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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이 미안하다[수도자가 바라본 세상과 교회]

최근 청소년과 관련된 사건, 사고들이 논란이 되면서 여러 걱정과 해결책 이야기들이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한결같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뭐가 문제일까”에 대해 이야기하며, 공감 능력이 사라져 버린 현 시대의 사람들을, 갈 길 잃은 교육을 비판한다.

한때 우리를 “X세대”라 부르고 우리의 문화와 사고방식을 분석해 대는 뉴스들을 접하며, ‘뭐가 다르다는 거지? 어른들이 이상한 것 같은데’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청소년들을 ‘신인류’라 부르며 그들과의 대화를 어려워하고 있는 나 자신을 만난다.

수업 시간을 통해 최근 불거진 중학생 폭행 사건과 관련하여, 나누고 싶은 것에 대해 질문을 만들어 함께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갑자기 일어난 일이 아니더라고. 시간이 지날 때까지 왜 어른들에게 이야기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어른들은 절대 해결할 수 없어요. ‘절대 끼어들 수 없는 영역’이라고요. 일만 더 커져요.”

아이들은 하나같이 흥분하며, 나에게 잘 알아 두라는 말투로 이야기한다. 어른들이 손댈 수 없는 영역이란다. 우리가 해결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럼 공감 능력이 점점 없어진다는 말에는 동의하니?”

“아니, 예전에도 이런 폭력 사건은 있지 않았나요? 왜 요즘 청소년들이 유독 공감 능력이 없다고 말하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데요? 왜 자꾸 문제라고만 해요!”

어쩌면 좀 더 생각해 볼 시간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갑자기 나와 상관없이 보이는 사건을 들이밀며, 이것이 현 시대의 문제이고, 너도 이에 속해 있다고 말하는 듯 들렸는지도 모르겠다. 일주일의 시간이 흐른 뒤, 우리는 좀 더 찬찬히 이야기를 나눠 보기로 했다.

“으아~ 또 공감 능력이에요? 아무 생각 없는데. 아, 뭐 이런 것까지 계속 말해야 해요?”

마침 마주 앉은 아이는 귀찮다는 듯 말한다.

“그럼 그대는 공감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공감 능력이 뭐지?”

“당연히 있죠. 다른 사람이 슬퍼하는 걸 보면 ‘아, 이래서 참 슬프겠구나’ 하면서 같이 슬프고, 아파하는 걸 보면 같이 아프고, 그런 거죠. 근데, 말하다 보니까 저한텐 공감 능력이 없는 것 같네요. 그런데 사실 인간에게 썩 필요하지 않은 영역인 것 같아요. 나 살기도 바쁜데, 남의 그런 것 꼭 공감하고 그래야 해요? 요즘 주변 사람들에게 누가 관심이나 있어요?”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인간에게 필요하지 않은 영역.

이 말은 수업이 끝난 후에도, 시간이 더 지난 후에도 긴 울림으로 내게 남았다.

인간에게 필요하지 않은 영역.

모든 것을 문제로 받아들이고, 원인과 해결책을 찾는 것은 비단 나만의 경우는 아닐 것이다. 어쩌면 너무도 쉽게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이야기해 버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좀 더 부드럽게 이 현상을 바라볼 수는 없을까? 무언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먼저 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매번 답이 없는 것처럼, 희망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우리가 여러 곳에서 부는 거센 바람으로 그 자리를 빙글빙글 돌며 표류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떻게 하면 공감 능력이 생길까요?”

공감 능력에 집착하듯, 질문을 던지는 내게 아이들은 종이 한가득 해결책을 적어 놓았다.

‘우리에게 여유를 주세요. 생각할 여유, 뛰어놀 여유, 수다 떨며 신나게 지낼 여유. 그렇다면 공감 능력이 생기지 않을까요?’

지금 이 순간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생각할 여유, 누군가와 대화 나눌 여유, 나 자신을 돌볼 여유가 있는가? 어떻게 살고 있으면서 청소년들에게 문제를 운운하는 것인가. 어쩌면 나 자신도 공감 능력을 잃고 그들을 공감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치 옆으로 열심히 걸으면서 똑바로 걸어라 다그치는 꼴이 되었다.

미안하다, 그대들아.
어른들이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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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잡고 나란히 걷기엔 가야 할 길이 너무 비좁다 했지
모두 함께 나누며 살기엔 부족한 세상이라고 말해 왔어

느끼기보다는 많이 알아야 한다고
친하기보다는 이겨야 한다고 가르쳤지

그래서 아빠가 미안해

네가 지닌 꿈과 장점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았지
이루지 못한 나의 꿈을 어느새 너에게 강요해 왔어

꿈꾸기보다는 영리하게 살라고, 맞서기보다는 모른 척 따라가라 가르쳤지
그래서 아빠가 미안해

어지럽고 탁한 세상에 숨이 막혀 답답하고 지쳐도
어딘가에 있을 너의 꿈을 찾길 바라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더 높이 올라가야 한다고 했지
주위를 둘러볼 시간에 한 걸음이라도 빨리 뛰어라 했지

잘 살기보다는 많이 가져야 한다고
추억보다는 내일만이 중요하다고 했어

그래서 아빠가 미안해

(자전거 탄 풍경 - <아빠가 미안해>)

이지현 수녀(로사)
성심여고에 재직중이다. 
청소년에게 삶을 노래하며 행복하게 살도록 돕는 꿈을 꾸며 살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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