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주수병에 채운 포도주와 물. (이미지 출처 = Pxhere)

미사를 위해 제대상을 차린 봉사자가 냉장고에 특별한 표시가 없이 들어 있던 물병에서 물을 덜어 제대 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미사 주례자는 포도주와 물을 섞었을 때도, 나중에 성혈을 마실 때도 별 눈치를 못 챘습니다. 이상 징후를 인지하게 된 것은 성혈을 마시고 성작을 닦기 위해 물을 붓고 들이켰을 때였습니다. 물에서 짠 맛이 났기 때문입니다. 

이 사연을 듣고 저도 몇 년 전 비슷한 경험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어느 피정집에 가서 봉헌했던 미사 마지막 부분에 성작에 부었던 물을 마시는 순간 느꼈던 그 맛. 성수는 사제의 축복을 받아 마련된 거룩한 물이지만 음료용으로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착오로 인해 제대에 올라왔던 것입니다. 

뭐.… 그 정도면 매우 양호한 경우입니다. 언젠가 생수병에 아무런 표시가 없이 담겨 있던 액체를 정말 아무 생각없이 미사용 물병에 담아 미사를 봉헌하였던 적이 있습니다. 영성체 뒤 성작을 닦기 위해 들이켰을 때, 그것이 제대에 올리는 등잔을 위해 마련된 투명한 파라핀유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인지한 사람은 미사 주례사제가 아니었습니다. 영성체 뒤 설거지를 돕고자 수사님이 그것을 대신 마시겠다고 하는 바람에 주례사제는 무사했으나 그 수사님은 병원 응급실로 가야 했습니다.

“웃픈” 사연입니다. 두 경우 모두 제대상을 차린 이들은 병에 특별한 표시가 없으니 병마개를 열고 냄새를 맡아 봤을 겁니다. 하지만 무색 무취라 구분이 그리 쉽지 않았겠지요. 아무튼 뭔가 불확실할 때는 가게에 가서 생수를 구해 오는 것이 안전사고를 예방하는 방법이 되겠습니다.

이 정도에서 끝나면 다행인데, 오늘 속풀이의 질문을 제기하신 분은 자신의 실수로 미사가 무효가 되었다고 생각했고, 엄청 죄책감을 느끼고 우셨다고 합니다. 미사가 무효가 되다니요? 거룩한 성수를 마셨는데 미사가 무효가 될 리가 있겠습니까? 주례사제가 메슥메슥한 기분을 느꼈을지는 몰라도 미사에 지장을 초래한 것은 아니라고 말씀 드리겠습니다. 제대 봉사자께서 마음 놓으시길 빕니다.

사족: 장기간 보관해야 하기에 성수에 소금을 넣는 겁니다. 부패를 막기 위함이지요. 따라서 상온에 두어도 되는 것인데, 도대체 성수를 왜 냉장고에 보관하는 겁니까!

박종인 신부(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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