할라족과 불교의) 지도자들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러한 퇴보적 태도 때문에 그 어떠한 사회적 행동주의도 촉진되지 못하였고, 이러한 태도로서는 스리랑카의 복지에 진보적 사목 방법을 내놓을 수도 없다.

다수파 종교(불교) 그룹을 지배하는 악병은 자기네 창립자의 핵심 가르침을 지키지 않는 것이다. 가톨릭 남녀 신자들도 같은 문제가 있어서, 그저 예식과 행사에만 충실할 뿐이다.

정의의 문제들은 잊히고 있다. 그런 문제를 제기하면 다수파를 화내게 할 것이라 믿으면서 다수의 생각만 추종하기 때문이다.

가톨릭 평신도 지도자들은 물론 성직자 대부분에 의해서 침묵은 금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구속 사업을 하다가 사람들의 복지를 위해 죽은 것에 비춰 볼 때 그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것이다.

전례 봉쇄(lockdown)

코로나19 시대가 오기 전에, 스리랑카는 서부 주의 두 중요한 교회에 대한 테러 공격에 마주쳤다. 2019년 4월 21일, 예수님의 부활 승리를 기념하는 날이었다. 그리고 스리랑카 교회는 코로나19가 갑자기 퍼지면서 더욱 위축됐다.

우리들 가톨릭인들은 정부의 보건 지침을 철저히 따랐으며, 봉쇄조치와 물리적 거리두기도 아무런 문제 제기 없이 준수됐다.

우리는 또한 전례적 록다운 기간 중에 전례를 생중계하는 데 관한 구체적 지시들도 준수했다. 심지어 그러한 생중계가 신자들에게 유용하게 만들기 위한 어떤 적절한 제안을 하는 신자들도 없었다. 내가 느끼기에, 우리는 하느님의 메시지를 식별하는 것보다는 오직 의례를 따르는 데에만 열심이었다.

많은 이가 자신들은 가정 기도에 충실했지만 나아가 하느님 말씀을 적절한 방식으로 쓰는 법을 배울 기회는 없었다고 말한다.

제한된 몇몇 사람만 참여한 가운데 있었던 주일 성체성사를 포함한 전례가 14주간 생중계로 진행된 뒤, 이 주일 의무는 주중 전체로 확대되었다.

일부 본당에서는 기도회를 하고 뉴스를 공유하기 위해 (스피커와 같은) 대중연설 시스템을 썼다. 그것이 영성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이들이 많지만 일부는 좋게 평가했다.

록다운 중에 쓰인 시간은 성직자의 직무 사제직과 보편사제직, 남녀 수도자와 평신도를 토론하고 가르치는 문제를 생각하는 데 쓰일 수도 있었다. 우리는 국내와 해외 미디어를 통해 그런 사목적 관심사에 관한 의미 있는 토론을 하려는 시도들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콜롬보 대교구에서는, 의사소통의 주요 수단은 휴대폰을 쓰는 사제 대부분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방식이었지만, 다른 온라인 수단들도 사용되었다. 하지만 일부 사목자들은 이러한 수단들을 이용해 자기 본당의 청년들과 접촉하여 그들이 관심 갖는 문제들을 토론했다.

이 지점에서, 왜 교회 지도부는 복음화를 위한 새로운 길이나 방법을 시도하지 않았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그들은 그저 성직자 지배 교회에 의존하고 있는가? 의사결정 과정은 교회 교계제도에 한정돼 있는가? 이러한 질문들 일부는 표면으로 올라오지 않았다. 이는 자유로운 사고를 억압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자유로운 사고를 실천할 적절한 틀이 없었기 때문인가?

바티칸은 모든 가톨릭 신자에게 지난 5월 16-24일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찬미받으소서’ 5주년을 맞아 환경에 관한 의미 있는 일을 하라고 요청한 바 있다. 하지만 스리랑카 교회 지도자들은 이 바티칸 높은 곳으로부터의 요청에 별로 주의하지 않았고 죽음과 같은 침묵만 지켰다.

오직 소수의 수도회만, 자기네 수도회가 국제적 배경이 있고 수도회 장상들의 영향력도 행사되어 ‘찬미받으소서’에 나오는 환경 관심사에 관해 대담한 행동들을 취했다. 몇몇 평신도 단체도 해외 언론 보도에 힘입어 그리했다. 하지만 스리랑카 교계제도의 지원은 없었다. 이러한 침묵은 스리랑카 교계제도 안에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부정적 태도나 반감 때문인가?

(레이드 셸튼 페르난도 신부는 스리랑카의 저명한 인권옹호자다. 그는 교수였으며, 가톨릭노동청년회 지도신부도 맡았다. 그는 사회, 정치 문제에 관한 여러 책과 글로 유명하다. 이 글에 담긴 관점들은 필자의 것이며 <아시아가톨릭뉴스> 편집진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다.)

기사 원문: https://www.ucanews.com/news/silence-is-golden-in-the-isolated-sri-lankan-church/89578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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