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은 사람이 모이는 곳이다. 특히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은 1년 365일 수많은 순례자와 관광객이 모여드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런 성 베드로 광장이 텅 비어 있다.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사태가 미증유의 모습을 만들어 냈다. 백신이나 치료약이 없으니 현재로선 전통적인 수단으로 코로나19 감염에 대처할 수밖에 없다. 마스크 쓰기, 손 씻기, 물리적 거리 두기. 이름도 생소한 ‘거리 두기’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생소하게 바꾸었다. 많은 것이 취소되고 많은 곳이 폐쇄되었다. 학교에서 학생이 사라졌다. 광장에서도 사람이 사라졌다. 그 빈 광장이 우리에게 무언가 말하고 있다.

사스, 신종 플루, 에볼라, 메르스, 코로나19. 모두 2000년 이후 감염병 사태를 일으킨 바이러스다. 모두 박쥐, 사향고양이, 가금류, 낙타, 천산갑 등 동물을 통해서 인간에게 옮겨 왔다. 바이러스는 스스로 움직이지 못한다. 인간이 바이러스의 이동 통로를 놓아 준 것이다. 문제의 근원은 야생동물의 서식지 파괴, 야생동물 매매, 공장식 축산 등 자연에 대한 인간의 과잉 활동이었다. 그렇게 인간은 코로나19를 불러들였고, 인간 속으로 들어온 코로나19가 인간을 몰아내고 있다. 빈 광장은 우리가 추구해 온 삶의 방식을 반성하라고, 우리가 생산하고 소비하는 방식을 변화하라고 요구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코로나19 감염은 재난의 끝이 아니라 더 큰 재난의 시작이라고 경고한다. 코로나19 사태는 극복해야 할 재난이자, 우리가 알아들어야 할 시대의 징표다.

성경의 예언자들은 회개를 외쳤다. 회개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뜻에 맞는 삶으로 돌아서라는 요구였다. 예수도 회개를 요구하며 공적 생활을 시작했다.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 하느님나라는 하늘의 뜻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 하느님의 질서가 세상에 펼쳐지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힘이 지배하고 있었다. 악마는 광야에서 예수에게 제시했던 “빵과 권세와 영광”으로 사람들을 사로잡는다.(루카 4,1-13) 물신의 유혹이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 6,24) 양자택일, 한쪽을 택하면 다른 쪽은 버릴 수밖에 없다. 복음서는 하느님나라 선포와 실현에 헌신하는 예수와 그 시대의 완고함을 함께 보여 준다. 재물을 섬기는 자들은 완고했다. 부자, 바리사이, 율법학자, 사제, 통치자들은 기존의 삶의 방식과 세상의 질서를 고집했다. 달콤한 유혹과 거친 폭력으로 사람들을 침묵시켰다. 변화를 요구하는 이들은 제거되었다. 세례자 요한은 목이 잘렸고, 예수는 십자가에 달렸다.

비 내리는 27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텅 빈 성 베드로 광장에서 로마와 전 세계를 위한 장엄강복을 내렸다. (이미지 출처 = JIN SEULKI Tommaso d'Aquino이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 갈무리)

물신 숭배는 자본의 논리를 최대한 구현하는 것으로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아니, 더 강화되었다. 경쟁과 효율을 통한 이윤의 극대화는 의문을 허용하지 않는 지상 과제가 되었다. 과학 기술로 무장한 인간은 그것이 인간이든 자연이든 상관없이 “최대한 모든 것을 뽑아내는 것”에 몰두하게 되었다.('찬미받으소서' 106항) 지금 코로나19가 전 세계에서 사람들을 괴롭히기 이전에 무분별한 개발로 자연을 파괴해 온 인간의 폭력이 있었다. 그런 인간의 배후에는 자본이 있다. 정녕, 인간은 재물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섬기고 있다.

이 시대, 우리는 빈 광장에서 코로나19가 보내오는 요구와 경고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우리는 변화할 수 있을까? 피상적인 수준에서는 변화할 가능성이 크다. 사회의 모습은 어떤 식으로든 많이 바뀔 것이다. 예를 들어, ‘대면’에서 ‘비대면’으로의 전환이 사회 여러 곳에서 정착되고, 그에 따라 연쇄적인 변화가 생길 것이다. 하지만 자본의 논리에 충실한 방식과 한도 내에서만 변화될 것이다.

근본적인 수준에서의 변화 가능성은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과연 지금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자본의 논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현재의 생산과 소비 체제를 유지하면서, 인간과 자연을 존중할 수 있을까? 건강과 교육과 인권의 가치가 보장될 수 있을까? 영리의료가 아닌 공공의료의 확대를 기대할 수 있을까? 세계화에 기초한 자유 무역과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에 기초한 성장과 번영에 대한 확신은 여전히 건재한다. 자본이 구축해 놓은 완고한 현실은 빈 광장의 요구와 경고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을 것 같다.

인간으로 인해 병들고 있는 지구 그림. (이미지 출처 = giveupinternet.com)

지난 3월 27일 금요일 저녁, 어둠이 깃든 성 베드로 광장의 적막 속으로 노구를 이끌며 프란치스코 교종이 들어섰다. 인적이 끊긴 빈 광장에서 교종은 우리 모두의 대사제 예수를 따르는 한 ‘사제’로서 빈손으로 그러나 온 마음으로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느님께 간구했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호소했다. 세계를 소리 없이 덮친 코로나 19 사태가 우리는 모두 같은 배를 탔고, 길을 잃었고, 가난한 이들과 아픈 지구의 울부짖음에 귀를 막아 왔고, 병든 세상에서 나만은 건강할 것처럼 살았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으니, 이제는 회개하자고. 죽음이 일상이 되어버린 이 엄혹한 때에도 생명을 걸고 남을 위해 헌신하는 의사들과 간호사들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이 있으니, 세상은 아직 살 만하다는 희망을 간직하자고.

이제 공은 다시 세상으로, 우리에게 넘어왔다. 세상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성주간이 시작되었고, 곧 부활절을 맞는다. 코로나19가 세계 전역에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운 이때, 예수 부활이 불의와 죽음을 뚫고 나온 정의와 생명의 승리라는 것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 옛 길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로 걸어가야 하겠다. 

조현철 신부(프란치스코)

예수회, 녹색연합 상임대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