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시 - 박춘식]

'103인 순교자' (이미지 출처 = commons.wikimedia.org)

저승길 강변에서

- 닐숨 박춘식

 

몸통을 빠져나와 저승길을 걷습니다

바다 같은 큰 강이 보이는데

저승사자가 나루터로 인도합니다

목선 범선 잠수함 군함 등 많은 배가 보입니다

수상비행기와 로켓이 보여 가까이 걸어가니

새 붉은 날개의 선녀들이 가로막습니다

금괴 돈 보석 몽땅 주겠다고 말하자, 절레절레

임금 옷을 입고 오겠다는데도, 절레절레

오직 순교자만이 탈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온몸 뜨겁게 무너집니다

 

뒤돌아 일어나서 눈을 번쩍 떠 보니

9월의 커다란 달력 안에

수많은 십자 깃발이 빛나고 있습니다

 

<출처> 닐숨 박춘식 미발표 시(2018년 9월 3일 월요일)

 

동양에서도 서양에서도 황천길에는 강이 있다는 글이 많습니다. 이집트의 나일강이 그러하고 삼도천 그리고 ‘요단강 건너서-’가 생각납니다. 갠지스강의 화장터는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이라는 표현을 많이 합니다. 모든 상황을 초월하여, 저승길 즉 하느님에게 가는 길을 가장 명료하게 보여 주신 분은 순교자들입니다. 매일매일 순교하는 신앙으로 산다면, 순교 현장의 두려움을 느끼지 않게 하느님의 큰 사랑이 감싸 주시리라는 예감이 상상됩니다. 금년 순교자의 달에, 민족의 앞날을 위하여 기도를 엄청 많이 바치시기를 간곡히 당부드려도 될는지요. 한반도의 정세에 직접 영향을 주는 나라들이 한반도의 미래를 걱정하는 나라는 없다고 봅니다. 모두 자국의 이득만을 생각하면서 도와주는 척하는 과정에서 자기 실리를 챙기려는 무서운 현실을 우리는 직접 보고 있습니다. 하늘나라의 수많은 순교자들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가장 큰 지원자들이며, 동시에 우리 믿음의 조상들입니다. 9월의 모든 기도 끝에, “순교자들이시여, 한반도의 평화를 위하여 간절히 빌어 주소서”라는 짧은 기도를 바치신다면 매우 기뻐하시면서, 다부지게 기도해 주시리라 확신합니다.

닐숨 박춘식
1938년 경북 칠곡 출생
시집 ‘어머니 하느님’ 상재로 2008년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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