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힘으로 한반도에 평화를

지난 1월 15-19일 4박5일 동안 ‘2018 평화평창 여성평화걷기’에 참여한 100명의 여성이 강원도 평창, 강릉, 속초 그리고 고성DMZ를 걸었다. 이번 대회는 평창 동계올림픽의 평화적 성공개최를 기원하고, 전쟁 없는 한반도를 열망하며, 한반도를 생명, 평화, 상생의 땅으로 만들기 위한 여성들의 평화걷기다.

16일 오전 대관령 면사무소에서 2018 여성평화걷기 출정식이 열렸다. ⓒ최금자

 

여성평화걷기는 언제 시작했나?

여성평화걷기는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5 국제여성평화걷기(Women Cross DMZ)가 5월 24일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에서 개최되었다. 분단 1,2,3세대 1945명이 세계 여성운동계의 대모 글로리아 스타이넘과 노벨평화상 수상자 메어리드 매과이어, 림 보위, 한국전 참전 12개국 여성인사들과 함께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반도 땅을 걸었다. 그부터 매해 5월이면 여성평화걷기 대회가 어김없이 열렸다.

올해는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한반도에 평화 정착과 평화통일을 염원하고자 예년처럼 5월이 아닌 엄동설한인 1월에 여성평화걷기를 했다. 대회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었는데, 오전과 오후에는 실외에서 걷기를 하고, 저녁에는 실내에서 토론의 장-북콘서트, 소주제별 모둠토론, 씨네토크, 참가자별 발언과 결의-을 열었다.

실향민 2세인 김영애 씨(우리누리 평화운동 대표)는 이번 평창올림픽과 여성평화걷기를 계기로 하루빨리 한반도가 평화통일되기를 기원하고 있다. ⓒ최금자
둘째 날인 16일 저녁에 있었던 라운드 테이블1 ‘분단과 페미니즘’ 소주제별 모둠토론의 내용을 18일 저녁에 발표했다. 발표 뒤에 참가자별 발언을 하고 결의를 다졌다. ⓒ최금자

 

한반도 역사의 질곡에서 자유, 민주를 외친 여성들이여

이번 대회의 실질적 주최인 여성평화걷기조직위원회는 전야제인 ‘세 여자와 평화’ 북콘서트를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 참가자들에게, 조선말-일제강점기-1970/80년대 역사의 현장에서 자유, 자주, 평등, 민주를 위해 치열하게 싸웠던 선배 여성들의 옹골찬 삶을 담은 세 권-"해월의 딸 용담 할매"(고은광순), "세 여자 1, 2"(조선희), "영초언니"(서명숙)의 책을 읽고 오기를 권고하였다.

첫째 날 저녁에 이뤄진 북콘서트의 열기는 대단했다. 세 작가는 작품 시대 순으로 앉았다. 왼쪽부터 고은광순 평화어머니 대표, 조선희 전 서울문화재단 대표,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 ⓒ최금자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하늘색 심포니’

셋째 날 17일 저녁 ‘하늘색 심포니’ 다큐-2016년 댈러스 아시아 영화제 다큐부문 최우수작으로 선정됨-를 보았다. 다큐를 제작한 재일교포 3세인 박영이 감독은 요코하마 조선학교 출신으로, 조선학교 졸업을 앞둔 고3 11명이 2주간 북한을 방문한 여정을 화면에 담았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참가자들의 눈물샘이 마르지 않았다. 일본의 조선인들을 향한 박해는 일제강점기로 끝나지 않았다.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재일교포 1세들과 그곳에서 나고 자란 2, 3세들은 해방 뒤에도 일본인들에게 모진 핍박과 갖은 수모를 당하며 살고 있다. 민족의 정체성을 살리기 위해 우리말, 글, 역사를 가르치는 조선학교에 가해지는 무지막지한 차별을 대하고, 더 나아가 남한 정부의 몰이해와 협박, 그리고 그동안의 우리의 무관심에 마음이 몹시 아렸다.

 

(6분짜리. '하늘색 심포니'와 같은 감독 박영이)

 

분단의 아픔을 딛고 한반도에 평화를

이번 걷기의 하이라이트는 대회 마지막 날인 19일 ‘고성통일전망대(평화퍼포먼스)’였다. 평화퍼포먼스는 고성DMZ를 걷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고성 제진검문소 입구에서 통일전망대까지의 거리는 일반인들이 걸을 수 없는 길이다. 그런데 이 길을 여성평화걷기 참가자들이 걸었으니, 그때의 벅참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체험이다. 그 벅찬 감격도 잠시 눈앞에 나타난 ‘오늘 한 놈을 때려잡겠습니다.’라는 글귀가 현재진행형인 비극적 분단을 실감하게 했다.

