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셀름 그륀 신부 내한, ‘심리학과 영성의 만남’ 강조

▲ 안셀름 그륀 신부
영성심리 상담의 대가인 안셀름 그륀 신부(독일 베네딕토회)가 문제 해결에 기도가 만능이라는 일부 오해를 해명하며, 더 풍부한 영성생활을 하는 데 심리학이 도움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륀 신부는 27일 서울 정동제일교회에서 열린 프란치스칸 영성학술발표회에 참여해 ‘전인적 치유의 길―영성심리학적 관점’을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이 자리에서 그륀 신부는 “영성생활에 심리학적 방법을 도입하는 것은 심리학이 우리 자신의 ‘진면목’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인정하게 해 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수도자나 사제들 중에는 심리학에 대해 전혀 듣지도,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은 ‘기도하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분들은 자기 내면의 진면목을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요한 8,32)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편 그륀 신부는 오늘날에는 사랑의 결핍에 대한 반작용으로 ‘자아도취증(나르시시즘)’이 널리 퍼져 있다며, 리지외의 데레사 성인(1873~1897)을 자아도취증을 극복한 사례로 소개했다. 데레사의 어머니는 유방암을 앓고 일찍 세상을 떠났으며, 이 때문에 어머니 젖을 먹지 못하고 사랑도 충분히 받지 못한 데레사는 응석받이가 돼 이런 성향이 수도자가 된 뒤에도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륀 신부는 “데레사가 수도원에 입회한 후에도 (입회 전처럼) 어떤 대단한 것을 영성 안으로 끌어들였다”며, 자신의 소외감과 상처를 들추지 않아도 되는 길을 걸으려 했다고 지적했다.

그륀 신부는 데레사가 발견한 자아도취증 치유법은 “우리 자신의 무능, 상처와 아픔을 하느님께 내어드리는 것”이며, 그러면 하느님의 사랑이 영혼의 깊은 곳으로 흘러들어 변화가 일어난다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위대한 일을 해 내야 한다거나 다른 이들보다 뛰어나야 한다는 압박감에서도 해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데레사는 그가 가르친 ‘작은 길’을 통해 모든 사람과 유대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됐다고 그륀 신부는 강조했다.

그륀 신부는 데레사의 예를 우리 시대에 대입해 보겠다며, 지난 23년간 피정의 집에서 일하며 만난 사람들의 예를 더 들었다.

“우리에게도 ‘영성’은 ‘대단한 것을 향해 도망치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내담자 중에는 다른 이들과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게 불가능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에게 관계 맺는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애도하고 고통스러워해야 하는데, 그렇기는커녕 자기가 완성된 영성의 단계에 도달해서 하느님과 완전히 일치하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다른 평범한 사람들이나 인간관계가 필요하지 자신은 하느님과 완전히 일치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게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필요하기에 더 이상 그런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넘어지는 때가 옵니다.”

또 그륀 신부는 ‘오직 예수님만 사랑한다’면서 그 자신의 일상생활은 엉망진창인 열일곱 살 소녀 그리고 부부 사이의 갈등을 대화로 풀기를 거부하고 기도에만 몰두하는 남편의 예를 들었다.

“어느 부부에게 갈등이 생기고 때로 싸우는데, 남편은 대화와 싸움을 거부하고 지하 창고에 내려가 묵상을 합니다. 이는 아내를 더욱 화나게 합니다. 남편은 ‘나는 전혀 문제가 없다. 나는 나 자신의 중심에 있고 문제는 너에게 있다’고 말합니다. 남편은 갈등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높은 경지의 영성’으로 나아갑니다.”

▲ 27일 프란치스칸 영성학술발표회에 참석한 이들이 안셀름 그륀 신부의 인도에 따라 기도하고 있다. ⓒ강한 기자

그륀 신부는 “예수님에게 도망치는 것은 일상생활로부터 달아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며 “‘내가 다른 사람보다 영적으로 더 높은 단계에 있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 안에 자아도취증이 들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베네딕토 성인이 쓴 수도회 규칙서는 사람들의 삶을 현실 그대로 서술했고 갈등이 일어날 가능성도 언급했다며, “갈등을 기도 안으로 인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천주교는 수도자, 성직자들의 전인적 성장을 돕고,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신자들과 동반해 건강한 신앙생활로 이끈다는 취지에서 여러 영성심리 상담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1988년 사제, 수도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영성생활연구소에 이어 서울대교구 소속의 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 부산교구 가톨릭심리상담소, 전진상 영성심리상담소 등이 세워졌고, 가톨릭대학교 상담심리대학원에는 영성상담학과가 개설돼 있다.

작은 형제회 프란치스칸 사상연구소(소장 고계영 신부)가 주관하는 제16차 프란치스칸 영성 학술 발표회는 ‘사랑의 신비 안에서 이루어지는 마음의 치유―영성과 상담심리의 만남’을 주제로 26일부터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과 정동제일교회에서 열리고 있다. 마지막 날인 28일에는 ‘심리학의 새 경향’, ‘심리 치료와 영성’ 등을 주제로 최성애 박사(HD행복연구소)의 발표가 이어지며, 작은 형제회 한국관구봉사자 기경호 신부의 발표로 막을 내린다. (문의 02-6364-5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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