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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길, 승리의 길[장영식의 포토에세이]

김진숙 지도위원이 긴 ‘은둔’에서 세상 밖으로 나왔습니다. KTX 노동자들의 복직 투쟁이 절정에 달할 때, 그 누구보다도 KTX 노동자들과 뜨겁게 연대했던 그이가 사라진 것입니다. 그리고 한참 뒤에서야 들려온 충격적인 소식은 암 투병이었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외로운 투병을 딛고 세상으로 나온 것은 그이의 오랜 동무인 영남대 의료원 해고자 박문진 씨의 고공 농성 소식 때문이었습니다. 박문진 씨가 어느 인터뷰 기사 중에 “외롭다”고 한 말이 사무치게 가슴에 꽂혔습니다. 그 지독한 외로움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주저앉지 말고 일어서기를 결심했습니다. 사람들의 ‘간절함’과 ‘관심’이 모인다면 영남대 의료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영남대 의료원 사태에 대해 사람들이 너무 모르고 있다는 것과 이 사실을 세상에 알려야겠다는 마음으로 고공 위의 동무를 향해 무작정 길을 나서 걸었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오랜 은둔에서 일어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이의 오랜 동무인 영남대의료원 해고 노동자인 박문진 씨의 고공 투쟁을 세상에 알리고 싶기 때문에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 길은 바로 생명의 길이며 승리의 길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장영식

12월 23일이었던 첫날은 혼자서 부산의 호포역을 출발하여 대구를 향했습니다. 그러나 그이의 핸드폰은 너무나 오래되어서 길 찾기도 되질 않았습니다. 갑자기 전원이 꺼지기도 했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홀로 걷는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이 소식을 물었습니다. “지금 어디에 있느냐?”라는 물음에 그 자신도 그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약 18킬로미터를 혼자서 방황했던 그이는 원동역에서 부산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둘째 날은 금속노조 한진 중공업지회 조합원들이 김진숙 지도위원의 도보행진을 지원했습니다. 그리고 서울과 대구에서 온 활동가들이 함께했습니다. 홀로가 여덟 명이 된 것입니다. 여덟 사람들은 원동역에서 천태산을 넘어 삼랑진역까지 도착했습니다. 길을 걸으며 물었습니다. “혼자보다 함께가 좋지요?”라고 하니 “그럼요. 정말 좋습니다. 혼자 걸을 때는 어디가 어딘지 불안했는데, 이렇게 함께 걸으니 안심도 되고 좋습니다.”라며 환한 미소를 보냈습니다.

첫날은 혼자였지만, 둘째 날은 여덟 명이 되었고 셋째 날은 사십 명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사랑으로 모인 사람들입니다. ⓒ장영식

셋째 날은 사십 명이 함께했습니다. 삼랑진역에는 철도노조와 아사히노조 등 전국에서 달려온 연대 시민들이 함께했습니다. 도보행진 중에 합류한 김진숙 지도위원의 몇 되지 않은 동무인 한선주 씨 등이 김진숙 지도위원과 뜨거운 동지애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동무들과 함께 밀양 둑길을 걸으며, 그 어느 때보다도 밝고 신나 보였습니다. 항암 투병으로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몸이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그이의 발걸음은 가볍고 힘차 보였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혼자 걸으면서 대구까지 약 20일을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동지들이 모여 함께 걸으니 약 7일 정도로 단축되었습니다. 성탄 바로 전날이었던 도보행진 둘째 날, 김진숙 지도위원은 말합니다. “오늘 같은 날, 박문진, 톨게이트 노동자들 그리고 강남역 고공 위 김용희 동지에게 예수님이 오셨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말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스님들은 오체투지 행진으로 영남대 의료원을 향했습니다. ⓒ장영식
시간이 지날수록 김진숙 지도위원의 표정은 밝고 건강해 보입니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이기에 가능한 기적 같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영식

나는 도보행진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이가 예수요 부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땅에서 고통받고 있는 이들과 함께하는 이들이 바로 예수요 부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부처님도 이미 그곳에 오셨고, 함께 머무르고 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000명이 넘던 조합원들 속에서 절대적 신뢰를 받았던 박문진 씨가 영남대 의료원 측의 노동조합 파괴에 맞선 오랜 투쟁이 끝내는 승리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과 산티아고를 걷고 싶다는 꿈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과 함께 걷는 길은 생명의 길이요 승리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영남대 의료원 옥상 고공 위에서 200일 가까이 농성 중인 박문진 씨의 모습. 이제 곧 동무가 그이를 찾아갈 것입니다. ⓒ장영식

장영식(라파엘로)

사진작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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