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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6주간의 훈련[서평] “내면의 샘”, 안젤름 그륀, 바오로딸, 2017

올해 사순 시기는 2월 14일 재의 수요일부터 3월 29일 주님 만찬 성목요일 미사 전까지다. 이 시기에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40일 동안 포기와 절제로 자신을 정화하면서 겨울이 가면 새봄이 오듯,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을 맞고 부활 대축일로 새 삶을 연다. 즉 생명으로 피어나는 부활 이후의 일상을 위해 자신을 훈련하는 때이며, 하느님께 열려 있는 존재로 살아가기 위한 준비 기간이다.

“내면의 샘”, 안젤름 그륀, (김선태), 바오로딸, 2017

안젤름 그륀 신부는 “내면의 샘”에서 이 40일을 포기로써 내적 자유를 누리는 때라고 말한다. 과잉문화에 맞서 외적 자극을 줄이고, 단순함을 지향하여 생명의 감각을 강화하는 때인 것이다.

이를 위해 제1주간부터 성주간(6주간)까지 단식, 정화, 수련, 언어, 기도와 연민을 순서로 마음을 살피는 길잡이와 깊은 영적 통찰이 있는 성서 묵상을 담았다. 이 책은 우리 자신 안에 있는 내면의 샘을 끌어올림으로써 더욱 하느님과 사회, 개인 문제들 그리고 생명을 의식하는 삶을 살게 해 주는 데 목적이 있다.

내면의 샘을 찾기 위해선 먼저 단식해야 한다. 단식은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무질서한 생활들을 단순하게 하는 데 도움을 준다. 분주한 활동은 마음, 영혼과 맺는 관계를 잃게 하고 하느님에 대한 감각을 어둡게 하는데, 단식할 때엔 자신과 이웃, 하느님께 보다 깨어 있음으로써 자기 “고유한 욕구와 부정적인 감정, 그리고 전부를 하느님 사랑에 내맡기도록” 이끌리기 때문이다.

첫 1주간에 우리는 이전 생활을 버리고 새 생활을 시작하면서, 낯설고 새로운 자유에 대한 두려움을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자신을 벗는 괴로움 가운데 하느님을 신뢰하며, 그분의 빛과 사랑에 머무르는 것이 여정의 시작과 끝이다.

제2주간부터 자신의 정화에 집중한다. 그동안 주변과 함께 뒤섞인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 느낌들을 잘 관찰하고 바라보면서 그것들을 붙잡아 몸 밖으로 내던지는 시기다. 우리는 자신이 억압하는 바람과 어두운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투사해서 보기를 잘하는데, 투사를 멈추고 자기 자신을 살핌으로써 우리의 고유하고 참된 본질을 발견해야 한다. 하느님의 눈으로 모든 것을 비춰 볼 때 우리는 비로소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의 신비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고 모든 것을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다.

제3주간은 수련에 더욱 힘쓸 때다. 올림픽 선수들이 혹독한 훈련으로 경기를 준비하듯 그리스도인도 “내적 자유와 하느님을 향한 개방, 고유한 본질의 실현 등에 이르기 위해” 일상에서 자신을 통제하는 법을 익힌다. 삶에서 포기해야 할 것을 포기할 줄 알 때 더 집중적으로 즐길 수 있는데, 이는 단순해짐으로써 더 순수하게 본질을 지나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의 무질서한 욕구들을 복종시킴으로써 “항상 더 하느님께 마음을 열도록” 해야 한다. 하느님 곁에 사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이 여기에 있다.

안젤름 그륀 신부. ⓒ강한 기자

제4주간은 특별히 언어에 유념하는 시기다. 의식적으로 언어를 훈련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데, 모든 말은 마음과 생각에서부터 나오고, 나쁜 언어는 정신을 오염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에 대한 비방, 단죄를 조심하고 나쁜 말에 귀를 열지 말며, 모든 원한과 시기에서 마음을 정화”해야 한다. 마음의 눈부터 깨끗하게 하지 않으면 다른 이의 들보가 크게 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륀 신부는 “내가 끊임없이 어떤 사람에 대한 말을 한다면 결국 나 자신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말을 신중히 하고 다른 이를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제5주간은 하느님을 향해 마음을 여는 기간이다. 하느님을 만나 그분의 자비와 사랑에 깊이 머물 때 흐르는 눈물은 영혼을 정화하고 이웃에게 마음을 여는 기도를 하게 한다. 이 기간에 우리는 예수님이 친구로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시는 것과, 아버지 하느님께서 성령을 주심으로써 당신 사랑에 참여하게 해 주시는 은총을 받는다. 이 체험은 우리로 하여금 자비와 사랑 안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 아파하는 인간에 대한 공감과 연민”을 갖게 한다. 이 사랑과 연민으로 살아가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다.

제6주간인 성주간은 예수님 수난에 몰두하는 시기다. 예수님은 우리가 체험하는 고통의 모든 단계를 겪으셨기에 우리는 고통 가운데서 혼자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수난 묵상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의 고통을 바라볼 수 있게 되고, 그 고통과 화해할 수 있게 된다. 예수님 안에서 고통의 의미를 깨달을 때, 우리는 자신에게 닥친 시대의 환난에서 부활에 이르고, 하느님의 부재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얻는다. 그러면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고통을 지고 예수님과 함께 이 여정을 똑바로 걸을 수 있다.

죽음의 시기를 지나 주님 부활 대축일을 맞을 때 우리는 건너감과 넘어감을 통해 이 세상에서 아버지의 세상으로 간다. “우리는 도대체 어디로 가는가? 언제나 집으로 간다.”(시인 노발리스) 모든 걸음은 마지막 집인 하느님의 세계로 건너가는 것이다. 거기에 우리 중심에서 용솟음치는 생명의 근원이 있고, 그 샘으로부터 삶을 생생하고 풍요롭게 살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우리는 하느님께 접붙여질 때에 자신뿐 아니라 사회와 공동체도 꽃피우게 한다. 사순 시기 동안의 내면을 향한 훈련 여정은 나와 공동체를 위한 사랑의 쇄신인 것이다.

긴 겨울이 곧 지나간다. 오늘부터 시작하는 사순에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나의 무질서한 삶을 정리하며 내면에 계시는 하느님을 만나러 가자. 긴 여정을 지나 거기 닿을 때 우린 샘에서 부활하여 새날을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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