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영화 - 정민아]

'소공녀', 전고운, 2018. (포스터 제공 = 광화문시네마)

귀엽고, 사랑스럽고, 안쓰럽고, 애처롭다. ‘소공녀’를 보며 느껴지는 이 아이러니한 감정들의 덩어리는 영화가 바로 지금 도시에 사는 청춘의 초상이기 때문이다. 대도시가 주는 자극에는 재미도 있고, 고통도 있으며, 좌절과 희망이 수시로 오간다.

‘소확행’, 작고 확실한 행복을 챙긴다는 것. ‘소공녀’는 소확행 영화다. ‘리틀 포레스트’의 계보를 이어가듯 느리고 작게 나만의 행복을 만들어 간다. 그러나 ‘소공녀’는 더 현실적이고 더 치열해서, 더욱 사랑스럽다.

영어 제목은 ‘Microhabitat’, 즉 미소 서식환경이라는 뜻이다. 이는 특정한 생물체나 미생물이 사는 국소지역을 의미하는데, 애벌레나 이끼가 죽어가는 통나무 귀퉁이에서 사는 식이다. 동화 ‘소공녀’ 속 세라가 가난해도 품위를 잃지 않는 귀족의 삶을 추구하듯이, 영화 ‘소공녀’ 속 주인공 미소(이솜)는 낡은 옷을 입고 있어도 작은 행복을 통해 자존감을 버리지 않는다.

그녀가 가진 작은 행복은 별 게 없다. 하루 한 잔의 위스키와 담배 한 갑, 그리고 사랑하는 남자친구 한솔(안재홍), 딱 세 가지다. 작게 즐기는 삶 속에서 신비롭게 번지는 미소가 아름다운 여성 미소는 직업 가사도우미다. 겹겹이 입은 두툼한 옷매무새 위로 담배를 넣은 작은 백과 청소 용구를 담은 에코가방은 그녀에게 필수품이다. 가사 일에서만큼은 프로라서, 전동 솔과 걸레, 먼지떨이는 그녀의 필수품이다.

지금과는 사뭇 다른 사회 분위기였던 서슬 퍼렇던 2016년이 밝아오자, 담뱃값이 대폭 오르고 월세도 따라 오른다. 담배를 끊느니 집 없는 삶을 선택한 미소는 자발적 홈리스가 되기로 한다. 그리고 보물상자 안에 간직해 놓았던 사진 속 친구들을 찾아 나서는 여정을 시작한다. 대학을 그만두었지만, 그 전까지 록밴드 생활을 해 왔던 터라 친구도 많다. 홈리스가 된 게 아닌, 서울을 여행하는 중인 미소는 커다란 트렁크에 청소가방을 메고서 친구들을 하나씩 방문한다.

'소공녀'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광화문시네마)

밴드 생활을 접고 이제 각자 생활인이 된 친구들과 미소의 거리는 멀고도 멀다. 대기업 사원이 된 친구, 시부모와 남편 뒷바라지에 지친 친구, 이혼 당하고 대인기피증이 온 후배, 여자 구경해 본 지 오래인 노총각 선배, 부자 남편을 만나 그에 맞추고 살아야 하는 선배. 방문 선물로 계란 한 판 손에 들고, 친구들이 한 밤 재워 주면 자신의 재능을 살려 청소와 밥하기로 보답한다.

그러나 어느 곳 하나 오래 머물 곳은 없다. 돈, 결혼, 직업 등 현대 도시인이 쉬이 성공이라 생각하는 그것에 매달리며, 그들의 입장에서 바라본 미소의 모습은 한없이 한심해서 한마디씩 보태기 마련이다. 돈이 없고, 결혼할 생각이 없고, 직업적 안정성을 추구하지 않은 채, 담배 한 입, 위스키 한 모금, 가난한 남친과의 헌혈 데이트가 집보다도 소중해서 마냥 즐거운 미소는 세상의 ‘상식적’(?)이라는 시각에서는 한참 부족해 보인다.

위스키 한 잔 가격은 곧 오를 것이고, 일당은 오르지 않고,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 가사도우미를 둘 수 없게 되면 미소가 이 행복한 생활을 더 이상 유지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제대로 된 직장을 가지거나 시집을 가서 남들처럼 안정된 생활을 가지라고 응원하기는 싫다. 겹겹이 입은 옷과 손에 든 먼지떨이, 약을 안 먹어서 하얗게 세어 버린 새치머리가 너무 멋져 보인다면 철없는 낭만일까, 아님 어른으로서의 무책임일까.

'소공녀'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광화문시네마)

‘소공녀’의 미소는 한국영화에서 없던 캐릭터다. 오래된 동화를 비틀어서 한국적 상황에 적용하고, 청춘들의 고난을 블랙유머로 승화하는 솜씨는 신예 여성감독 전고운의 손에서 완성되었다. 지난해 부산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마리끌레르영화제 등을 돌며 화제가 되었던 독립영화로 여성 관객의 세밀한 감정을 톡톡 건드린다.

가난한 청춘을 둘러싼 수많은 사회적 이슈들이 블랙코미디의 틀 안에서 하나씩 차례차례 부각된다. 가난해서 분노하고 좌절하는 게 아니라, 가난해서 소박한 행복을 더 잘 가꾸는 젊은이라니. 지난 보수정권 시기 ‘부자되세요’, ‘부패하고 유능한 보수가 낫다’ 담론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남은 상처들을 살포시 쓰다듬는 영화다. 돈이 아니고 사람이란 말이다.

 
 

정민아(영화평론가, 성결대 교수)
영화를 통해 인간과 사회를 깊이 이해하며 
여러 지구인들과 소통하고 싶어하는 영화 애호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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