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70주년 기념 학술 심포지엄 1

제주 4.3 70주년을 맞아 ‘제주 4.3의 역사적 진실과 한국 현대사에서의 의미’를 짚는 기념 학술 심포지엄이 22일 서울 명동대성당 꼬스트홀에서 열렸다.

한국 천주교회는 제주교구를 중심으로 제주 4.3 70주년을 맞아 ‘희생 속에 핀 제주 4.3, 화해와 상생으로’를 주제로 삼고 올 한 해 제주 4.3을 추념하는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심포지엄은 그 첫 사업이다.

이번 심포지엄은 천주교 제주교구 제주 4.3 70주년 특별위원회,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와 민족화해위원회가 함께 마련했으며, 제주 4.3의 통합적 의미, 세계보편 모델로서의 제주 4.3, 제주 4.3의 철학적, 역사적 의미 등을 살폈다.

“제주4.3, 그 참혹하지만 인간 존엄을 구한 여정”

먼저 기조강연에서 강우일 주교는 ‘4.3의 통합적 의미’를 당시 역사적 구도와 성경 전승을 통해 설명했다.

“제주 4.3을 성찰하며, 이 사건을 단순히 한국 현대사의 한 귀퉁이에서 일어난 일시적 비극으로 보고, 그에 대한 시시비비를 논하고 사회적 책임을 규명하는 데 그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이제는 4.3 안에서 오랜 민족의 삶의 궤적 속에 숨겨진 더 깊은 내면적 가치와의 연결고리를 발견해야 한다”

강 주교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1919년 3.1운동이 일제의 무력 진압과 검거로 좌초된 뒤, 러시아 혁명을 목격한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조선의 독립과 해방을 추구하던 이들에게 ‘사회주의’는 일제에 대한 투쟁을 조직화하고 새로운 민족주의 국가 수립을 위한 이론과 수단으로 등장했다.

민족운동과 사회주의운동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고, 초기 사회주의 운동은 ‘민족운동의 한 분파’였다.

1945-47년 사이, 제주에는 7만 명의 교민이 일본에서 귀향했다. 이들은 일본에서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을 겪으며 노동현장의 비인간적 처우와 불공정에 대한 인식이 높았다. 민족적 차별을 경험한 이들은 강한 저항의식을 갖고 있었으며, 제주에서 더 강한 해방과 국권 회복의 염원을 키웠다.

그런 가운데 1946년 전국적 대흉년은 인구마저 팽창한 제주도민이 감당하기 어려운 공황상태를 만들었다. 이와 함께 귀향민과 제주도민은 일제와 같은 미군정의 태도를 겪어야 했다. 그리고 이같은 위기 상황은 1947년 3월 1일 제주도민 3만여 명이 참여한 3.1절 기념식에서 폭발한다. 경찰의 발포로 어린이를 포함한 시민 6명이 죽고, 이에 항의한 제주도민은 제주 전역에서 총파업을 시작한다. 당시 총파업에는 경찰도 20퍼센트 참여할 정도였다.

2월 22일 제주4.3 7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강우일 주교가 기조 강연을 맡았다. ⓒ정현진 기자

미군정은 강경 대응에 나서 대량 검거 작전을 시작했고, 급기야, 1948년 4월 3일, 제주 남로당 무장대가 경찰지서를 습격했다. 당시 남로당은 5월 10일 남한 단독 선거를 반대하고 저지하던 이들이었다. 이 사건으로 미군정은 제주를 ‘공산주의 지역’으로 규정했고, 진압에서 ‘토벌’로 작전을 변경한다. 제주도민은 살상의 대상이 된 것이다.

1948년 8월 15일 수립된 이승만 정권은 미군정의 이런 입장을 계승하고, 1948년 11월 17일 제주에 계엄령을 선포한다. 정부가 파견한 대규모 군사력과 우익단체 회원들은 제주에서 대학살에 준하는 작전을 자행했고, 제주도민의 10퍼센트 이상이 학살됐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 따른 4.3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 강우일 주교는 “민족의 독립과 해방, 사회 구조악과 불의에 대한 저항, 인간의 기본적 존엄과 자유, 권리를 향한 장구한 역사의 동력이 작용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강 주교는 탈출기에서 드러난 인간 구원의 역사 속에서 제주4.3의 의미를 발견했다.

그는 히브리인들의 탈출 과정은 ‘이집트로부터 탈출’이라는 오랜 인내와 희생, 고통의 여정이었으며, 새로운 땅으로 옮겨 가는 도중 끊임없는 외부 세력의 도전과 내부 저항에 직면하는 일이었다며, “그러나 그 모든 역경을 극복하고 탈출했던 것은 그들의 고통을 알고, 그 고통에서 이끌어 내려는 하느님의 자비와 구원의 의지를 믿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성서를 관통하는 자비와 구원의 하느님에 대한 믿음은 새로운 위기를 맞을 때마다 상기하고 되돌아가는 신앙의 출발점”이었다며, “이스라엘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시련과 고통을 살면서 보잘것없는 인간 한 사람 한 사람 안에 그들을 극진히 사랑하는 하느님의 빛나는 모상과 영광을 발견했다. 고난의 역사는 인간 안에 하느님의 존엄과 위엄을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말했다.

강 주교는 현대사의 보기 드문 참극인 4.3은 조선 왕조와 일제강점기, 냉전을 거쳐 흐르는 고귀한 역사의 현장이며, 인간의 존엄한 인격과 자유, 평등을 위해 자신을 제물로 바친 순교적 행렬의 연장이라며, “4.3 희생자들은 자신들의 무의미한 것 같았던 고통과 죽음 안에서 이 세상 다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고귀한 인간 생명의 가치를 빛내는 순교적 여정을 겪고 있는, 이 땅의 인간 해방을 위해 자신을 아낌없이 봉헌한 하늘나라의 역군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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