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영화 - 정민아]

'살아남은 아이', 신동석, 2018. (이미지 제공 = 아토ATO)

의찬이라는 18살 아이가 죽었다. 그 아이는 친구를 구하고 대신 희생되었다. 아이는 의사자로 지정된다. 아버지는 보상금을 장학금으로 전액 기부하고, 명예로운 죽음을 기리는 활동으로 슬픔을 극복하려고 한다. 어머니는 아들과 관련된 기억들을 하나하나 떠올린 뒤 정리하는 것으로 슬픔을 이겨내려고 한다. 둘은 둘째를 가지자고 한다.

어느 날 아버지는 아들이 구해 낸 아이가 궁금해졌다. 홀로 살아가고 있는 기현이라는 아이는 그날 이후 학교를 그만두고 돈 버는 일에 뛰어들었다. 그러던 중 배달 일에서 해고되자 막막해진 아이를 돕기 위해 아버지는 그 아이에게 인테리어 기술을 가르치기로 한다. 그 아이는 시큰둥하다. 아버지가 떠난 아들을 대신하여 그 아이의 후원자가 되기를 자처해 보아도 아이는 탐탁지 않은 태도로 일관한다. 어머니는 그 아이를 마주치는 것이 싫지만 점차 남편을 따르는 아이를 보며 웃음을 되찾기 시작한다.

여기까지는 아들을 잃은 부부와 살아남은 아이, 아픔을 가진 인물들이 유사 가족 관계를 만들어 가는 드라마로 흘러간다. 그러나 어느 순간 영화는 진실을 둘러싼 공방과 진실을 대면한 뒤에 남겨진 사람들의 문제로 방향이 바뀐다. 평범해 보이던 드라마는 미스터리로 변하며 결말까지 긴장감을 놓을 수 없이 팽팽한 감정의 대립으로 힘 있게 휘몰아친다.

사건은 기현이란 아이가 죄책감을 견디지 못해 고백한 이후 벌어진다. 모든 것은 거짓말이에요! 의찬이는 나를 구하고 희생한 것이 아니예요, 라는 고백 이후 의찬의 부모는 새로운 전쟁을 시작한다.

'살아남은 아이'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아토ATO)

사건 현장에 함께 있던 친구들의 침묵과 아이 부모들의 과도한 보호, 증언이나 증거물 수집에 적극 나서지 않는 경찰, 시끄러워지는 것이 부담스러운 학교 등, 세상 모두가 부부를 등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모두가 좋게 좋게 덮고 가고자 할 때 진실을 이야기하는 유일한 자인 기현만이 죄책감에 힘겨워 하고, 사건의 진실을 놓고 모두가 얼굴을 돌리자 지독한 외로움을 느낀 부부는 더 큰 사건을 준비한다.

영화는 죽음 그 자체나 분노로 인한 폭력, 고통으로 인한 흐느낌과 몸부림을 담지 않은 채, 시시각각 변하는 인물들의 감정의 파고를 끈질기게 파고든다. 놀라운 데뷔작이다. 부산국제영화제,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초청 상영된 독립영화로 신예 신동석 감독의 힘 있는 연출력이 돋보인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세 주요 인물을 연기한 최무성, 김여진, 송유빈의 감정을 숨기듯 쏟아내는 현실감 있는 연기가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다.

이 영화를 보며 세월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사건을 둘러싸고 디테일하게 벌어지는 작은 일상들은 지난 몇 년간 우리가 숱하게 보아 왔던 일들이다. 보상금 얼마 받았어? 이제 훌훌 털고 잊어버려, 아이 잃고 저렇게 웃어도 되는 거야? .... 위로라고 보내는 생각 없는 말들은 부부를 더욱 위축시킨다. 그나마 진실을 알아서 한이라도 덜고 싶지만, 그마저도 도와주지 않는 현실에서 이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이라는 것이 별로 없다.

'살아남은 아이'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아토ATO)

이 영화를 두고 영화적 재미를 말하는 것 자체가 미안하게 여겨진다. 죽음을 둘러싼 진실 여부가 아니라,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으며 살아남은 자들이 어떻게 충분히 슬퍼하고 애도한 후 다시 삶을 이어 나갈지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포스트 세월호 영화로 훌륭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비극적 사건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감정의 파고를 다루는 영화라 무겁고 버거울 것이라는 인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살아남은 아이'는 초반의 관계의 드라마에서 중반 이후 미스터리 전개가 역동적으로 펼쳐지며 영화적 흥미로 무장한 작품이다.

폭발적인 마지막 장면이 끝난 뒤 관객은 쉽사리 이 영화를 잊기 힘들 것이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되 이후의 삶과 현실을 쉽게 말해선 안 된다. 충분히 애도하고, 충분히 연민할 때 삶은 다시 시작될 수 있다. 영화는 절망 이후에도 희망이 피어나며, 사람이 희망임을 말한다. 그래서 슬픔 뒤에 버거움이 남는 것이 아니라 슬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정민아(영화평론가, 성결대 연극영화학부 교수)
영화를 통해 인간과 사회를 깊이 이해하며 
여러 지구인들과 소통하고 싶어하는 영화 애호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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