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만난 예멘 난민 이야기

예멘 난민 위한 한국어 교실. “한국어 어렵지 않아요!”

“추에, 추에, 췌”

제주교구 조천 성당 2층 회합실. 칠판 가득 자음과 모음 조합이 적혀 있고, 강사의 선창을 7명의 학생이 열심히 따라 한다.

얼마 전부터 매주 화요일 저녁 열린 예멘 난민들을 위한 한국어 교실에는 7명에서 13명이 참여한다. 대부분 10대 청소년들이다.

맨 앞자리에서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따라하는 이, 뒷자리에서 차분하고 묵묵하게 노트를 채우는 이들의 모습은 한국의 여느 고등학교 교실과 다르지 않다. 취재에 동행한 이들과 수업 중에 들어섰지만 불편해 하지 않고 반가운 눈빛을 주더니 옆에 앉아 함께 글자를 읽어 주자 무척이나 좋은 표정이다.

7시가 조금 지났을 때, 휴대폰 알람이 ‘아잔’(이슬람교에서 기도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처럼 울렸다. 해 뜨기 전부터 해 지기 전까지 하루 5번 드려야 하는 그들의 마지막 기도 시간이지만, 잠시 망설이던 휴대폰 주인은 수업을 방해할 수 없다는 듯 슬며시 알람을 껐다.

수업이 끝나자 이들은 스스럼없이 낯선 방문객의 이름을 묻고 자신의 이름을 알려 준다. 17살이라는 알리는 한국어가 어렵지 않으냐고 묻자, “하나도 어렵지 않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의사소통을 제대로 하고 싶다는 의지가 큰 때문이다.

한국어 교실 강사 김수홍 씨는 서울에서 제주로 귀촌해 조천 성당 앞에 산다. 천주교 신자도 아니고, 한국어를 누구에게 가르쳐 본 적도 없지만, 성당에서 예멘 난민들을 위한 한국어 교실을 연다는 소식에 망설이지 않고 지원했다며, “난민들을 위해서 무엇이라도 할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7명의 예멘 학생들은 다음 주에 또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삼삼오오 숙소로 돌아갔다.

제주 조천 성당에서는 매주 화요일 예멘인들을 위한 한국어 교실이 열린다. ⓒ정현진 기자

“우리는 평화를 원하는 무슬림입니다”

제주 동문 성당에는 4명의 예멘인이 살고 있다.

각 성당과 신자들에게 난민을 받아들여 달라는 제주교구의 요청에 따라 다른 임시 숙소에서 묵고 있던 난민 네 명을 데려왔다.

이들을 찾아갔을 때, 4명 가운데 2명은 일을 하러 나갔고, 두 명은 남아 자신들이 더 편하게 쓸 수 있도록 건물을 보수하는 공사를 돕고 있었다.

압둘과 자심. 나이도 출신 지역도 직업도 달랐던 이들은 동문 성당에서 처음 만났다.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느냐고 청하자, 흔쾌히 허락한 이들은 먼저 자신들의 외국인 등록증을 보여 준다.

영어가 서로 서툰 탓에, 휴대폰 통역 프로그램으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스마트폰은 언어가 통하지 않는 타국에서 정보를 얻고, 가족의 소식을 듣고, 의사소통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도구였다.

자심은 무엇보다 가족들이 너무 걱정되고 보고 싶지만, 당장 한국으로 데려오기 힘들 것 같다며, “지난 두 달간 여동생과 연락이 갑자기 끊겨 너무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얼마 전 다시 연락이 됐다”고 했다.

압둘과 자심은 예멘에서 겪은 내전의 트라우마가 깊어 보였다. 밤마다 폭탄이 떨어지는 상황, 그 속에서 울던 가족과 어린 딸들의 목소리가 떠올라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거나 울면서 잠을 깬다고 했다.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빨리 한국어를 배워서 한국과 한국인들을 더 잘 이해하는 것, 그리고 일을 찾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가장 힘든 것도 언어가 통하지 않는 것과 그나마 가져온 돈이 떨어져 가는 것이다.

그들은 한국인 일부가 자신들을 두려워하거나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을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하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만났던 한국인들이 우리에게 해 준 것처럼 우리도 그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며, “우리는 평화와 안전을 위해 이곳에 왔고, 평화롭게 살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예멘을 떠난 이유, 그리고 지금 한국에서 가장 바라는 것이 “평화”라고 말하던 끝에, 압둘이 말했다.

“우리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우리는 무슬림입니다.”

이날 한국어 수강생들은 뜻하지 않은 손님들에게 개인교습을 받았다. ⓒ정현진 기자

임문철 신부, "난민 통해서 참 그리스도인의 길을 배우고 있다"

동문 성당 임문철 신부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교구 차원에서도 지원을 결정했고, 각 성당에도 난민을 받아들여 달라고 요청해, 아무런 주저없이 받아들이기로 했다며, 현재 난민들을 위해 시설을 고친 뒤에는 좀 더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문 성당 신자 가운데는 8개월 된 아이와 두 부부에게 자신의 집을 내어준 이들이 있다. 이들은 성당 모임이나 야유회에도 난민 가족을 초대하며 함께 지낸다. 임 신부는 이들 가정을 이야기하면서, “앞으로 헤어지게 될 텐데, 그때를 생각하면 벌써 서운해서 눈물이 난다고 한다. 계속 같이 살고 싶어 한다”고 전했다.

임 신부는,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지만 난민에 대해 불안해 하는 이들이 있고, 그 감정 역시 이해한다”며, “하지만 우리 성당만 해도 뭔가 열심히 하려고 하고, 갚으며 살려고 하는 난민들의 모습을 보고 겪으면서 그런 불안감은 조금씩 사라진다”고 말했다.

또 그는, “불안한 마음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불안 때문에 두려워서 해야 할 일을 못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태도가 아니”라면서, “난민들로 인해 신자들 역시 난민을 이해하고, 친교를 나누고, 참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동문 성당 고병하 사무장은 매일 이들의 생활을 살펴주고 있다. 그는 “직접 만나 보면 별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불편해 하는 시각을 걱정했지만 그렇다고 갈 곳 없는 사람을 내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예의도 바르고 착한 이들이다. 먼저 할 일을 찾아서 성당 청소도 한다. 또 함께 밥 먹는 것을 좋아해 같이 밥을 먹자고 청하기도 한다”며, 신자들도 반찬을 나누거나 그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사 주고 후원금을 전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성당 신자뿐 아니라 동네 주민들의 시선도 처음엔 불편했지만, 그들이 잘 지내는 모습을 대하니 점점 바뀌고 있다며, 조만간 함께 마을 청소도 하면서 주민들과 인사할 기회를 만들 생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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