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개헌과 주거권' 토론

"주거권의 구체적 실현을 위한 국가의 의무 헌법에 명시해야"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가 ‘개헌과 주거권’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헌법상 주거권 명시의 중요성을 확인했다.

26일 열린 토론회에서는 이강훈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와 이원호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이 발표를 맡아 헌법상 주거권 보장의 법적 중요성과 주거권 보장의 의미에 대해 살폈다.

이강훈 변호사에 따르면, 현행 헌법은 여러 조항에 걸쳐 주거권을 보장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주거에 관한 권리를 명시적으로 선언한 법률 규정은 2015년 제정된 주거기본법 이전에는 없었으며, 주거권 관련 규정은 개별법에 흩어진 형태로 존재한다.

이 변호사는, 2015년 주거기본법 제정 당시 주거권을 도입하면서 주거에 관한 권리는 법적 개념으로 명시적 승인됐지만, 국제사회에서 논의되었던 ‘적절한 주거’ 등 주거권에 대한 구체적 내용을 담지는 못했다고 지적했다.

주거권에 대한 국제규약은 1966년 채택, 1976년 발효된 ‘유엔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규약’으로 한국에서는 1990년 국회 동의로 조약에 가입해,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갖는다.

이 규약의 제11조 1항은 “이 규약의 당사국은 모든 사람이 적당한 식량, 의복 및 주택을 포함해 자기 자신과 가정을 위한 적당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와 생활조건을 지속적으로 개선할 권리를 갖는다”고 인정한다. 또 “당사국은 이 권리의 실현을 확보하기 위한 적당한 조치를 취해야”한다고 규정한다.

이 변호사는 “권리를 선언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를 실현할 구체적 정책 수단을 제시함으로써 실제 주거권 실현을 요구하고 주거권이 침해될 때, 위헌적 침해 상태를 배제하고 주거권 보장을 실현할 헌법적 수단이 국민에게 제시되어야 진정한 권리가 된다”고 강조했다.

헌법개정을 앞두고 정부와 국회, 시민사회단체와 법조계 등은 주거권을 보다 구체적으로 명시하기 위한 시안을 마련했다.

먼저 문재인 정부는 개정 발의안에 주거권과 관련, “모든 국민은 쾌적하고 안정적인 주거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제35조 4항)고 규정했다. 앞서 제안된 국회 헌법개정 특별위원회 자문보고서도 “모든 국민은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했다. 민변은 “모든 국민은 쾌적하고 안정적인 주거생활을 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는 국민에게 부담 가능한 주거를 공급할 의무를 진다”고 안을 제시했다.

이 변호사는 주거권과 관련된 헌법 개정은 “주거권 규정의 포함 여부도 중요하지만, 이를 실현할 수단 확보가 훨씬 중요하다”며, “주거권은 기본적 인권 보장의 ‘상징’으로 헌법에 포함되는 것만으로는 현실에서 주거권을 개선할 수 없다. 주거권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그 권리실현의 수단을 명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모든 국민은 부담가능하고 적절한 주거에서 안정적으로 생활할 권리를 가진다. 이러한 권리 실현을 위하여 국가는 최저주거기준 등 적절한 주거 보장을 위한 기준을 마련하여 시행하고 토지와 주택의 투기 억제와 토지 이용의 규제, 주택 임차인 등의 거주 기간의 안정 확보와 주택 임대료의 급격한 인상 규제 등 부담가능하고 안정적인 주거 조건의 형성을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하며, 국가와 지방정부는 공공임대주택 등의 공급과 주거비 보조 등 주거 복지 정책을 실시해야 한다.”(개정 헌법 주거권 수정안 예시)

4월 26일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가 '개헌과 주거권'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정현진 기자

“헌법은 우리 자신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가 원하는 우리 집의 모습을 담은 것이다” (에이빈 스미스)

이원호 연구원은 “개헌은 지금까지의 삶을 바꾸는 기회이며, 주거권은 그 가운데 ‘삶의 자리’ 문제”라며, “통계적으로는 주택 공급부족의 시기를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 삶의 자리는 불안하며, 소득과 지역, 점유형태 등은 주거 안정성의 위협을 느끼는 가구가 확대되지만 정부의 주거정책은 이들을 제대로 포괄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주택의 상품화가 주거권을 심각하게 훼손해 왔다며, “상품화된 주택은 부동산 시장의 변화라는 조건에 따라 더 이상 청년, 가난한 사람들이 소유할 수도 안정적으로 점유할 수도 없는 재화가 됐다. 또 주거를 둘러싼 세대별, 계층별 이해관계의 대립도 갈수록 커진다”고 걱정했다.

이원호 연구원에 따르면, 사회안전망이 없는 낭떠러지 사회에서 가난한 저소득층의 주거비 부담 문제는 심각한 상황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0-16년 사이 전체 가구의 20퍼센트에 해당하는 소득 1분위 가구의 소득대비 주거비 비율은 50퍼센트 내외로 정상적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다. 이같은 문제는 점점 중산층 가구까지 확대됐다.