“평창 평화! 여성 평화! 평화 통일! 전쟁 반대! 평화 예스!”를 외치며 남북분단의 아픔이 서린 이 길을 걷는 순간의 감정은 말로 이루다 표현할 수 없었다. ⓒ최금자
“평창 평화! 여성 평화! 평화 통일! 전쟁 반대! 평화 예스!”를 외치며 남북분단의 아픔이 서린 이 길을 걷는 순간의 감정은 말로 이루다 표현할 수 없었다. ⓒ최금자
‘DMZ 박물관’ 팻말을 보자 잠시 후 펼쳐질 남북을 가르는 철조망과 금강산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주권방송> 곽성준 기자

남북한을 가르는 휴전선 철조망이 내려다보이는 VIP OP(Observation Point, 특별전망대)로 올라가 금강산을 바라보며 남북한 군인들의 대치상황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그 후에 그 자리에서 결의문을 낭독하였다. 이어서 통일전망대로 내려와 한반도의 평화와 평화통일을 위한 ‘평화퍼포먼스’를 펼쳤다. 이번 대회에 영화 ‘택시 운전사’에 등장하는 5·18 취재언론매체인 독일 ARD 방송이 16일 출정식과 19일 고성DMZ 행사를 동행 취재했다.

좁은 장소에서 평화퍼포먼스를 펼치다 보니 서로의 발들이 꼬였지만 기필코 ‘여성의 힘으로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겠다는 열의만큼은 대단했다. ⓒ최금자
좁은 장소에서 평화퍼포먼스를 펼치다 보니 서로의 발들이 꼬였지만 기필코 ‘여성의 힘으로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겠다는 열의만큼은 대단했다. ⓒ최금자
좁은 장소에서 평화퍼포먼스를 펼치다 보니 서로의 발들이 꼬였지만 기필코 ‘여성의 힘으로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겠다는 열의만큼은 대단했다. ⓒ최금자


평화통일은 나부터 한 걸음

4박5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참가자들의 다양하고 생생한 소감을 들었다.

“가장 센 무기는 평화입니다! 이 땅의 진정한 평화를 위하여!!”(50대)

“평화롭게 통일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20대)

“평화를 이렇게 자유롭게 외칠 수 있다니, 행복했습니다."(50대)

“남성들이 만든 군대문화, 전쟁을 여성들의 힘으로 평화와 화해의 정신을 구현한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60대)

“변방의 소외된 이웃에게 따뜻한 배려의 실천으로 이루어져 ‘우리의 소원은 통일’로 열매 맺기를 기도합니다.”(50대)

“아, DMZ! 걸을 수 없는 곳을 걸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80대)

“이번 기회는 각계각층의 여성들과 한마음이 되는 어울림 통일이었다.”(60대)

“부드러운 모습으로 다가서고, 축제처럼 온 시민이 함께하는 마당이었으면 더 좋을 듯하다.”(50대)

“평범한 여성으로 깨어 있는 시민으로 4박5일 보고, 느끼며 여성의 작은 힘이 큰일을 이룰 수 있다는 게 참 좋았습니다.”(40대)

“이 땅의 여성들이 민주와 평화, 통일에 대한 담론을 밤늦도록 이야기하고, DMZ를 걸으며 여성들의 역할에 대한 각성의 시간이 될 수 있었다. 좋았던 시간입니다.”(50대)

 

고은광순 씨는 평통 여성분과위원회 위원이며, 평화어머니 대표다. 그녀는 20-30대에 민주화운동을 했고, 40-50대에 여성운동을, 현재에는 평화, 통일운동을 하고 있다. ⓒ최금자

‘2018 평화평창 여성평화걷기’는 어떤 색일까?

이번 여성걷기 대회의 이모저모를 기획팀 중의 한 명인 고은광순 씨에게 물었다.

이번 대회 준비기간과 준비팀 인원은 얼마인가요?

“준비기간은 길지 않았다. 작년 11월 중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이하 평통) 상임위원회 여성분과위원회에서 안김정애 님이 여성의 평화걷기를 제안했다. 이후 이 제안이 평통 운영위원회를 통과해서 12월 초부터 몇 차례 답사하고, 드디어 2018년 1월 15일부터 19일까지 행사가 시작되었다.

