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자가 바라본 세상과 교회]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 너희는 그것들보다 더 귀하지 않으냐?’(마태 6,26)

식사를 위해 수녀원 식탁에 앉으면 정면에 보이는 감나무에 8개 남짓 감이 달려 있습니다.

한창 감을 따던 때, 나무에 있는 것을 다 따야 한다는 저를 말리시며 남겨 놓으신 것입니다.

“요즘 먹을 것이 많은데 새들이 이런 것 먹을까요? 꽁꽁 얼면 못 먹을 것 같은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보았지만, 까치밥이라는 이름으로 감나무에 8개의 감이 남았습니다.

몇 주 시간이 흐르고 문득 본 나무에는 반쪽짜리 감이 위태로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진짜 새가 먹은 걸까? 의아해 하던 차, 금세 새가 날아들어 감을 쪼아 먹습니다.

감 먹는 새. ⓒ이지현

“저기 좀 봐요. 얇은 가지에는 몸집이 작은 새만 앉을 수 있어서 작은 참새가, 굵은 가지는 작은 발로는 버티기 힘들어서 큰 새가 앉잖아요? 각 가지에 달린 감을 골고루 나누어 먹고 있네요. 역시 자연은 신비로운 거예요.”

“맞아요. 하느님께서는 하늘의 새들도 거두어 먹이신다더니. 진짜에요. 그렇죠?”

한참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온갖 이유를 대며 감을 다 따자고 하던 제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제가 극구 우겨 저 감을 다 따서 부엌 창고에 쌓아 놓았다면 맛있는 감을 몇 개 더 먹을 순 있었겠지만, 저들이 먹을 것은 하나도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 스쳤습니다. 맛있게 먹고 있는 새들을 보며, 그들은 안중에도 없었던 제 자신을 의식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각자 가질 만큼의 많은 것을 나누어 주셨음에도 내게 맡겨진 것 외의 것을 더 탐하고 쌓아 놓는 바람에 정작 그것이 나누어져야 할 곳으로 가지 못한 것은 아닐까.

사실 저 복음 말씀은 들을 때마다 비현실적이라 생각했었는데, 그것이 아니라 우리의 탐욕이 진리에 어긋난 것이더군요.

2017년을 보내며, 올 한 해 있었던 일들을 돌아봅니다.

지진, 산불, 화산폭발 등 천재지변으로 지구는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무차별 테러로 많은 나라에서 희생자가 났죠. 주변 강대국의 이권 싸움으로 전쟁의 위협에 놓인 나라들, 끝없는 내전으로 난민이 되어 가는 사람들. 뭔가 해결될 것 같지 않은 일들만 연달아 일어나는 듯 보입니다.

하나라도 더 가지고 싶은 욕심, 더 많이 먹고 싶은 욕심, 주변과는 상관없이 나의 즐거움을 충족시키려는 욕심이 지금 우리 주변의 힘든 상황을 불러오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는 보이지 않는 내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고 있을까요?

감 먹는 새. ⓒ이지현

씨도 뿌리지 않고 거두지도 않으며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 하늘의 새도 먹여 주시는 하느님의 큰 뜻이 이루어지려면, 우리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협조는 대단한 것을 하는 게 아닙니다. 그저 욕심부리지 않고 내게 맡겨진 몫만 선택하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가 욕구와 욕망의 경계를 잘 알고 분별할 수 있다면 하느님의 뜻은 서서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마태 6,31-33)

2018년에는 하느님 뜻에 적극 협조하는 삶을 살아 봅시다. 내 주변 사람들을, 자연 환경을 배려하며 나의 몫만 선택할 수 있는 단순한 삶을 꿈꿔 봅니다.

이지현 수녀(로사)
성심여고에 재직중이다. 
청소년에게 삶을 노래하며 행복하게 살도록 돕는 꿈을 꾸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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