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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독립’만으로 나눌 수 없던 삶“다시 읽는 천주교 미담 1911-1957” 엮고 쓴 김윤선 교수

천주교 미담? 처음에는 책의 제목과 고풍스러운 표지 그림을 보고, 세계 곳곳의 가톨릭교회에서 나온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모은 책인 줄 알았다. 그만큼 들어 본 적이 없는 게 이 ‘미담’이었다.

이 책에 실린 ‘미담’은 일제 강점기에 <경향신문>이 정간 당하고 나오기 시작한 <경향잡지>에 실렸던 글들이다. 더 자세히 말하면 1911년 1월호부터 1957년까지 ‘미담’ 난과 ‘군난(窘難, 박해와 같은 말) 때 미담’ 난에 소개됐던 작품 약 300여 편이다.

천주교 문학 연구자인 김윤선 교수(데레사, 48, 고려대 인문대)가 엮고 해설 등을 쓴 “다시 읽는 천주교 미담 1911-1957”은 미담 작품을 현대 한국어에 가깝게 옮긴 자료집이자 해설서, 연구서다. 서문과 목록, 찾아보기를 합하면 이 책은 1000쪽을 조금 넘는다. 그러나 대개의 미담은 3쪽을 넘기지 않는 짧은 이야기들로 읽기 부담스럽지는 않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서울 노원 성당에서 만난 김 교수에게 이 책에 실린 미담들 가운데 특히 기억에 남고,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이야기를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다. 결론은, 그에게는 이야기 하나하나가 나름대로 가치를 갖고 있기 때문에 욕심 부리지 않고 천천히 한 편씩 읽어 보기를 권하고 싶다는 것이다.

한국 천주교가 잊어 버린 ‘미담’
순교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

김 교수가 본 ‘미담’, 특히 ‘군난 때 미담’은 순교자가 아니며, “죽지 못한, 혹은 죽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한다. 이런 점에서 그는 ‘키가 작아서 치명(순교)을 못함’이라는 제목의 군난 때 미담 1번이 중요하다고 소개했다. 신앙의 자유는 얻었지만 국가를 잃고 식민지 백성으로 살아야 했던 시대, 1910-40년대에 ‘미담’ 연재가 주로 나왔다는 것은 음미해 볼 만한 점이다.

그는 “살아남은 사람들이 어떻게 신앙을 이어갔는지, 신앙 선조들을 기억했는지, 어떤 삶을 살고자 했는지, 좋으면 좋은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그분들의 삶을 우리의 시간으로 호출해야 한다”며, 그것이 “신앙의 유산”이며 “유산을 지키고 풍요롭게 하는 것은 당연히 우리의 몫”이라고 말했다. 조선왕조 박해 시대에 비하면, 일제 강점기의 교회와 신앙생활에 대해서는 연구와 대중적 관심 모두 부족하다는 것이 김 교수의 진단이다.

   
▲ "다시 읽는 천주교 미담 1911-1957". 김윤선, 소명출판, 2016. (표지 제공 = 소명출판)

천주교주교회의가 펴내는 월간 <경향잡지>는 100년 넘게 나오고 있는 한국 최장수 잡지지만, 일제 강점기에 일본의 조선 지배를 인정하고 전쟁 지원을 격려하기까지 했던 교회의 목소리도 그대로 담겨 있다. 교회와 <경향잡지>의 친일 행적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한때 김윤선 교수도 옛 <경향잡지>를 찾아 볼 생각은 거의 하지 않았다고 했다.

도서관에서 호기심으로 펼쳐 본 <경향잡지>, 그리고 거기서 발견한 ‘미담’. 이런 이야기들이 연재됐었다는 것은 김 교수가 한국 문학뿐 아니라 교회에서도 들어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특히 가장 먼저 주목한 미담 1-4번(제목 ‘천주가 위태한 지경에 있는 자를 안위하심’, ‘어릴 때부터 단정한 자는 반드시 구원받음’, ‘체약한 자라도 신덕이 있으면 두려울 것 없음’, ‘깊은 도리는 너무 캐지 말 일’)은 이후 ‘미담’이 주로 다루는 4개 주제를 담고 있다고 김 교수는 해석한다. 국가권력과 신앙, 일상에서의 단정함과 조선국, 여성과 성체, 성인이 그것이다.

미담 1번 ‘천주가 위태한 지경에 있는 자를 안위하심’은 17세기 일본에서 배교를 강요당한 가족의 이야기로, 주인공이 굳센 믿음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자신뿐 아니라 가족 모두를 살릴 수 있었다는 내용이다.

김 교수는 해설에서 “첫 번째 미담이 일본을 배경으로 한 점이 일제 강점기 <경향잡지>가 통제의 주체였던 일본을 의식한 것이라 여겨질 수 있다”면서도, 주인공을 특정 국가의 국민이기보다는 국가권력에 굴하지 않았던 신앙인의 모범으로 강조한 점이 중요하다고 풀이했다. “천주교인으로 산다는 것은 권력을 가진 이들의 길과는 다른 길입니다.”(군난 때 미담 14번 해설)

‘미담’의 상당 부분은 특히 파리외방전교회로 인해 조선과 관계 깊었던 프랑스 등 유럽 교회에서 나온 이야기를 번역, 번안한 이야기다.

