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신학자- 데이비드 트레이시]

교회 안과 밖에서 제기되는 여러가지 문제들, 마음 아프고 속상할 뿐입니다. 모두들 다른 입장을 갖고 목소리를 높이는데, 무엇이 옳은지 판단하기는 점점 힘들어집니다. 도대체 현실에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명쾌한 답변을 찾아줄 신학자 어디 없을까요? 사실, 이 질문은 참으로 곤란한 질문입니다. 신학은 원래 모호성을 그 본질로 삼는 학문이기 때문이지요. 하느님의 일에 관한 질문에는 정답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답보다는 질문 자체가 신학에는 더 중요하죠. 답을 내리기를 의도적으로 거부하며,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옳은가, 끊임없이 질문해야 하는 것이 신학하는 이들의 숙명입니다.

이렇듯 불확실해야만 하는 신학이 직설적이고 즉각적인 답을 요구하는 현실과 맞닥뜨려지면서 발생하게 된 현상 중 하나가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양극화 현상이지요. 한 극단에는 신학의 “무능함”에 대해 너무 일찍 실망해버린 나머지 교회를 떠나는 이들이 있습니다. 또 한 극단에는 변화하는 세계에 대한 수용과 성찰을 거부하며 “오직 예수!”만을 외치는 고집불통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양극화, 대화단절 상황 속에서 신학자들은 무엇을 하고, 여러분들은 신학자들에게 무엇을 기대해야 할까요?

▲ 데이비드 트레이시 (David Tracy, 1939-) (사진출처/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오늘 소개할 신학자 데이비드 트레이시 (David Tracy, 1939-)는 이렇게 안팎으로 의사 소통의 가능성을 잃어 버린 그리스도교 현실을 깊게 고민해온 신학자입니다. 트레이시는 미국의 가톨릭 사제이자 조직신학자입니다. 1963년 사제품을 받았고, 1969년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그레고리안 대학(Gregorian University)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 후, 주로 미국의 시카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활발한 저술과 강연활동을 해오고 있지요.

데이비드 트레이시, 답 대신 방법론을 찾아서

트레이시의 주된 신학적 관심은, 진리의 기준이 모호해지고 다양해진 소위 다원주의 시대에 신학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하는 것입니다. 그는 변하는 현실과의 대화를 통해 그리스도교의 신념을 번역하고, 재해석하려는 시도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죠. 그러기에 트레이시는 답 대신 방법론을 제시합니다. 숱한 인간의 경험들 중 교집합을 이루는 공통 경험을 찾아내고, 그 공통 경험에서 산출되는 진리를 한 축, 기독교 신앙을 또 다른 한 축으로 삼아, 서로의 비판적 상관관계를 읽어 내려하는 신학 방법론이 트레이시가 제시하는 대안입니다.

트레이시의 문제의식은 사회정의와 공동선의 문제에 대해 그리스도인의 책임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해방전통의 신학자들과 겹치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어떤 입장을 견지한다기보다, 모든 입장들에 대해 절충적 입장을 취하는 수정주의적 모델(revionistic model)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해방 전통에 서 있는 학자들과 구분됩니다. 여기서 “수정주의”란 수정을 통해 타협을 추구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모든 관점들의 상관관계를 파악하고, 모든 것을 끊임없이 수정해 나가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유비적 상상력

 
트레이시의 저서들 중 특히, 1981년에 출판된 <유비적 상상력: 기독교 신학과 다원주의 상황>(The Analogical Imagination: Christian Theology and the Context of Pluralism)을 함께 훓어볼까요? <유비적 상상력>에서 트레이시는 ‘다원주의적 상황에 신학이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에 대해 질문하며 두 가지 단서를 제시합니다.

첫번째 단서는 그리스도교 전통 안에서 발견되죠. 그리스도교 전통이 이미 다원주의 상황에 대처 할 수 있는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가 갖고 있는 모든 의미의 중심점은 예수 그리스도 사건입니다. 그러나 그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 그리스도교인들은 오래 전부터, “현현 (manifestation),” “선포 (proclamation),” “신비적 혹은 예언적 활동(the mystical/prophetic)”을 통해 다양한 의미의 촛점들을 만들어 왔습니다.

트레이시는 그리스도교 전통 내에 이미 존재하는, 중심점과 다양한 의미체계들 간의 상관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오늘날 다원주의 상황을 이해하는 초석이라 주장합니다. 두번째 단서는 전통 밖에서 전통 안을 바라볼 때 발견됩니다. 이 단서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우선, 진리의 다원화 상황을 받아들이고 직면해야하죠. 그리스도교의 진리가 보편적이고도 절대적인 언어를 입고 모든 이들에게 통용될 수는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죠. 하지만, 인정하는데서 멈추는 것이 아닙니다. 인정한 후에는, 다원주의 상황에서 공통적으로 제기되는 질문들이 그리스도교의 중심적인 사건과 어떻게 연관되는가를 살펴 봐야합니다.

두번째 단서에 대해 좀 더 질문해 봅시다. 그리스도교의 중심적 진리와, 그리스도교 밖의 보편적 진리는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요? 트레이시는 “고전 (the classics)”이라 불리는 텍스트, 사건, 이미지, 인격, 의식, 상징들을 그 연결 고리로서 제시합니다.