평통 여성상임위원인 답사팀 4명(안김정애, 고은광순, 오순애, 최정남)이 12월 한 달 동안 코스 결정을 했고,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평화어머니 회원 십여 명과 함께 몸자보를 만들고, 춤과 노래를 구성했다. 평소 평화 시민운동을 해 왔던 이들의 전광석화와 같은 기획과 실행이 큰 역할을 했다.”

참가자들은 이승만, 김일성 별장이 있는 고성군 화진포 바닷가에서도 평화행진을 했다. ⓒ최금자
참가자들은 이승만, 김일성 별장이 있는 고성군 화진포 바닷가에서도 평화행진을 했다. ⓒ최금자
참가자들은 이승만, 김일성 별장이 있는 고성군 화진포 바닷가에서도 평화행진을 했다. ⓒ최금자

 

걷기대회 참가인원 및 구성은 어떻게 되나요?

“당초 300명 인원을 예상했으나 지원금 마련에 애로가 있어 100명으로 줄었다. 참가인원을 여성단체, 페이스북이나 단체 카카오톡방 공지 등으로 모집하였다. 평통 상임위 여성위원회,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평화어머니, 민주하나공동체, 아이건강경기연대, 희망노후유니언, 기독여민회, 구미여성회, 평화와 통일을 만드는 사람들, 우리다함께 시민연대, 착한도농불이운동본부, 개인별 참여인원으로 구성되었다.”

대회 준비 및 진행하면서 기억에 남는 점 혹은 어려웠던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Peace Treaty Now!(평화협정 체결하라!)를 평통 사무처와 일부 상임위원이 사용치 말아 달라는 주문을 해서 논쟁이 있었다. 평통의 빠른 개혁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인선 대부분을 하고 나갔다는데 2017년 9월에 출범한 18기의 3/4이 보수 인사다.”

걷기대회 참가 여성들에게 바라는 점은 무엇인가요?

“대회 마지막 날인 19일에 낭독했던 ‘결의문’은, 넷째 날인 18일 저녁에 있었던 ‘라운드 테이블2 참가자별 발언과 결의’에 이뤄진 참가자 전원의 1분 스피치를 토대로 작성되었다. 그 다짐 그대로 가슴에 품고 잊지 않으면 무언가 달라지기 시작할 것이다.”

VIP OP에서 참가자들을 대표하여 30대, 40대, 80대의 세 명이 결의문을 낭독하였다. (사진 제공 = 여성평화걷기조직위원회)

한반도 여성, 세계 여성들에게 외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제일 센 무기는 평화다. 여성은 신의 역할을 대행해 새 생명을 낳아 사랑과 정성으로 키운다. 누구를 죽이라고 또는 총알받이가 되라고 키우지 않는다. 전 세계의 여성들이 외쳐야 한다.

‘Shut the Weapon Factory!
No War! Yes Peace!
Any Soldier is Mom's Child!
70 Year Division is Too Long!
The Strongest Weapon is Peace!’ ”


<결의문>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 남북이 증오의 대상이 되도록 부추겨진 가운데 우리는 그동안 경쟁적이고 개인적 이기심, 집단적 이기주의에 기울어진 삶을 살아왔습니다.

우리는 이번 평화걷기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얻었습니다. 소리를 질러 본 것도 처음, 대낮에 춤을 추어 본 것도 처음, 통일이라는 말도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외쳐 보았습니다. 용기 있고 매력 있는 동행인들과 함께 걸으며 함께 해방된 세상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도 내 안에 차오르게 되었습니다.

광화문에서 챙긴 내 안의 작은 촛불은 치유여행과도 같은 이번 여행에서 평화의 횃불이 되어 우리를 당당하고 용기 있는 평화일꾼이 되도록 해 줄 것입니다.

착하게 살면서 또한 강해지기도 해야 한다는 지혜로 남북이 하나되어 강해진다면 70년 분단의 설움과 적폐를 뛰어넘어 우리 겨레의 존귀한 얼을 되찾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도전할 큰 용기를 얻었으니 평생의 추억으로 마음에 담아 지역으로 마을로 돌아가 평화바라기가 되어 한반도가 평화의 땅이 되도록 마중물이 되겠습니다.

서로 나누고 서로 협력하고 도울 수 있도록 기회가 될 때마다 참여하고 배우겠습니다. 뜨거운 가슴 안고 실천하겠습니다!

2018 1. 19.

2018 평화평창 여성평화걷기 참가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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