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박종인]

일하는 곳이 수도회가 설립한 학교이다보니 학교 안에 예쁜 경당이 있습니다. 경당이 있으니 학기 중에는 날마다 미사가 봉헌됩니다. 미사를 봉헌하는데 봉사를 하는 학생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이 친구들은 개인의 일과를 나눠 미사를 준비하고, 성가도 부르고, 반주도 하고, 복사도 서 줍니다.

학교의 신앙 공동체를 위해 존재와 시간을 나눠 주는 청년들이 고맙습니다. 이 신앙 공동체는 여러분도 어림하시다시피, 전례반, 복사단, 성가대 등으로 나뉘어 제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새 학기가 시작되면 새내기도 있게 마련입니다. 새내기들 중에는 그 전례 단체의 기능을 이미 알고 있는 경력자도 있겠지만 보통 이제 배워 보려는 초보자가 대부분입니다.

항상 어떤 기억될 만한 사건이 벌어지려면 꼭 당일에 경험자들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신입 단원이 선배 누군가가 이미 나와 있으려니 하며 딱 그 시간에 맞춰 나오지만, 선배는 보이지 않습니다.

순간 당황하고 허둥지둥 이곳저곳 보관함을 열어서 제구를 찾아내고 어깨 너머로 본 기억을 더듬어 제대에 올라갈 제구들을 배열합니다. 하지만 확신이 없지요. 그래도 매뉴얼에 친절하게 찍어 놓은 사진을 대조해 가며 식은땀을 흘리며 제대를 차립니다.

그래요. 제구를 배치하는 데 약간 순서가 달랐다 해도 초보자치고는 잘했고, 수고했습니다. 하지만 그날 미사 주례를 맡은 저는 성작을 설거지 할 때, 주수병(포도주와 물을 담아 놓은 두 개의 작은 병) 중에서 물병에 담겨 있던 소금물을 마셔야 했습니다.

어찌 소금물을? 알고 보니 부활성야 미사에서 축성한 물, 곧 성수(“성수와 성유는 어떻게 만드나요?”를 함께 읽어 보세요)를 받으러 오는 분이 많아 학교 경당의 실무자께서 친절하게 페트병에 담아 놓은 물이 있었고, 우리의 새내기께서는 그것이 식수인 줄 착각한 겁니다. 색이나 냄새로 가늠할 수 없으니 성작을 닦느라.... 게다가 약간 목이 말랐던 저는 깨끗이 따라 세 번에 나눠 마셨는데, 어째.... 첫 모금 뒤의 석연치 않은 맛이라니!

미사를 마치고 나서, 그 미사의 제대를 차렸다는 친구를 불러오라고 했습니다. 그 친구는 당황한 채 와서 제대를 차리는 과정에 있었던 일들을 해명했습니다.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을 이야기였는데.... 그 친구가 물을 덜어 냈다는 물병에는 버젓이 “성수”라고 쓰인 딱지가 붙어 있었습니다. 아, 얼마나 당황했으면....

아무튼 이 초보자에게 성수로 제 몸을 축성해 줘서 고맙다고 말하고는, 그 친구가 온 김에 아예 제대 위에 올라가야 할 제구가 어떤 식으로 준비되는지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 제대에 차려진 제구들. ⓒ지금여기 자료사진

미사 때 쓰이는 제구의 기본 구성을 사제가 건드리는 차례로 나열하면 이러합니다. 즉, 말씀의 전례를 마치고 성찬의 전례로 접어들 때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이 제구를 제대 위에 펼쳐 놓는 것인데, 사제는 다음의 순서로써 제대를 준비합니다.

