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코로나-19의 세력이 이 땅에서는 그렇게 위력을 떨치지는 못하는 듯하나 마치 시한폭탄과 같이 우리가 방심하는 순간을 노리고 있기에 여전히 단체가 모여 특정한 모임이나 전례를 할 수 없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신자가 그토록 기대하던 파스카 성삼일 전례도 대부분의 교구에서는 방송매체를 통해 진행했습니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저희와 같은 수도회 공동체들에서는 형제들끼리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 가며 조심스럽게 공동체 차원에서만 전례를 진행했습니다. 

지난 파스카 성삼일 동안 제 동료 신부는 전례를 위해 서울로 갔지만, 저는 제가 파견되어 있는 시설을 며칠 동안 비워 두기가 부담스러워 현장에 남아 조용히 성삼일을 보냈습니다. 대신 아래 마을 본당 신부님, 수녀님과 더불어 지침으로 내려온 대로 약식으로 전례를 봉헌하였습니다. 

그렇다 보니 각 본당이나 수도 공동체의 경당에서 부활시기 동안 켜 두는 부활초를 준비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대견하게도 서울 다녀온 형제 신부가 작은 부활초를 하나 구해 왔지 뭡니까! 

우리의 소박한 경당에서 부활초를 제대에 올리면서 대뜸 그 형제가 물어왔습니다. “신부님, 부활초를 축성합니까 안합니까?” 앗, 깜빡이도 없이 훅 치고 들어온 질문이라 당황했죠. 저는 “하잖아!”라고 답은 했는데, 전례 때 부활초를 언제 축성하는지 혼란스러웠습니다. 

부활초. (이미지 출처 =. Pickpik)

헷갈려 하는 제 표정을 보며, 부활초를 구해 온 형제가 알려주었습니다. “정확히 말해서 부활초를 축성하는 것이 아니라 부활초에 붙이는 불을 축복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부활초를 마련해 주면서 그곳에 계셨던 전례학자께서 친절히 설명해 주셨다고 하네요. 

부활성야 미사 첫 부분인 빛의 예식에서 커다란 부활초에 십자가, 알파와 오메가 표시, 그해의 연도 숫자(올해 같으면 2020)들을 새겨 가면서 사제가 진행하는 예식이 마치 초를 축성하는 것으로 쉽게 착각할 수 있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밝히 보여 줄 불을 축복하는 것이 핵심 전례인 것입니다.

그래서 기특한 그 형제는 전례센터에 가서 밀랍으로 제작된 소박한 부활초를 하나 구해서 제품으로서가 아닌 부활시기용 부활초를 만들어 왔는데, 방법은 매우 간단했습니다. 부활성야 때 축성된 불씨로 불을 밝힌 부활초로부터 불을 당겨 새로 사온 초에 붙임으로써 또 하나의 부활초를 만들었던 것이죠.

전례용품점에서 부활초 하나 사다 놓으면 되겠거니....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던 제게 아주 중요한 배움이었습니다. 덕분에 부활시기 동안 미사 때마다 계속 켜 두어야 하는데 부활초가 너무 빨리 닳아 버린다 해도 큰 걱정이 없겠습니다. 새 초에 불을 당겨 붙이면 될 테니까요. 

박종인 신부(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센터장, 인성교육원장,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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