유엔 2017년 경제적,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위원회는 주거권과 관련해 한국 정부에 낸 최종견해에서 “당사국(한국)의 주거 정책이 홈리스에 대한 장기적 해결책을 제공하고 있지 않으며, 적절치 않은 거처, 높은 주거 비용, 강제 퇴거에 대한 적절한 세입자 보호 장치 부족에 우려한다”며, “홈리스에 대한 장기적 해결책, 사회주택 등 적절하고 부담가능한 주택 이용 가능성 증대, 주거비 규제 방법 도입, 임대차 계약 갱신 제공, 퇴거에 대해 상담받을 수 있는 권리와 절차상 보호장치 등을 모든 집단에게 제공” 등을 권고했다.

이원호 연구원은 “그동안 모든 국민은 거주와 이전의 자유를 가진다”는 헌법의 자유권적 규정 정도만이 (주거권을 침해당한 이들의)법적 언어였다며, “주거권의 현실이 불안을 넘어 위험이 된 상황에서 주거권을 사회적 기본권으로 헌법에 명시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며, 주거권 보장이 국가의 적극적 개입이 필요한 의무이자, 사회 구성원들이 사회적 권리로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을 헌법에 명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이 연구원은 “정부 개헌안에서 의미 있는 것은 행복추구권, 평등권, 생명권 등 기본권과 관련된 주체를 ‘국민’에서 ‘사람’으로 확대했다는 점”이라며, “그러나 사회권적 성격이 강한 권리에 대해서는 여전히 주체를 ‘국민’으로 한정하고 있고, 주거권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특히 이주노동자들의 주거환경 문제가 심각하고 사망사건까지 발생하고 있다며, “적극적 권리인 사회권의 영역에도 그 주체를 국민이 아닌 ‘사람’으로 확대하는 부분은 더 적극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그는 “우리의 삶을 바꾸는 것이 법의 문구는 아니며, 삶의 자리에서 박탈당하고 있고 주거를 보장받지 못하는 이들의 ‘몫’소리가 삶을 바꾸는 길”이라며, “삶을 바꾸기 위한 헌법 개정은 그 몫 없는 이들의 목소리를 모으는 것에서 가능하다. ‘모두를 위한 주거’라는 권리에 대한 논의와 목소리가 활발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두 발제에 대한 토론에는 김용창 교수(서울대학교 지리학과), 박문수 신부(예수회), 서종균 박사(서울주택토지공사), 오훈 위원장(주거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이 참여했다.

김용창 교수는 “사회권으로서 주거권의 헌법 명시가 갖는 의미는 인간다운 생활 보장을 국가에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는 것이며, 국가의 개입 의무를 명시하는 것”이라며, “주거권이 인간 존재의 기본적 권리라는 것을 확립하고 이에 근거해 권리를 실현하는 것은 근대 국민국가와 정상국가의 실제적 완성이다. 또 그 대상을 국민이 아닌 ‘사람’으로 규정하는 것은 문명국가 발전의 중요한 사항”이라고 강조했다.

박문수 신부는 주거권 운동과 관련한 국제적 차원의 연대와 성찰을 제시했다.

박 신부는 1990년대까지 주거권을 보장했지만, 쿠데타와 소수민족 독립전쟁 등 비극적 갈등을 극복하지 못해 강제철거 문제를 겪게 된 파키스탄과 스리랑카의 예를 제시하면서, “주거권은 다른 인권과 깊이 관련되어 있어서 다른 인권과 함께 지켜지거나 함께 유린당한다. 차별을 최소화하고 갈등이 있는 곳에서 화해와 상생을 추진하고, 민족화해와 한반도 평화, 동북아평화를 모두 이뤄야 우리 사회의 인권이 총체적으로 보장된다. 따라서 세계적 차원의 반전 평화운동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서종균 박사는 헌법상 주거권 규정은 상당히 바람직하지만, 주거권 실현 수단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것은 어려움이 있고, 최저주거기준도 주거권의 실행 수단이나 보장의 기준으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권리 보장의 기준이나 그 실행 방안은 다시 논의되어야 한다. 공공임대주택 공급과 주거비 보조의 경우 필요하지만 권리나 의무 규정을 통해 실질적 효과를 볼 수 없다”면서도, “다만 헌법상 주거권 실현을 위해 필요한 조건을 만들어야 할 국가의 의무 규정은, 제도나 환경을 적극 조성할 역할을 명시하고 주거권 실현을 위해 제도적으로 적극 노력을 기울이도록 강조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훈 위원장도 “국가가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조치를 취할 의무를 규정하는 것” 실효성 차원에서 반드시 필요하다며, “오랜 시간 주거권 실현과 보장을 위한 활동 과정에서 주장해 온 실체적 보장과 주거권 실현의 당위성이 포함되어야 한다. 개헌 역시 현재 지적되는 여러 한계를 담고 있다면 사회적 소외와 갈등 해결은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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