수천년 동안 인류의 경험속에서 생산된 어떤 문화적 산물을 우리가 “고전”이라 부를 때, 그 “고전” 속에는 단지 천재성이나 감동 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어떤 보편적 요소가 들어 있다는 것이죠. 고전들을 접하며 우리는 개인적인 경험으로부터 보편성으로 나아가는 통로를 발견하게 됩니다. 고전들과의 대화는, 특히 종교의 고전들(단지 그리스도교의 고전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과의 대화는 기술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지식 너머, 통제 불가능한 어떤 신비로 우리를 인도함과 동시에, 그 경험이 공유될 수 있는 지평을 열어줍니다.

고전이 대화의 전거가 될 수 있는 이유가 또 있습니다. 바로, 철저하게 안정적인 동시에, 철저하게 불안정한 고전들의 속성입니다. 많은 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의식의 공감대를 제공해 왔다는 점에서 안정적이지만, 끊임없이 해석에 열려진 채 수용과 갈등의 역사를 거쳐 왔다는 점에서 불안정하기도 하죠. 고전들은 인간의 갈등 상황에 늘 존재하며, 그 상이한 입장들을 동일한 입장으로 환원시키지 않으면서도 같은 지평에서 만나 함께 이야기할 수 있도록 초대합니다.

신학자, 고전에 대한 해석자

 
고전과의 대화를 통해 경험을 공유하기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파편화한 삶의 정황들, 균열과 반목, 권력의 불균형으로 가득찬 현실은 때때로 대화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죠. 이러한 현실에 책임감을 느끼고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이들이 신학자들입니다. 트레이시에게 신학자는 고전들에 대한 해석자에 다름 아닙니다. 신학자들은 특정한 종교 전통 안에서 안과 밖을 아우르며 신앙의 모험을 하는 자들입니다.

신학자들은 우선 자신들이 속한 그 전통의 언어를 깊이 이해하며 자신들이 속한 공동체에 헌신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해와 헌신의 목적은 자신들 전통의 진리를 변호하고 공고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역으로 그 특수한 진리를 보편적 진리와 만나게 하는 것이죠. 그러기에 신학자들은 이중의 임무를 갖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자신들의 전통과 공동체의 현실을 깊이 연구하고, 자신들이 안고 있는 역사적, 상황적 한계를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전통이 갖고 있는 진리가 보편적 진리와 만나는 접점을 찾아내고 드러내야합니다.

이러한 신학자들이 꼭 겸비해야 할 것이 있으니, 바로 “유비적 상상력 (the analogical imagination)”입니다. 유비는 서로 다른 것들 안에서 닮은 점, 공유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내는 관계성의 언어이지요. 서로 닮은 점을 찾아내는 것 뿐 아니라, 서로 다른 것, 분명한 차이점들을 드러내는 것도 유비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유사한 것들은 서로를 초대하는 기능을 하고, 상이한 것들은 갈등을 일으키고 대화를 촉진하는 기능을 하죠. 따라서 유비적 상상력은, 신학자들이 자신들의 전통과 다른 이들의 전통을 비교하여 닮은 점과 다른 점을 인식하고, 대화가 필요한 부분을 발견하게 하는 힘입니다.

트레이시는 예수 그리스도 사건을 유비적 상상력의 핵심단초로 제시하죠. 성서에 드러난 예수 그리스도 사건은 하느님과 자아, 타자, 세상 사이 유사성과 상이성을 발견하게 하는 최고의 유비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 사건이 우리들 삶과 만날 때 발생하는 긴장 관계 또한 유비적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그리스도 사건은 언제나 이미 우리 삶에 존재하지만 (always-alread within us), 아직 현존하지 않는 (not yet) 사건이라는 의미에서 그렇지요. 그러기에 그리스도 사건은 그리스도인이 스스로를 이해하기 위한 규범으로 기능하는 동시에, 다른 이들에게 자신을 열고 다가서며 대화할 수 있도록 동기를 제공합니다.

트레이시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대화의 동기입니다. 대화를 통해 얻어지는 갈등과 혼란은 지양해야 할 것들이 아니라 추구해야 할 것들입니다. 다른 대화로 이어질 계기를 마련한다는 점에서죠. 신학의 본질적 성격인 모호성을 신비로 승화시키거나 학문의 영역 안으로 가두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모호성을 통해 개방적이고, 지속적이고, 참여적인 대화로 나아가려한다는 점에서 트레이시의 신학은 우리들에게 큰 성찰을 던져줍니다.

참으로 답답하다 한숨만 짓게 되는 요즈음의 현실에는 더욱 더 따끔한 일갈인 듯 합니다. 바람직한 대화의 조건을 마련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세는 신학자들이, 나아가 신앙인 모두가 지녀야할 덕목임을 일깨우기 때문이죠. 우리 모두가 연대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지속적으로 대화에 참여한다면, 희망, 저항, 화합, 그리고 변혁의 가능성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국내에 번역된 트레이시의 책: <다원성과 모호성> (윤철호, 박충일 옮김/크리스천 헤럴드)


▲유튜브 동영상 Father David Tracy Receives The SHU Medal - Part 1

 
 
조민아 교수
미국 에모리대학에서 구성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미셀 드 세르토의 시각을 확대 해석해 중세 여성 신비가 헤데비치(Hadewijch)와 재미 예술가 차학경의 글을 분석한 연구로 논문상(John Fenton Prize)을 수상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