1. 성체포(corporale(라틴), corporal(영))를 제대 위에 펼쳐 놓습니다. 성체포는 아마포 재질의 네모난 천입니다. 미사 때 이 천 위에 성합(ciborium 성체를 넣어두는 그릇), 성반, 성작을 올려놓습니다. 실제적으로는 미사 중에 성체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들을 쉽게 모으기 위한 목적이지만, 전례상 이 천 위에서 빵과 포도주가 주님의 몸과 피로 변화되기에 중요합니다. 성체포가 몸(corpus)이라는 말에서 파생된 것은 주님의 몸이 놓이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제대를 준비하고자 성체포를 펼치면, 아홉 개의 사각형이 나오게 됩니다. 그러니까 가로로 삼등분, 세로로 삼등분 접으면 됩니다.

2. 성작 덮개(palla(라틴), pall(영))를 제대 위에 내려놓습니다. 성체포를 가지런히 깔고 나면 성작 덮개를 제대 위에 내려놓고, 사제용 제병이 놓인 성반을 성체포 위에 올려놓게 됩니다. 성작 덮개는 성작 안에 이물질이 들어가지 않도록 성작을 덮는 네모난 덮개입니다. 먼지나 곤충 등을 막는 실제적 기능이 있습니다. 야외에서 미사를 봉헌할 때는 두 개를 가져가서 성작만 아니라 성반을 덮기도 합니다. 바람에 제병이 날아가지 않도록 눌러 두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미사 준비를 위해서는 성반 위에 놓입니다.

3. 성반.(patena(라), paten(영)) 성작 덮개를 치우고 나면 둥근 접시 형태의 성반이 나타납니다. 성반은 성작 수건 위에 놓여 있는데, 미사 준비를 할 경우 성반에는 사제가 사용할 대형 제병이 놓여 있게 됩니다.

4. 성작 수건.(purificatorium(라)) 성반을 성체포 위에 내려놓으면 성작 수건이 나타납니다. 이 천은 아마포 수건으로 영성체 뒤에 성작과 사제의 입과 손을 닦을 때 씁니다. 미사 준비 시, 성반과 성작 사이에 걸쳐 둡니다.

5. 성작.(calix(라), chalice(영)) 위의 과정을 다 거치고 나면 가장 마지막에 성작이 나타납니다. 성작은 포도주를 담는 잔입니다. 주님께서 최후의 만찬 때 잔을 사용하셨고, 그 잔에 담긴 포도주를 당신의 피로 변화시키신 사건을 재현하는 도구입니다. 그래서 미사 중에 성작에 담긴 포도주는 성변화를 통해 그리스도의 성혈로 변화합니다. 초기에는 유리가 주재료였지만, 3세기 무렵부터 금과 은으로 만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에는 고상하고 단단한 다른 재료로도 만들 수 있게 되었으나 원칙상 성작의 내부는 도금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성찬의 전례에서 제대를 준비할 때는, 성작에 포도주를 따르고 물을 살짝 부어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혹은 주님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피와 물을 기념합니다.

그런데, 이처럼 성찬의 전례를 위한 중요 제구가 있다 해도 이것이 없으면 성찬의 전례가 성립할 수 없으니....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포도주와 물입니다. 제대에는 주수병(urceolus(라), cruets(영))이라고 해서 포도주와 물을 담은 작은 병을 놓아둡니다. 옛날에는 포도주가 들어 있는 병과 물이 들어 있는 병을 구별하기 위해, V(vinum 포도주)와 A(aqua 물)라고 표시했습니다.(가톨릭대사전 참조)

그 병에 담아야 할 물은 식수입니다. 겉보기에 식수와 비슷한 다른 물질이 아니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그날 미사 이후 오후 내내, 너무 많이 들이킨 성수 덕에 속이 살짝 울렁거리긴 했지만 그래도 별탈은 없었습니다. 단지 제 뇌리에 되살아난 것은 미사 중에 등잔용 기름인 파라핀유를 물인 줄 알고 마시고는 병원에 실려 갔던 동료 수사에 대한 기억이었습니다.

아무튼 새 학기 초입에 있었던 그 미사는 ‘무사히’ 성찬의 전례를 거행할 수 있는 것도 고마워해야 할 일이란 걸 깨닫게 해 준 성사였습니다.

 
 

박종인 신부(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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