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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막함과 먹먹함 그리고 안전함[장영식의 포토에세이]

사실은 지난 포토에세이가 발간되는 날, 박문진 지도위원은 고공 농성을 해제하고 땅을 밟기로 잠정합의안을 이끌어 냈습니다. 그러나 이 잠정합의안은 영남대의료원 측의 사유로 최종 조인식을 갖지 못했습니다. 고공 위의 박문진 지도위원은 농성을 끝내지 못하는 답답한 시간이 흘렀습니다.

노사 양측이 2월 11일 밤늦게 합의안에 도장을 찍었다는 소식과 박문진 지도위원이 227일 만에 농성을 끝낸다는 소식은 2월 12일 새벽에 알려졌습니다. 박문진 지도위원을 만나기 위해 영남대의료원으로 달려갔습니다. 본관 13층에서부터 고공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길은 소식을 듣고 달려온 노동계와 취재진으로 북새통을 이루었습니다. 이미 김진숙 지도위원도 꽃다발을 들고 도착해 있었습니다.

하늘 위 고공에서의 227일. 그 막막했던 농성을 끝내는 날, 박문진 지도위원은 두 손을 모아 "고맙다"는 인사를 남겼다. ⓒ장영식

옥상으로 가는 철문은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취재진의 항의가 있었지만, 굳게 닫힌 철문은 오후 3시가 넘어서야 열렸습니다. 옥상에서 또 하나의 고공 위로 박문진 지도위원이 밝은 모습으로 인사를 했습니다. 박문진 지도위원은 “여러분 덕분에 내려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를 하며, 하늘 위 고공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철 계단을 천천히 내려왔습니다. 땅을 밟는 박문진 지도위원을 김진숙 지도위원과 대구민주노총 노동자들과 보건의료 노동자들 그리고 영남대의료원 동료들과 시민들이 따뜻하게 맞았습니다.

영남대의료원 호흡기질환센터 앞에서 있었던 '영남대의료원 227일 고공농성 해단 및 환영대회'에서 박문진 지도위원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이는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우리를 지켜준 동지들이 있어 오늘 살아서 돌아왔다”며 “동지들이 나의 깃발이었고 길이었다. 또 나의 꽃이었다.”고 농성 해제의 소감을 밝혔습니다.

하늘 위 고공의 '노동의 계단'을 내려오는 박문진 지도위원의 모습. ⓒ장영식

한편, 이번 노사 간의 최종합의에 따라 박문진 지도위원은 3월 1일자로 간호사로 채용되는 것과 동시에 명예퇴직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송영숙 부지부장은 5월 1일 영남대의료원으로 복직하게 됩니다. 정년퇴직 1년을 앞둔 박문진 간호사의 명예퇴직은 유감스럽습니다. 명예롭게 현장에서 정년을 맞지 못하고, 명예퇴직의 전철을 밟는 합의안에 대해서도 유감스럽습니다. 1년간 무급 휴직을 통해서라도 정년퇴직의 길을 여는 상생의 원칙을 지켜낼 수 있었음에도 영남대의료원 측의 “박문진은 안 된다”는 결정은 유감스럽습니다. 마치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서 “김진숙은 안 된다”는 완고한 결정과 맞물려 있는 것 같아 유감스럽고 안타깝습니다. 어떤 정권에서도 자본이 노동을 대하는 태도는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길이었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눈물로 친구를 맞고 있다. ⓒ장영식

이제 우리는 오랜 해고자의 신분에서 돌아온 노동자들의 사후 대책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합니다. 박문진 지도위원은 김진숙 지도위원과의 통화에서 “선배, 이제 내려가면 뭘 하지?”라고 반문했다고 합니다. 이 말은 의미가 깊습니다. 지난 포토에세이에서도 언급했지만, 오랜 해고자들은 다가오는 미래에 대한 계획된 준비가 전혀 없습니다. 정신적으로도 그렇지만 경제적으로도 다가올 삶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해고자들이 말하는 ‘막막함’이란 단어 앞에 ‘먹먹함’이 밀려오는 것입니다.

언젠가 김진숙 지도위원이 어렵고도 힘들게 민주노총 담당자에게 “우리도 국민연금에 가입해 주면 안 되겠는가?”라고 문의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단호한 거절이었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의 말을 듣는 순간, 슬픈 먹먹함이 밀려왔습니다. 우리는 이 땅의 수많은 해고 노동자의 투쟁 소식에 연대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 개별적 연대가 모여 사회적 합의로 나아가야 합니다. 해고 노동자들의 막막함을 맞는 우리의 먹먹함을 극복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야 합니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와 시민사회가 해고 노동자들의 막막한 미래를 안전한 미래로 바꿀 수 있는 최소한의 합의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내 뒤에 서 있는 누군가는 내 등짝에 피어난 소금꽃을 피워 내는 나무들’이라는 사실을 존중하는 노동하는 사회의 모습이 아닐까요. 

고공 위의 227일 동안 하늘 아래 땅 위에서 말할 수 없는 가슴앓이를 품고 있어야 했던 영남대의료원 노동조합 김진경 지부장이 참고 참았던 가시 같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장영식

장영식(라파엘로)

사진작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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