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에 대한 입장은 변함 없어

천주교가 낙태죄 처벌을 규정한 형법을 여성의 처벌에 한해 개정하는 것에 일부 동의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국일보>가 2월 18일 보도했으나, 확인 결과 교회의 기존 입장은 변함없으며, 여성을 처벌하지 않을 필요성만 제기된 상태다.

<한국일보>는 천주교 주교회의 가정과생명위원회 산하 생명운동본부가 <한국일보>에 보낸 입장문에서, "낙태는 죄라는 천주교의 기존 입장은 변함 없지만, 낙태죄 처벌에서 여성의 죄를 면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기사에 따르면, 생명운동본부는 "낙태 결정과 실행과정에서 여성 개인의 사회, 경제적 부담과 고통이 큰 만큼 여성을 형법으로 처벌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며, "다만 천주교 교리 상 낙태 자체는 죄인만큼 의료진 처벌 조항은 유지해야 하고 모자보건법상 낙태 허용 기준을 '사회경제적 사유'까지 확대하자는 주장에 대해서도 천주교는 여전히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보도 내용을 보면 전면적 낙태죄 폐지 반대를 요구한 교회의 입장이 일부 변화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 <가톨릭뉴스 지금여기>가 확인한 결과, 교회의 기본 입장이 달라진 것은 아니며, 낙태죄 처벌 조항 개정에 대한 "일부 동의"가 아니라 "논의의 필요성만 제기된" 상태다.

<한국일보>의 기사도 "낙태죄 여성 처벌조항 폐지에 일부 동의"라는 표현이 "천주교 형법 개정에 첫 긍정적 반응"으로 19일 수정됐다. 

<한국일보>에 보도된 천주교 낙태죄 입장 관련 기사. 2월 19일 수정분. (이미지 출처 = 한국일보 홈페이지 갈무리)

생명운동본부 차희제 운영위원은 19일 <가톨릭뉴스지금여기>에 낙태죄 및 모자보건법 개정은 천주교가 처음부터 일관되게 반대했으며 전혀 동의하는 부분은 없다고 밝혔다.

차 의원은 “천주교의 기존 입장이 달라진 것은 없다”면서 “(<한국일보>의 수정 전 기사에서) 가톨릭이 낙태법 개정에 일부 동의한다는 표현은 잘못된 것이라 수정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일보>에 실린 내용은 “주교회의 가정사목위원회의 공식 입장이 아니며 생명운동본부에서 낸 하나의 의견”으로 “여성들이 원치 않은 임신을 했을 때, 아이를 낳든 낳지 않든 어떤 선택을 해도 이미 충분히 고통스럽고 힘든 상황을 겪기 때문에 굳이 형법으로 처벌할 필요는 없으므로 우리도 생각해 보자”는 차원에서 낸 의견이라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낙태죄에서 여성 처벌을 빼자는 의견은 주교회의나 생명운동본부의 공식 입장은 아니며, 공식입장이 되려면 주교회의 내부와 생명운동본부가 소속된 가정생명위원회 전체 의원들의 논의를 거쳐 결정돼야 한다.

다만 그는 공식 입장은 아니지만, 여성의 실질적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천주교 내부에서 이 문제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독일의 경우, 낙태한 여성에게 죄를 묻지 않고, 의료진에게 일정한 조건 아래서만 낙태 시술을 허용하며, 의료진이 이를 지키지 않으면 한국보다 더 강력하게 처벌하고 있다며, 낙태법이 개정된다면 한국도 이를 참고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또한 독일, 스위스 등에서 낙태법을 폐지한 뒤 낙태율이 줄어든 것은 남성 책임을 강력하게 묻는 제도가 있고, 미혼모가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하며, 학교와 직장, 사회에서도 아무런 편견이 없는 사회, 경제적 여건이 이미 조성돼 있기 때문으로, 한국도 이런 조건을 만든 뒤에 낙태죄 폐지를 논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은미 주교회의 여성소위원회 총무(한국가톨릭여성연구원 대표)도 여성 처벌 완화와 남성의 공동책임 강화를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19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그는 “낙태죄가 처벌을 위한 입법이 아님에도 지금은 의사와 여성을 처벌하는 것에 너무 치중이 돼 있어서 오히려 부작용이 많다”면서 “여성의 처벌을 완화해야 하고 남성이 공동으로 책임지게 하는 부분도 강조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번에 생명운동본부에서 나온 의견이 “(천주교의) 공식입장은 아니라 해도 평신도들이 그런 쪽으로 교회가 나아갈 수 있도록 의견을 좀 더 내고, 교회 또한 이런 논의를 주도적으로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낙태죄 위헌 판결'을 촉구하며 교수와 연구자들이 헌법재판소 앞에서 의견서를 내기 전 기자회견을 했다. ⓒ김수나 기자

한편, 현행 형법(제269조와 270조)은 낙태를 죄로 규정하고, 낙태한 여성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형, 낙태를 한 의료진은 2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한다.

다만 모자보건법(제14조)은 우생학적,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 전염성 질환, 강간과 준강간, 근친상간으로 인한 임신일 경우와 임신 지속이 산모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칠 때 임신 24주 이내에서 낙태를 제한적으로 허용한다.

이러한 형법 규정이 여성의 건강권과 자기결정권, 사생활 보호 등과 같은 기본권을 침해하고 낙태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사회, 경제적 고통을 여성에게만 부담시킨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또 낙태에 대한 사회, 경제적 허용 범위를 보다 넓혀야 한다는 요청도 있다.

천주교는 임신되는 순간부터 생명으로서 존중, 보호돼야 하고, 모든 인위적 낙태에 반대하며 낙태에 협력하는 것도 중죄로 보고 그동안 낙태죄 폐지 반대 운동을 해 왔다.

현재 낙태죄는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여부를 심리 중이며, 20일 헌법재판소에 확인한 바에 따르면 선고기일은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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