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문화 영화 주말영화
걸작 '버닝', 영혼을 불태우는 분노[주말영화 - 정민아]
'버닝', 이창동, 2018. (포스터 제공 = 파인하우스필름)

'버닝'은 칸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은 '시' 뒤로 이창동 감독이 8년 만에 내놓은 신작으로 올해 칸 경쟁부문에 또 올랐다. '밀양'의 여우주연상, '시'의 각본상에 이어 이제는 그랑프리 차례라는 기대감으로 충만했다. 이창동의 연출력은 그동안 만든 5편의 비범한 작품들로 증명이 되었고, 할 말은 한다는 논란의 배우 유아인에 대한 호불호가 어떻든지 간에 연기력 하나만큼은 깔 데가 없다. 명감독과 명배우, 게다가 원작도 무라카미 하루키라지 않나. 칸영화제 공식 소식지인 ‘스크린데일리’의 4점 만점 평점에 최고점인 3.8점을 받았고, 로튼토마토에서는 신선도 100퍼센트, 그리고 외신의 극찬으로 인하여 이번만큼은 국내 언론의 설레발이 아닐 것이라는 기대로 불타올랐다.

국뽕으로 차올라 올림픽 금메달을 기다리는 심정처럼 기다린 그날, 본상 수상은 불발되었고, 번외상인 국제비평가연맹상과 미술상을 차지했다는 소식이 들렸지만, 만족스럽지가 않다. 그러면 그렇지, 뭐. 너무 오래 메가폰을 놓은 감독이라 '밀양'과 '시'에서 그의 전성기가 끝났을 거라는 생각으로 '버닝'을 보러 갔다.

표면적으로는 삼각관계 미스터리 멜로드라마다. 이창동 감독의 작가적 스타일 위에 장르적 관습을 포개 놓았다. 기댈 부모가 없고, 돈도 없고, 현실의 무게감만 잔뜩 짊어진 청년 종수가 우연히 어릴 적 친구 해미를 만나 관계를 맺는다. 갑자기 둘 사이에 차고 넘치는 돈 때문에 놀고 먹을 궁리만 하면 되는 벤이 나타나고, 종수와 해미의 관계는 서먹해진다. 삼각관계에서 종수는 불안감과 시기심을 느끼고, 미스터리한 인물 벤을 둘러싼 음산한 기운이 감돈다. 표면적 이야기 자체도 흥미롭기는 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스토리가 말하지 않은 것, 즉 심층부에 엄청난 은유와 상징이 숨겨져 있다는 점이다.

'버닝'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파인하우스필름)

벤이 말하는 메타포, 종수가 말하는 개츠비, 해미가 말하는 그레이트 헝거, 이 단어들은 21세기 대한민국을 버텨 내야 하는 청춘들이 보는 세상이다. 낡은 트럭을 타고 배달 일을 해야 하는 종수, 그리고 단기직 행사 모델을 뛰며 카드 빚에 허덕이고 5평 원룸에 살지만 아프리카 여행은 떠나는 해미, 그 둘은 자기 삶을 책임져야 하며 외톨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며, 각자 소설가와 여행이라는 현실에 맞지 않는 꿈을 꾼다. 그래서 맺게 된 사랑은 외롭고 불안한 하층민 청년들의 연대의 의미이기도 하다. 여기에 갑작스레 등장한, 포르셰를 타고 온 검은 머리 외국인 벤은 그들의 삶을 동정하거나 경멸하지 않는다. 벤은 해미와 종수를 친구로 받아들이지만, 거기에는 연대의식이나 정서적 공감 따위는 없다.

노는 게 취미인 벤과 그의 친구들의 환심을 사고 싶은 건지, 그들에게 꿀리지 않으려는 자존심 때문인지, 해미는 케냐에서 봤던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조잘댄다. 배가 고픈 리틀 헝거가 아니라, 삶의 의미를 찾아 헤매는 그레이트 헝거를 추구하는 해미의 아프리카 춤은, 그들이 보기에는 애완묘의 재롱 같은 것일 뿐이다. 그러나 세상에 너무나 많은 개츠비 사이에서 모멸감을 느끼는 종수는 할 게 없고, 세상을 아직 몰라서 소설을 쓸 수 없는 나약한 관찰자다. 메타포로 자신의 비밀을 종수에게 말하는 벤은 심장이 뛰는 느낌을 위해서 정기적으로 어떤 불경한 제의를 행한다. 종수가 벤의 메타포를 알아챈 순간 그는 세상의 모순과 이치를 깨닫게 되고, 그리고 소설을 쓸 수 있게 된다.

'버닝'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파인하우스필름)

교훈을 주는 이야기는 동화지만, 모호함과 미로로 가득한 이야기는 우화가 되며, 그것이 바로 예술이다. 미로를 헤집고서 상징과 은유를 포착하는 순간은 지적 기쁨을 만끽하는 순간이며, 그 순간들의 쌓임이 예술의 가치가 된다. '버닝'은 비참한 사회의 현실을 비틀어서 영화적 장치로 곳곳에 숨겨 놓은 걸작이다.

'버닝'은 그 자체로 경탄하고 말았다. 배우에 대한 호감도나 여성 캐릭터의 전형성 논란 때문에 영화가 가진 폭발적 에너지를 지나치지 말길 바란다. 정치적으로 일본 패싱을 고소해 하는 분위기인 터라, 일본 영화의 칸 그랑프리 소식이 더 좌절되게 느껴진다. 하지만 왠지 내년 봄 오스카 시상식은 '버닝'을 외면하지 않을 것 같은 근거 없는 희망이 느껴진다. 영화 마지막의 비극이 희망의 메타포였던 것처럼.

 
 

정민아(영화평론가, 성결대 연극영화학부 교수)
영화를 통해 인간과 사회를 깊이 이해하며 
여러 지구인들과 소통하고 싶어하는 영화 애호가입니다. 
Peace be with You!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