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시 - 박춘식]

빈 성당. (이미지 출처 = Jinho Jung이 Flickr에 올린 '약현성당내부' 수채화)

사막으로 가시는 하느님

- 닐숨 박춘식

 

 

하느님께서, 처음 그전에, “빛이 생겨라” 하시니

찬란한 빛살이 암흑을 찢으면서 끝없이 달립니다

 

요즘 사람은 “불 켜” 한 마디 던지면

번쩍 전등불이 환하게 빛납니다

한술 더 떠서

어린아이가 거실의 샹들리에를 보며 윙크하니까

고운 멜로디 따라 수많은 전구가 반짝거립니다

 

하느님께서 슬며시 마을 밖으로 나가십니다

전능(全能)을 도둑맞은 듯한 쓰린 걸음으로

멀리 사막을 바라보며 홀로 걸어갑니다

 

<출처> 닐숨 박춘식 미발표 시(2018년 10월 1일 월요일)

 

신형 전자제품으로 모든 일이 편리하고 흥미 있게 해결되니까, 재미없는 성당은 점점 더 멀리 보입니다. 어느 종교이든 궁금하면 교회나 절에 그리고 서점에 안 가더라도, 손가락 몇 번 누르거나 인공지능 로봇에게 명령하면 줄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 줍니다. 어느 도시 변두리 성당에 아동미사가 사라지고 성인을 위한 미사도 주일 4번 집전되었는데 3번으로 줄였다고 합니다. 하느님을 외면하는 신자가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성직자 중심으로 움직이는 교회는 이렇게 허물어지는 듯합니다. 말로는 평신도가 교회라고 하지만, 본당신부는 항상 왕으로 군림하고 있으니 그 명령에 고개 숙여 무조건 복종하는 신자들은 몇 번 눈치만 보다가, 마음 편하게 주일미사만 참석하는 정도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신부들은 평시에는 운동이나 모임으로 자주 성당을 비운다고 합니다. 갈수록 성당은 더더욱 스산한 집이라고 느끼는 신자들은, 자연스럽게 하느님과 멀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느님을 왕따시키는 일이, 또 하느님이 왕따되도록 빌미를 주는 일이 없어야 할 터인데, 거참, 참말로 큰 걱정입니다.

닐숨 박춘식
1938년 경북 칠곡 출생
시집 ‘어머니 하느님’ 상재로 2008년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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