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시 - 박춘식]

사랑 (이미지 출처 = Pixabay)

구월 엄마의 눈물

- 닐숨 박춘식

 

불치병으로 점점 오그라드는 아이를

상큼한 초가을, 바다로 손잡고 갑니다

모래사장으로 힘겹게 걸어가더니

아이는 ‘엄마사랑해요’를 손가락으로 씁니다

그리고 커다란 하트를 그리더니

하트 안에 ‘감사하느님’ 다섯 글자를 씁니다

아이 앞에서 늘 ‘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중얼거렸던 엄마는, 모래 그림 앞에서 눈물 흘립니다

그날 저녁, 밤의 평온 안에서

순교자 전기를 읽던 엄마는, 금세 눈물을 떨어뜨립니다

피를 쏟으면서 예수 마리아를 부르짖고

비둘기 모양으로 번지는 선혈의 모습을 묵상합니다

극단의 행위예술로 숭고함을 보여준 순교자들에게

아이를 위하여 그리고 아이가 살아갈 한반도를 위하여

평화를 전구하는 뜨거운 눈물로 합장합니다

 

<출처> 닐숨 박춘식 미발표 시(2018년 9월 17일 월요일)

 

순교자들에 대한 글을 적던 어느 사제가 한 글자 한 글자 적어 가다가 눈물을 줄줄 흘렸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 순교자들의 숫자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장터에서 천주학쟁이라며 몰매 맞아 순교하신 분도 계신다고 하니, 그분들의 이야기를 다 들을 수 있다면 수백 권의 책에 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9월은 순교자 성월 그리고 9월 20일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임을 외우지 않는다면 한반도의 신자가 아니라고 말해도 될는지 여쭈어 봅니다. 순교로써 이루어지고 성장해 온 한국의 천주교회는, 남북 교류가 활발해질 경우 북한의 신자 교육이나 선교로 한때 성장하는 듯이 보이겠지만, 이제 점점 줄어들고 오그라드는 내리막길을 걷게 되리라 여깁니다. 축소되는 과정의 속도 조절이라도 할 수 있다면 몇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크게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선 당장은, 한반도 정세가 평화로 향하여 굳혀지도록 순교자들의 전구 요청(기도)에 온 힘으로 매달려야 한다는 마음이 듭니다.

닐숨 박춘식
1938년 경북 칠곡 출생
시집 ‘어머니 하느님’ 상재로 2008년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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