반면 1926년 2월 아예 ‘꾸며낸 미담’이라는 제목과 함께 실린 ‘성 요셉의 최후 수단으로 천당에 들어간 가련이’ 이야기(미담 141번)는 독특하다. 대부분의 미담들이 사실성을 강조한 것과 달리, 이 이야기는 진실성을 위해 허구의 문학 속성을 내세우고 있다.

‘가련이’라는 한국식 이름의 주인공은 선행 없이 방종하게 살다가 죽을 때가 다 되어 성 요셉의 은혜를 입어 잘못을 뉘우치고 지옥에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가련이는 생전에 덕행이 없다며 천당 문지기 베드로에게 가로막히고, 지옥에서도 출입을 거부당한다. 결국 가련이의 사정을 들은 요셉이 베드로와 언쟁을 벌이고, 가련이를 들여 보내지 않으면 아들 예수와 아내 마리아를 데리고 천당을 떠나겠다고 협박한 끝에야 가련이가 천당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다.

한편, ‘군난 때 미담’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 교수는 ‘군난 때 미담’을 통해 병인박해 때 신앙 선조들의 삶을 생생히 읽을 수 있고, 이야기 형식으로 우리의 삶을 옮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세례명 ‘도마’(토마스)를 부르지 못하고 “놈아”라고 불렀다는 이야기,(군난 때 미담 3번) ‘구세주의 모친이여’를 ‘구석구석 모친이여’로 들었다는 일화,(10번) 불을 밝히지 못한 채 음식을 마련하느라 걸레를 고기인 줄 알았다는 ‘걸레지짐이’ 이야기(11번)는 박해의 고통 속에서도 선조들이 어떻게 신앙을 지켜 왔는지 보여 주는 “보석 같은 이야기들”이었다.

   
▲ "다시 읽는 천주교 미담 1911-1957"을 엮고 해설한 김윤선 교수. ⓒ강한 기자

일제 비판 한 줄 없는
‘미담’에서 무엇을 건져 올릴까

‘미담’에는 일제 식민 지배의 현실을 직접 비판하는 내용은 없고, 대부분은 미사 참례의 중요성, 성인 공경 등 전통적인 가톨릭 신심을 담고 있다. 오늘날의 독자는 ‘미담’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김윤선 교수는 연구자로서 일제 강점기 <경향잡지>의 ‘미담’에 대해 말하는 것 자체가 “욕 먹을 각오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제 지배의 현실과 맞서는 이야기나 주장이 ‘미담’에 직접적으로 실려 있지 않고, <경향잡지>의 친일 행적은 분명한 기록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미담’을 소개하는 것이 친일을 옹호하는 사람 편에 서는 것처럼 여겨진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김 교수는 ‘친일’과 ‘독립운동’이라는 거대담론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앙의 힘, 순교자가 아닌 식민지 백성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일상 안에서 함께하시는 하느님의 힘이 결국 큰 권력 앞에서도 함께할 수 있는 힘으로 발현됩니다. ‘미담’에는 독립운동 이야기, 식민지 현실을 비판하는 이야기는 하나도 없어요. 독립을, 친일에 대한 거부감을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없을 때, 논설이 아닌 이야기 형식을 통해서 시대의 아픔까지 말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것이 저의 문제의식입니다.”

김 교수는 이야기에는 신문 기사나 논설과는 다른 ‘힘’이 있다고 본다. 그는 “미담을 이해하면 당시 천주교회, 적어도 <경향잡지>의 ‘미담’ 난을 주도했던 사람들이 신앙인들에게 어떤 가치를 전하고 싶어 했는지 가늠할 수 있으며, 반대로 이야기를 통해 그때 신앙인들이 어떤 가치를 체화하며 살아갔는지 가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이야기는 우리의 삶 안에 녹아 있는 “생활한 신덕”을 만나게 해 준다고 김 교수는 표현한다. 모자라든 간절하든 충만하든, 있는 그대로 말이다. (“생활한 신덕”은 미담 97번에 나오는 표현으로 ‘살아 있는 믿음’으로 바꿔 표현할 수도 있다. 김 교수는 이 말이 좋아서 찾아보기에도 담았다고 했다.)

‘미담’ 연재는 1957년 6월 ‘예수성심의 허락하신 은혜’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김 교수는 ‘미담’ 연재는 1950년대에 끝나지만, 그 맥은 1939년부터 연재가 시작된 윤의병 신부의 미완성 순교역사 소설 “은화”, 그리고 해방 뒤 나온 다른 소설들로 이어진다고 본다.

김 교수는 예수의 성심으로 ‘미담’이 끝나는 데도 나름의 의미 부여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담’을 통해 예수의 마음을 느끼고 공감하고 기억하고 배우는 것. 비록 이것이 ‘미담’ 난을 만든 이의 의도는 아니었더라도, 받아들이는 것은 독자에게 달렸다는 것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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